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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혁신파크 Jul 06. 2018

'일당 2000원' 필리핀 소작농들과 같이 사는 길

[지금 서울혁신파크에선 무슨 일이 ①] 협업 모델 찾는 입주단체들

국내 최초·최대의 사회혁신 집적 단지인 서울혁신파크가 2015년 6월 26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문을 연 지 어느 덧 3주년이 됐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들을 교육하고 이들의 비즈니스 기회를 촉진한 스페인 빌바오의 '데노킨(Denokinn)'을 넘어서는 거대한 실험 공간이다. <오마이뉴스>는 '모여라 연결하라 창조하라'의 슬로건으로 출범한 서울혁신파크의 입주단체들을 만나 혁신파크의 어제, 오늘, 내일을 조망한다.

[편집자말]

"서울혁신파크는 직접 가서 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말로 설명해도 한계가 있어요."

기자가 서울혁신파크(아래 혁신파크)를 사전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사람들의 반응은 이랬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이 "거기 뭐 하는 곳이냐?"고 오히려 반문할 때가 많았다.

40년간 질병관리본부가 터 잡고 있던, 서울 은평구의 3만 평 부지에 각종 사회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가 있는 단체들을 모아 '사회혁신'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계획이 2013년에 발표될 때도 그랬다.

인근 지역 임대료의 60% , 여기에 각종 감면 혜택을 다 합치면 최대 1/5 비용으로 사무임대 공간을 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혁신파크는 충분히 매력을 끌 만했다. 문제는 이들 단체들이 모였을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냐, 만약 낼 수 있다면 어떤 형태의 시너지를 낼 수 있냐다.


소셜벤처 '히든앤코'(www.hiddntaste.com)는 혁신파크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 케이스다.

커피와 초콜릿이 주류를 이루는 공정무역 업계에서 소셜벤처 히든앤코는 '코코넛오일'이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들고 나왔다.

코코넛오일에는 모유에 들어있는 라우르산이 풍부해서 면역력을 강화하고 상처의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2년 전부터 붐이 불기 시작해 지금은 연 400억 원 정도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고 한다.

서울혁신파크에 입주해 코코넛오일 공정무역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우준석씨(히든앤코).<히든앤코>

히든앤코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1만 원 안팎에 파는 코코넛오일을 1만 8700원에 판다. 이 업체의 우준석 대표의 설명은 이렇다.

"필리핀이 전 세계 수출물량의 40%를 차지합니다. 이 코코넛 열매를 따려면 인부들이 산속에 있는 20~30m 높이의 나무에 올라가야 합니다. 코코넛 껍질을 까고 하얀 과육을 벗겨낼 때도 맨손에 칼을 씁니다. 목숨을 담보로 이 힘든 일을 하는 데도 일당 2000원 안팎을 받죠. 여기에 중간상인 등에게 이자를 물어주느라 대부분이 소작농으로 전락합니다. 2013년 유엔식량농업기구에서 코코넛 농가들의 실태를 조사했는데, 보고서를 내지 못했습니다. 임금 수준이 너무 열악해서 보고서를 낼 형편조차 안된 거죠."

우 대표는 코코넛오일 무역업을 시작하면서 필리핀 생산업체들에 3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첫째, 인부들의 임금을 2배로 인상할 것. 둘째, 노동시간을 10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일 수 있는 공정을 도입할 것. 셋째, 최상의 품질을 요구할 수 있는 11~12개월 산 코코넛 열매만 수거할 것.

생산자를 저임금으로 후려치지 않고, 엄격한 품질 관리를 거친 제품을 내놓아야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이 온다는 믿음이 깔린 요구였다.

여기에 "제작 공정을 전부 공개해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했다. 대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코코넛오일의 제작 공정이 얼마나 열악한 지 눈으로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필리핀 현지업체 40여 곳에 연락해봤지만, 히든앤코와 선뜻 일하려는 회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2017년부터 함께하고 있는 코코오일은 레이테섬의 주도(타클로반)에서 100km가량 들어가야 나오는 어촌에 자리 잡은 작은 농장이다. 현지인 23명과 일하는 피터 사장도 '공정무역'의 취지를 잘 이해하는 인물. 일단 올해는 1억 5000만 원의 국내 매출을 올리는 게 목표다.

우 대표는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했다. 히든앤코는 6월 3~8일 출장길에 혁신파크의 다른 식구들을 동행했다.

국내에서 쓰다 버린 비누와 이면지, 크레파스 등을 재가공해서 필요한 이웃에게 전달하는 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 '옮김'과 사회적 약자들이 사진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사진 치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공감아이'가 그들이다.

'옮김' 회원들은 현지 아동들을 위해 비누와 크레파스, 스케치북 등 600점의 물품을 준비했고, 공감아이에서는 사진작가가 현지 주민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서울혁신파크 입주단체 3곳이 6월 3~8일 코코넛오일을 생산하는, 필리핀 레이테섬 현지 마을을 다녀왔다. 뒷줄 오른쪽부터 히든앤코의 우준석 대표와 박선영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옮김의 지예정 대표, 앞줄 왼쪽이 공감아이의 사진작가 하동훈씨.

<한겨레> 사진기자 출신의 임종진 공감아이 대표는 2003년 이라크전 취재를 다녀온 뒤 황폐해진 마음을 달래려고 캄보디아로 에이즈 환자 봉사활동을 떠났다가 사진을 통한 심리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80년 5·18 희생자와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들의 사진전 등을 진행하다가 히든앤코의 제안을 받고 선뜻 직원을 파견하기로 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 가난과 기아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는데, 그들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사진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당사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친 거예요. 마을 아이들이나 주민들이 억지로 웃게 하는 모습도 최대한 지양하려고 합니다. 자칫 카메라 보면 웃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줄 수 있으니까요. 지진 같은 긴급구호 상황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오는 게 아니라 한 공동체의 일상이 어떻게 회복되는지, 그 과정을 담는 거죠. 최소 3년에서 5년 정도는 꾸준히 가보려고 합니다."

 공감아이의 사진작가 하동훈씨가 현지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촬영했다.<공감아이 하동훈>


평소 면식이 없던 세 단체 사람들은 혁신파크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데 서로 힘이 되어줄 동지들을 만났다. 그런 면에서, 우준석 대표는 혁신파크의 시너지 효과가 움트고 있다고 믿는다.

혁신파크 내에는 '아름다운커피', '어스맨',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한국공정무역단체협의회' 등 공정무역을 주제로 한 입주단체들이 즐비한다. 우 대표는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에서 일하다가 코코넛오일을 특화한 사업을 하려고 독립해서 나왔다.

우 대표는 "일반 회사들은 협업을 하기 전에 여러 가지를 먼저 계산하고 움직이는데 이곳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사회에 뭔가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끼리 5분 거리에 붙어있고, 공용 회의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연결과 창조, 혁신파크 성공의 관건

혁신파크가 초기 3년에 일단 모이는 데 치중했다면, 연결과 창조를 어떻게 보여줄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강신호 소장은 "처음 1~2년 동안 각자 입주 환경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면 작년부터는 협업 분위기가 조금씩 조성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재생과 자원 재활용 이슈에 관심이 많은 그는 처음 경북 문경에 터를 잡았지만, 전원도시 문경은 그의 연구를 확장하는 데 적절한 장소는 아니었다. 도시 문제를 해결하려면 모든 이슈들이 집중하는 서울로 와야 했다.

서울혁신파크 대안에너지 기술 연구소 강신호 박사가 자신이 개발한 업사이클링 스피커 (왼쪽 아래)와 패달 동력 믹서기와 함께 서 있다.<오마이뉴스>


우리의 생활공간을 실험실로 삼아 사회 문제를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보자는 취지로 만든 서울혁신파크의 리빙랩(Living Lab) 프로젝트도 분절된 아이디어들이 모이는 역할을 한다.

강 대표는 "나는 바이오 가스를 연구하는데, 맛동(먹거리 관련 단체들의 입주공간) 입주단체들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계속 나온다. 그런데 이걸 발효시키면 바이오에너지인 메탄가스가 되는 거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서 서울의 아파트·마을로 확산시키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자전거 페달을 밟아 생기는 에너지로 서류를 없애는 분쇄기를 만들어 혁신파크에 기증했다. 혁신파크는 사무공간을 단순히 모아놓은 곳이 아니다. 공용공간에서 사람들끼리 부대끼고 아이디어를 나누는 접촉면들이 늘어나면 사회혁신의 아이디어도 찾을 수 있다는 게 이곳 사람들의 생각이다.

임종진 대표는 "입주단체들이 모바일메신저로 격이 없이 연결되는 효과가 조금씩 느껴진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사무실마다 다니면서 '맛동에서 뭘 만들었으니 맛 보러오세요'라고 하는 일도 있다. 우리 전통의 품앗이가 부활되는 느낌이랄까"라고 말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49903&CMPT_CD=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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