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 학부모님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선생님, 중간고사에서 수학을 망쳤어요. 그래서 제가 '괜찮아,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했는데... 애가 화를 내더라고요. '엄마는 내가 망쳐도 상관없냐'고."
그 어머니는 위로하려던 말이 오히려 독이 된 것 같아 속상해하셨다.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그 질문을 들으며, 문득 며칠 전 우리 집 식탁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된장찌개를 너무 짜게 만들었는데, 남편이 "괜찮아, 나 짜게 먹으면 돼" 하며 억지로 떠먹는 걸 보고 묘하게 서운했던 순간.
'괜찮다고? 나 지금 괜찮지 않은데.'
실패한 사람이 원하는 건 "괜찮다"는 위로가 아니라, "아, 이거 진짜 속상하겠다"는 공감이었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대치동에서 아이들과 공부하며 본 풍경이 있다.
시험을 망친 날, 수업에 들어오는 아이들의 표정은 제각각이다.
어떤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들어온다. 집에서 한 소리 들었을 게 분명하다. "그러게 그때 내가 뭐라고 했어?" "넌 맨날 그 모양이야." 이런 아이들은 책상 앞에 앉아서도 한참을 멍하니 있다. 마음이 무너져서 공부고 뭐고 손에 안 잡힌다.
반대로, 어떤 아이는 속상한 기색은 있지만 금방 책을 펼친다. "선생님, 이번 시험에서 이 부분 완전히 틀렸는데 다시 설명 들을 수 있을까요?"
차이가 뭘까.
집에서의 대화가 달랐다.
첫 번째 아이의 부모는 실패 그 자체에 집중했다. "왜 이것도 못 해?" "다른 애들은 다 하던데?"
두 번째 아이의 부모는 실패를 대하는 태도에 집중했다. "많이 속상하겠다." "그래도 여기 이 문제는 맞혔더라?" "다음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중학교 3학년 재민이 어머니는 첫 만남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애가 실패를 너무 무서워해요. 조금만 틀려도 바로 포기하고, 시험 보기 전날엔 배가 아프다고 하고... 어떻게 하면 될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어머니는 실패하셨을 때,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하세요?"
어머니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 저도 '나는 왜 이것도 제대로 못 해' 이런 말 자주 하는 것 같아요."
거기였다.
아이는 부모가 '실패를 괜찮다고 말하는 것'을 배우는 게 아니다. 부모가 실패 앞에서 어떻게 서 있는지를 본다.
직장에서 실수했을 때. 요리를 망쳤을 때.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계획한 일이 틀어졌을 때.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하는 말, 그 태도를 아이는 고스란히 복사한다.
고등학교 1학년 민서의 아빠는 자영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다시 취업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아이 앞에서 그 이야기를 숨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빠가 사업을 접기로 했어. 많이 고민했는데, 이건 아닌 것 같더라. 솔직히 속상하고 창피하기도 해. 그래도 아빠는 다시 시작할 거야. 넘어지면 일어나는 거지, 뭐."
그 뒤로 민서의 태도가 달라졌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입시에서 떨어졌을 때, 민서는 금방 추스르고 재수를 선택했다. "한 번 떨어진 거 가지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잖아요. 다시 하면 되죠."
아빠가 보여준 그 태도가, 민서에게 실패 면역을 만들어준 것이다.
반대로, 어떤 엄마는 자신의 작은 실수에도 "아, 나 진짜 바보 같아", "나는 왜 이것도 제대로 못 해" 하며 자책한다. 그 집 아이도 똑같다. 문제 하나 틀리면 "나는 진짜 멍청해", "나는 안 돼"를 달고 산다.
완벽한 방법은 없다.
다만, 대치동에서 25년간 아이들의 공부를 함께하며 발견한 건 이거다. 실패를 잘 다루는 부모들의 공통점.
하나. 실패를 감추지 않는다.
"엄마도 오늘 회사에서 실수했어. 좀 창피했지만, 다음엔 더 조심해야겠다."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이 쌓여서, 아이에게 '실패는 인생의 일부'라는 걸 알려준다. 완벽한 어른은 없다는 것도.
둘. 실패한 순간, 감정부터 인정한다.
"괜찮아"보다 "많이 속상하겠다"가 먼저다.
아이의 감정이 충분히 수용되고 나면, 그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이건 별것 아니야"라고 하면, 아이는 자기 감정을 의심하게 된다.
셋. 실패를 사람과 분리한다.
"너는 왜 이 모양이야"가 아니라 "이번 시험은 아쉽네"로.
"너는"과 "이번 일은"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전자는 정체성을 공격하고, 후자는 상황을 설명한다.
넷. 다음 스텝을 같이 고민한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엄마가 도와줄 게 있을까?"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일어서는 과정을 지켜봐준다. 그게 진짜 배움이다.
재민이 어머니와 3개월간 함께했다.
우리가 한 건 단순했다. 어머니 자신의 실패를 다루는 연습.
출근길에 커피를 쏟았을 때, "아 진짜, 나 왜 이래" 대신 "아이고, 커피 쏟았네. 닦고 다시 출발하면 되겠다"라고 말하기.
요리가 짜게 됐을 때, "나 요리 진짜 못 하네" 대신 "오늘은 간이 좀 셌네. 다음엔 조심해야지"라고 말하기.
작은 변화였지만, 재민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재민이가 수학 문제를 틀렸을 때 이렇게 말했다.
"아, 실수했네. 이 부분 다시 봐야겠다."
예전 같으면 "아 나 진짜 바보 같아"라고 했을 텐데.
어머니는 눈물이 났다고 했다. 자기 말투가 아이에게 옮겨간 게 아니라, 자기가 바뀐 말투가 아이에게 옮겨간 거였으니까.
우리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건 '실패하지 않는 법'이 아니다.
실패하고도 다시 일어서는 법이다.
그리고 그건, 말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뒷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 저녁, 나는 다시 된장찌개를 끓일 것이다. 이번엔 국간장 양을 조심하면서. 그리고 혹시 또 짜게 되더라도,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아, 이거 진짜 짜다. 완전 실패했네. 그래도 이참에 다른 반찬으로 해먹으면 되겠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모습을, 식탁 건너편에 앉은 아이가 보고 있을 테니까.
당신은 오늘 어떤 실패를 어떻게 대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