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깊이, 나답게

by 코난의 서재

계단을 오르는 일이란 생각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천천히, 또 다른 누군가는 멈춘 채 잠시 쉬어간다. 그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 또한 속도를 더 내고 싶을 때가 있다. 옆사람의 발걸음이 더 빠르게 느껴질 때면, 그들을 따라잡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일곤 한다. 그러나 서두르다 보면 금세 숨이 차오르고, 그 계단 끝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나, 아니면 올라가는 과정이 목적이었나 혼란스러워진다. 그제야 나는 깨닫는다. 이 계단은 단순히 빠르게 오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내 속도로 걸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내가 조금 느리게 걷더라도 그 순간에는 놓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계단의 중간쯤에서 잠시 멈추어 뒤를 돌아보면, 여태 걸어온 길이 눈에 들어온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작게나마 쌓였던 나의 이야기가 보이고, 그 속에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기억들이 은은하게 자리 잡고 있다. 천천히 올라가면서 주변의 작은 변화들을 바라보고, 길가에 피어난 작은 꽃잎 하나도 마음에 담는다. 그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나의 발걸음은 마음의 리듬을 타고 나아가고 있다.


나만의 속도로 오르는 길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이나 비교가 불필요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내가 원하는 속도로,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오른다는 것은 곧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잠시 멈추어도 괜찮고, 천천히 올라가도 괜찮다. 그 여유 속에서 나는 나의 마음을 돌보고, 지금 이 길 위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온전히 마주하게 된다. 그런 여유로운 걸음들은 계단을 오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나만의 속도로 오르는 이 계단 끝에서, 나는 더 단단하고 깊어진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길 위에서 내가 만들어가는 모든 순간들이 쌓여, 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내 속도대로 천천히 올라가는 길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다소 느리게 느껴지더라도, 나는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 위에서 삶의 작은 행복들을 하나씩 마주하고 있다. 어쩌면 계단의 끝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천천히 올라가며 바라본 풍경과 마음에 담은 순간들이, 그 자체로 삶의 진짜 선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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