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 『바다인류』 깊이 읽기
경계를 넘는 물결, 바다로 읽는 인류의 시간』
- 주경철 『바다인류』 깊이 읽기: 항해, 교류, 그리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사유
프롤로그 ― 왜 지금, 바다를 말하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육지를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해 왔다. 문명은 대륙 위에 형성되고, 역사는 국가와 도시에 초점을 맞춰 기록되며, 삶은 국경이라는 선 위에서 정의된다. 바다는 그 경계 너머,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뒤편에 자리한 ‘주변부’로 여겨져 왔다. 때로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때로는 탐험과 모험의 상징이었지만, 정작 역사의 중심에는 거의 초대받지 못한 공간이었다. 주경철의 『바다인류』는 이 오랜 서술의 관성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그는 단호하게 묻는다. “우리는 왜 바다를 역사 밖으로 밀어냈는가?”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덧붙인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왜 다시 바다를 말해야 하는가?”
중심을 전환하다: 육지에서 바다로
『바다인류』는 단순한 해양사가 아니다. 이 책은 바다를 중심으로 인간의 역사를 다시 짜려는 문명사적 시도이자, 역사 서술의 시선을 바꾸는 인문학적 실험이다. 저자 주경철은 기존의 역사 기술이 지나치게 육지 중심적이며, 그 결과 바다의 역동성과 역할이 축소되거나 왜곡됐다고 지적한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무대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시선을 바꾸는 일, 즉 역사를 읽는 방식 자체를 전환하는 것이다.
바다는 인류에게 단지 극복의 대상이 아니었다. 인류는 일찍이 연안을 따라 이동하고,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했다. 바다는 물리적 경계가 아닌 접속과 확장의 공간이었다. 이 책은 그동안 역사적 주체에서 소외되어 온 바다를 무대로 끌어올리며, 인류 문명의 진화 과정에서 바다가 수행한 다층적인 역할을 조명한다.
문명의 경계가 아닌 지평
문명은 흔히 땅 위에 세워진다고 여겨진다. 농경은 문명의 토대를 이루고, 도시는 그 위에 세워지며, 국가는 이를 둘러싼 질서와 권위를 부여한다. 이 같은 인식은 결국 영토 중심의 역사관으로 귀결되며, 바다는 외부의 공간이자 경계로만 인식된다. 그러나 주경철은 이러한 틀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바다가 단지 문명의 끝자락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이 태동하고 교차하며 성장한 핵심 무대였음을 주장한다.
고대 폴리네시아인들이 태평양의 거대한 섬들을 오가며 바다를 생활공간으로 삼았던 사실, 페니키아 상인들이 지중해를 따라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며 문화와 물품을 유통시킨 방식, 중국 명나라의 정화가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인도양을 누비며 펼친 해상 외교는 모두 이를 입증하는 사례다. 바다는 문명을 가로막은 적이 없다. 오히려 다른 문명들이 조우하고 충돌하고 교섭한 지점, 그리하여 새로운 정체성과 사유가 탄생한 공간이었다.
바다는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항로와 기억, 충돌과 융합이 겹겹이 축적된 역사적 장소다. 이 장소를 통해 우리는 인류 문명을 새롭게 바라보고, 역사적 관점을 수평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
지금, 다시 바다를 말해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 바다를 말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단순히 바다의 과거를 복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바다는 여전히 현재의 문제, 그리고 미래의 과제와 밀접하게 얽혀 있다.
경제적으로 세계 무역의 90% 이상이 바다를 통해 이동하고 있으며, 해양 자원과 수산물은 여전히 인류 생존의 핵심 자원이다. 정치적으로는 배타적 경제 수역과 해양 주권을 둘러싼 분쟁이 날로 첨예해지고 있다. 생태적으로는 해양 생태계의 붕괴와 해수면 상승, 미세플라스틱과 해양 쓰레기 등 전 지구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바다는 더 이상 낭만의 상징이나 풍경의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위기의 전선이자 생존의 조건이다.
그러나 정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바다를 바라보는 상상력의 빈곤이다. 현대 사회에서 바다는 기술자와 정책 결정자들의 영역으로 환원되어 있으며, 일반 대중의 의식 속에서는 현실과 유리된 장소로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바다는 경험되지 않는 공간, 감각되지 않는 세계가 되어버렸다. 『바다인류』는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저자는 바다를 ‘다시 보는 일’, 곧 바다의 역사와 현재를 심층적으로 사유하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의 과제라고 말한다.
새로운 역사 쓰기의 출발점
『바다인류』는 연대기적 해양사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유기적으로 엮어내며, 바다라는 거대한 무대를 중심으로 인간의 이동, 교역, 충돌, 창조, 파괴의 서사를 직조한다. 대서양, 지중해, 인도양, 태평양은 단지 지리적 구획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교차하는 독립적인 문명 공간으로 제시된다.
주경철은 역사적 사건을 단선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각 공간에서 활동한 다양한 주체들의 시선을 교차시킨다. 항해자와 상인, 해적과 제국, 탐험가와 과학자, 식민지인과 이주민이 얽혀 있는 이 복잡한 서사는 독자가 바다를 단일한 상징으로 인식하는 대신, 여러 목소리가 공존하는 이야기의 장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 속에서 바다는 더 이상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스스로 말을 걸어오는 주체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방식은 독자에게 바다를 읽는 새로운 문법을 제공한다. 그것은 곧 인간 중심의 역사 쓰기를 넘어서, 바다와 인간이 얽힌 존재론적 관계를 성찰하는 인문학적 작업이다. 『바다인류』는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역사 서술 방식에 균열을 내고,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바다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독서
『바다인류』는 단지 과거를 복원하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의 바다를 읽는 책이며, 앞으로의 인류가 어떤 시선으로 바다를 마주해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항해자들을 따라 바다를 건너는 일이기도 하며, 동시에 바다와 얽힌 오늘의 문제들을 직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바다는 지리적 공간에 국한하지 않는다. 바다는 인간이 문명을 일구고 사유를 확장해 온 존재론적 터전이다. 이제 우리는 바다를 자연 자원이나 국제법적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과 시간의 공간으로 다시 보아야 한다.
『바다인류』는 바로 그 ‘다시 보기’를 위한 나침반이다.
지금, 이 항해에 동참하는 일,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진짜 이유다.
제1장. 항해의 시작 ― 바다를 건넌 최초의 인간들
수만 년 전, 아직 문명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어느 날, 인류는 바다를 처음 마주했다.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변화무쌍한 조류, 규칙 없는 파도. 그것은 두려움이었고, 경외였으며, 한편으로는 불가해한 유혹이었다. 바다는 인간의 이해 바깥에 있었으나, 동시에 인간의 세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누군가는 작은 뗏목 하나에 몸을 실었다. 그리하여 인류는 바다를 ‘건너기 시작한 존재’가 되었다.
이 장은 바로 그 첫 항해의 순간을 되짚는다. 인간이 언제, 어떻게, 왜 바다를 건너기 시작했는지를 문명사적 맥락에서 탐색함으로써, 『바다인류』 전체 서사의 기원을 되묻는다. 바다를 마주한 최초의 인간들, 그들의 용기와 상상력은 이후 수천 년에 걸친 인류 해양 활동의 서막을 열었다.
바다를 건넌다는 일: 두려움에서 기술로
바다는 육지와 다르다. 물 위를 걷는 존재는 없다. 인간은 바다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했다. 땅 위에서는 걸을 수 있고, 숨 쉴 수 있고, 도망칠 수 있다. 그러나 바다 위에서는 어느 하나도 보장되지 않는다. 생명은 쉽게 가라앉았고, 죽음은 조용히 밀려왔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이 위험한 공간에 몸을 내맡기기로 했을까?
주경철은 이에 대해 "도전은 두려움의 뿌리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인류의 바다 정복은 단지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존재론적 전환이었다. 두려움의 대상이던 바다를 감각하고, 이해하고, 계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전환시키기 시작한 것이 바로 ‘항해’였다. 바다를 건넌다는 행위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세계를 다시 상상하는 일이었다.
그 첫걸음은 아마도 우연이었을 것이다. 밀물에 떠내려간 나뭇조각 위에 올라탄 인간이 어느 섬에 도착했을 수도 있고, 뗏목을 타고 어업활동을 하다가 육지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밀려 나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우연은 반복되었고, 그 반복은 기술이 되었으며, 기술은 결국 신념이 되었다. 그렇게 바다는 점차 인간의 영역 안으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폴리네시아인과 태평양의 항해자들
주경철은 『바다인류』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루는 집단 중 하나로 폴리네시아인을 꼽는다. 태평양 한가운데 흩어져 있는 작은 섬들 사이를 오가며 수천 킬로미터를 항해한 이들은, 사실상 항해의 정점이라 불릴 만한 존재들이었다.
이들은 나침반도, 금속선도, 기계적 장치도 없이 별자리, 조류, 파도의 패턴, 바람의 냄새, 구름의 형태를 감각적으로 인식하여 항로를 정했다. 단순한 감각의 축적이 아니라, 이것은 지식의 계승이었다. 그들은 바다를 ‘읽었고’, 그 지식은 공동체의 기억 속에 저장되었다. 이러한 기억은 노래와 이야기, 구술 전통을 통해 세대를 넘어 전달되었으며, 그 안에는 항로뿐 아니라 삶과 우주의 질서가 녹아 있었다.
폴리네시아 항해는 오늘날의 GPS를 사용한 항해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그것은 바다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방식, 다시 말해 자연의 일부로 자신을 위치 짓는 삶의 형태였다. 여기서 우리는 바다를 ‘정복의 대상’이 아닌 ‘공생의 공간’으로 인식했던 초기 해양 문화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인간은 언제부터 바다를 건넜는가
인류의 바다 항해는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시작되었다.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약 6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이미 인도네시아와 오세아니아 일부 섬들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한 해변을 따라 이동한 것이 아니라, 최소 수 킬로미터 이상의 바다를 건넌 것임을 의미한다.
이는 곧, 배를 만들고 방향을 설정하며 항해를 가능하게 한 지식 체계가 이미 선사시대부터 형성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주경철은 이러한 항해가 단순한 도구적 지식을 넘어, 집단적 상상력과 세계 인식의 산물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바다를 건넌 최초의 인간들은, 단순히 ‘다른 장소로 이동한 자들’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공간적 범위를 확장한 자들이었다. 바다를 넘어섰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세계의 경계를 다시 그린 일이었다.
바다 위의 삶: 정주하지 않는 존재들
항해는 곧 삶의 방식이었다. 많은 해양문화에서 사람들은 단지 바다를 이용하는 것을 넘어,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생활공간이었고, 공동체의 일부였으며, 종종 하나의 ‘작은 우주’로 기능했다. 특히 동남아시아의 바자우족(‘해상 유목민’으로 알려진 이들)은 거의 육지에 정주하지 않고 바다 위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삶을 영위해 왔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영토 중심적인 현대 국가 개념과는 다른 질서를 보여준다. 국경도, 소유도, 고정된 주소도 없이, 그들은 파도 위의 경계 없는 세계를 살아간다. 바다 위의 존재들이 드러내는 것은, 인간은 반드시 육지에 뿌리를 내려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통념을 깨는 일이다.
주경철은 이러한 해상 공동체의 사례들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유연하게 공간에 적응하고, 상상하며, 살아왔는지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 유연성이야말로, 바다를 삶의 일부로 만들 수 있었던 핵심 역량이었다.
항해는 기술이자 서사였다
주경철은 바다를 단순한 자연환경이 아니라, 기술과 상상력이 교차하는 문화적 무대로 본다.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단지 노를 젓고 돛을 올리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위험과 마주하는 용기, 불확실한 세계를 향한 신념,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서사의 창조였다.
이러한 서사는 단지 신화나 전설로 남은 것이 아니다. 항해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구성했고, 세대 간 지식의 매개가 되었으며, 때로는 정치적 권위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항해자의 서사는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기억의 언어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바다를 건넌 최초의 인간들은 단순한 탐험가가 아니었다. 그들은 세계의 틀을 재구성한 상상력의 기획자들이었다.
이 장을 마무리하며 ― 인간, 항해하는 존재
인간은 본질적으로 항해하는 존재다. 이는 단지 바다를 건넜다는 물리적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다를 통해 인간은 자기 삶의 반경을 넓혔고, 세계의 경계를 허물었으며,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자신을 재정의해 왔다. 그러므로 최초의 항해는 단지 이동이 아니라, 존재 방식의 전환이었다.
『바다인류』의 두 번째 장은 바로 이 점에서 결정적이다.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에서, 공존의 공간으로, 나아가 문명의 기획자로 재정의된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 바다를 건넌 최초의 인간들이 서 있다.
그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항해는 끝나지 않았다. 바다는 여전히, 우리를 부르고 있다."
제2장. 지중해 문명 ― 바다가 만든 고대 세계
지중해는 바다이지만, 하나의 ‘내해(內海)’다. 그것은 열린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닫힌 세계이며, 바다이면서 육지의 연속이다. 고대 인류에게 지중해는 단순한 수역이 아니라, 삶과 문명의 무대였다. 주경철은 이 지중해를 ‘세상의 중심’으로 불렀던 자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며, 바다가 문명 그 자체였던 시기를 되짚는다. 이 장은 그중에서도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의 해양 활동을 중심으로, 도시의 형성과 문명 네트워크, 그리고 문화적 융합과 정체성의 생성이라는 관점에서 지중해 문명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항해에서 도시로: 페니키아인의 바다
지중해 해양 문명의 기원은 오리엔트 세계에서 출발한다. 그중에서도 페니키아인은 ‘지중해를 처음 도시화한 민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레바논 지역에 해당하는 해안 도시 티레, 시돈, 비블로스 등을 기점으로 활동한 이들은 뛰어난 항해술과 상업 감각으로 지중해 전역에 식민 도시를 세워나갔다. 가장 유명한 도시가 바로 카르타고다.
페니키아의 도시는 정치적 중심이 아니라, 상업과 항해의 거점이었다. 그들은 내륙으로 팽창하는 대신, 바다를 따라 도시를 복제해 나갔다. 이는 오늘날의 국가 개념과는 다른, 해상 네트워크 기반의 문명 구조였다. 각 도시는 독립적이되, 언어, 신화, 무역 방식 등을 공유하며 느슨한 문명권을 형성했다. 그들에게 바다는 국경이 아닌 실핏줄과도 같은 연결망이었다.
주경철은 이들을 통해 ‘정착민이 아닌 항해자’가 주도한 문명의 성립을 이야기한다. 이때 문명은 중앙집중적인 체계가 아니라, 분산된 접속성에 기반한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이는 현대의 글로벌 도시 네트워크나 정보 사회의 구조와도 닮았다.
폴리스와 항해의 자유: 그리스 세계의 확장
이후 바통을 이어받은 문명은 고대 그리스였다. 그리스 문명의 형성은 육지보다는 바다에 훨씬 더 큰 빚을 지고 있다. 좁고 험한 산지가 많은 그리스 본토에서 농업은 생계 수준에 머물렀고,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바다를 통해 생존의 자원을 구했다. 그 결과 그리스의 도시 국가, 즉 폴리스(polis)는 내륙 중심이 아니라 해안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각 폴리스는 서로 교류하고 경쟁하며 해상 활동을 통해 정체성을 구축했다.
그리스의 항해는 단순한 교역이나 전쟁의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학적 사유, 예술, 정치 이념까지 운반한 문화적 항해였다. 아이오니아에서 싹튼 철학은 해상 교류 덕분에 에게 해 전역으로 퍼졌고, 아테네의 민주주의 역시 지중해 무역망을 통해 널리 전파되었다.
그리스 세계의 핵심은 열려 있는 도시들이었다. 각 도시는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고, 그 연결은 바다를 매개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그리스는 문명의 확산자이자 수용자로 기능했다. 바다를 통해 다른 문명을 받아들이고, 다시 재구성하여 내보내는 ‘순환적 문명’의 모델을 형성한 것이다.
지중해를 내해로 만든 로마 제국
지중해 문명의 절정은 단연 로마 제국이었다. 로마는 정복의 과정을 통해 지중해를 ‘자기 것으로 만든’ 최초의 제국이었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사용했던 말, Mare Nostrum(우리의 바다)는 단지 비유가 아니었다. 로마는 지중해 전역을 행정, 군사, 교역, 문화의 통합 시스템으로 구축했다. 해상로는 잘 정비된 도로망과 연결되었고, 항구는 제국의 말단까지 명령을 전달하는 거점이 되었다.
로마의 해양 활동은 이전 문명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페니키아가 상업 중심의 해양 도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면, 로마는 중앙집권적 통제 체계를 통해 바다를 제도화했다. 이는 곧 제국적 상상력의 핵심이었다. 즉, 바다를 중심으로 구성된 거대한 제국은 육지보다 더 효율적으로 지배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통합의 바탕에는 여전히 바다라는 매개가 존재했다. 지중해가 없었다면 로마 제국도 존재할 수 없었으며, 로마가 만들어낸 통합된 세계 역시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경철은 이를 두고 "바다는 로마 제국의 척추이자, 그 정체성의 기반"이라고 표현한다.
지중해 문명의 네트워크: 연결된 세계의 탄생
지중해는 단지 도시와 제국의 바탕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양한 언어, 종교, 풍습이 섞이고 충돌하고 융합된 공간이었다. 주경철은 지중해를 ‘문명의 바다’이자 동시에 ‘혼종의 바다’로 바라본다. 이 바다 위에서 상인과 철학자, 정복자와 피지배자, 노예와 시민이 끊임없이 만났고, 그 만남은 정체성과 세계관의 재편을 낳았다.
예를 들어, 로마의 종교는 동방에서 들어온 신비주의 종파와 혼합되었고, 그리스 철학은 북아프리카의 라틴어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유대교, 기독교, 이교의 충돌 역시 모두 이 ‘내해 세계’ 위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융합은 단지 문화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문명의 구성 방식, 즉 ‘순수한 하나’가 아닌 ‘겹쳐진 다수’를 기반으로 한 다층적 정체성의 기원을 보여준다. 현대의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여전히 복합적인 역사적 기억을 안고 있는 이유도, 이 오랜 문명의 층위 때문이다.
이 장을 마무리하며 ― 바다가 빚어낸 도시들, 그리고 인간
지중해는 바다이지만, 동시에 도시 문명의 어머니였다. 이 공간에서 인류는 바다를 두려움이나 경계가 아니라, 도시를 잇는 통로, 문명을 실어 나르는 길, 정체성을 교차시키는 무대로 인식했다. 주경철이 말하듯, 지중해는 ‘수로가 만든 도시들’이 연결된 거대한 하나의 문명체였다.
그리고 이 문명체의 주역은 땅에 뿌리를 내린 자들이 아니라, 바다 위를 건넌 자들이었다.
이들은 도시를 세우고, 항로를 설계하며, 문화를 교차시키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고대 세계는 바다를 통해 만들어졌다. 아니, 바다 그 자체가 세계였던 셈이다.
제3장. 인도양과 동아시아 ― 또 다른 해양 문명의 중심
역사는 흔히 대서양과 지중해를 중심으로 해양 활동을 설명해 왔다. 그러나 주경철은 『바다인류』에서 분명히 말한다. “세계사의 바다를 말할 때, 인도양을 빼놓고는 그 어떤 문명사도 온전할 수 없다.”
이 장은 우리가 너무 쉽게 잊어버린 인도양과 동아시아 해역의 거대한 해상 문명권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곳은 유럽이 등장하기 오래전부터 서로 다른 문화권을 잇는 ‘수평적 네트워크’의 무대였으며, 무력보다 교역과 신뢰, 관습이 지배하는 질서의 공간이었다.
인도양, 대항해 이전의 세계 네트워크
인도양은 육지로 완전히 둘러싸이지 않았지만, 그 구조상 내해처럼 작동한 바다였다. 동쪽으로는 말라카 해협과 남중국해, 서쪽으로는 아라비아해와 아프리카 동해안, 북쪽으로는 인도 아대륙과 페르시아만이 연결된 이 해역은, 기원전 수천 년부터 활발한 항해가 이루어지던 세계사의 숨은 대동맥이었다.
특히 인도양은 계절풍(monsoon)이라는 천연 항로의 도움을 받아, 비교적 예측 가능한 방향성과 주기를 기반으로 항해가 가능했다. 이에 따라 상인들은 봄에 한 방향으로 항해해 가을에 돌아오는 순환형 교역 시스템을 정착시켰고, 이는 바다에 일시적으로 정주하는 '계절 상인' 공동체를 형성하게 했다.
주경철은 이를 ‘바다 위의 공동체적 질서’로 파악하며, 여기서 핵심은 강제나 정복이 아니라 협상과 신뢰라는 점을 강조한다. 유럽의 대항해 시대가 폭력적 팽창과 식민으로 이어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인도양의 세계는 비교적 안정적이며 유기적인 상호 교류의 바다였다.
이슬람 상인들: 바다 위의 거대한 그물망
이 인도양 세계의 중심에서 가장 두드러진 존재는 단연 이슬람 상인들이었다. 7세기 이슬람의 확산 이후, 아라비아 상인들은 종교적 유대와 상업적 네트워크를 결합해 인도, 동남아시아, 동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해양 거점을 구축해 나갔다. 이들은 단지 상품을 운반하는 중개인이 아니라, 지식과 언어, 신념을 전달한 문명의 중계자였다.
이슬람 상인들은 해양 무역에 특화된 배(다우선, dhow)를 이용해 계절풍을 따라 항해하며, 각지의 항구에 모스크와 학교, 상인 조직을 세워 장기적 교역 거점을 조성했다. 특히 스와힐리 해안의 항구 도시들(모곰바, 킬와 등)은 인도양 무역망의 중요한 접점으로, 아프리카 내륙의 자원과 아라비아-인도-중국의 물품이 교차하던 곳이었다.
주경철은 이슬람 상인을 ‘해상판 디아스포라’라 부른다. 그들은 바다 위에 국가를 세우지는 않았지만, 그 어느 제국보다 유연하고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는 국가의 개입 없이도 바다가 인간 사회의 질서 공간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화의 대원정: 동아시아 해양 질서의 절정
중국의 항해를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정화(鄭和)다. 명나라 영락제의 명을 받아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총 7차례에 걸쳐 거대한 함대를 이끌고 인도양까지 항해한 정화는, 유럽의 콜럼버스나 바스쿠 다가마보다도 한 세기 앞서 초국적 해양 활동의 선례를 남긴 인물이다.
정화의 함대는 그 규모부터 상상을 초월했다. 수백 척의 대형 선박, 수만 명의 병력과 기술자, 외교사절단이 함께 움직이며 각국의 군주와 교류했고, 이를 통해 명나라는 ‘천자의 나라’로서의 위계질서를 바다 위로 확장하고자 했다.
하지만 주경철은 정화의 원정을 단순한 ‘중국식 팽창’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이 원정이 오히려 무력보다는 관례와 외교, 표시와 상징, 공물과 예우를 기반으로 한 해양 권위의 구현이었다고 말한다. 정화의 항해는 식민이 아니라 질서의 시위였고, 이를 통해 명나라는 바다 위에서 하나의 ‘우주 질서’를 제시하려 했다.
흥미롭게도, 이 엄청난 항해는 곧 폐지되고 잊힌다. 이는 중국이 해양 진출보다는 대륙 내 정비와 북방 방어를 우선시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며, 결과적으로 동아시아의 해양 문명이 중단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서 문명의 해양 접점과 ‘비유럽 중심사’의 가능성
이처럼 인도양과 동아시아의 해상 활동은 유럽의 대항해 시대 이전부터 풍요로운 문명적 접점을 형성하고 있었다. 인도, 아라비아, 페르시아, 중국, 동남아는 각각 독자적인 문화권이었지만, 바다 위에서는 서로를 필요로 했고, 이해했고, 섞여갔다. 유럽인들이 이 해역에 등장하기 전, 이미 세계는 하나의 ‘연결된 바다’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장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대항해시대와 유럽의 해양 제국주의를 중심으로 해양사를 이해해 왔다. 그러나 그 이전, ‘다른 바다’에서 이미 존재하던 다중 중심적 문명 네트워크는 인류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주경철은 이를 “다층적 해양 질서의 회복”이라고 부른다.
지중해가 그랬듯, 인도양 또한 중심이 아니라 접점으로 기능했으며, 그 위에는 위계가 아니라 상호성의 윤리가 존재했다. 바다는 단일 제국이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공동으로 그려낸 문명의 파노라마였던 것이다.
이 장을 마무리하며 ― 바다는 늘, 여러 개였다
‘세계사의 바다’는 단 하나가 아니다.
지중해, 대서양, 인도양, 동중국해 ― 각각은 고유한 질서와 기억을 지닌 채, 서로 다른 문명을 품어왔다. 그리고 그 안에는 유럽 중심의 해양사에서 지워졌던 이슬람 상인의 이름, 정화의 함대, 스와힐리 해안의 항구 도시들이 살아 숨 쉰다.
『바다인류』의 이 장은, 우리가 잊었던 또 다른 해양 문명의 중심을 조명함으로써, 해양의 세계사가 본래부터 다중적이었음을 일깨운다.
그리고 그 다중성 속에서 인류는 더욱 복잡하게, 풍부하게, 서로 얽혀 살아왔다.
바다는, 단 한 번도 하나의 이야기로 환원된 적이 없다.
바다는 늘, 여러 개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제4장. 대항해 시대 ― 바다의 패권을 향한 질주
15세기말, 유럽의 항구 도시들에 바람이 불었다. 그것은 단순한 해풍이 아니라, 세계를 재편할 욕망이 실린 팽창의 바람이었다.
『바다인류』에서 주경철은 이 시기를 “바다가 세계사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던 전환기”로 규정한다.
이 장은 바로 그 결정적 분기점, 즉 유럽이 바다를 통한 세계 제패의 길을 걷기 시작한 대항해 시대를 심층적으로 조망한다.
바다 너머의 세계를 향해 ― 유럽, 수평선을 넘다
그 시작은 두려움과 신비였다. 중세 유럽에서 바다는 끝과 절벽의 세계였다. 사람들은 수평선 너머에 괴물이 살고, 지구의 가장자리에서 추락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호기심과 상업적 욕망, 오스만 제국에 의해 차단된 육로 무역의 대안 추구, 그리고 과학기술의 진보는 그 두려움을 뚫고 나아갈 동력을 제공했다.
바로 여기서, ‘항해자’라는 새로운 인간형이 등장한다.
이들은 무역상도 아니고 단순한 모험가도 아니었다. 그들은 국가와 자본의 지원을 받아 미지의 세계를 조직적으로 탐색하고 점유하는 전략가였다.
콜럼버스, 바스쿠 다 가마, 마젤란.
이 이름들은 단지 ‘위대한 탐험가’로 포장되기에는 지나치게 복합적인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항해로 세계의 구조를 바꾸었고, 해양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전환시켰다.
콜럼버스: 실수로 열어버린 신대륙
1492년, 이탈리아 출신의 항해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 서쪽으로 향했다. 그의 목표는 인도였으나, 도달한 곳은 미지의 대륙 ― 훗날 ‘신세계’라 불리게 될 아메리카였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도달한 땅이 인도의 일부라 확신했고, 이에 따라 아메리카 원주민은 ‘인디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주경철은 콜럼버스를 단순한 발견자가 아닌, **‘지리적 오해를 기반으로 한 패러다임 전환의 주체’**로 평가한다.
그의 항해는 단지 새로운 땅을 연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세계관을 붕괴시키고 새로운 권력 질서를 초래한 사건이었다.
이후 수십 년간, 스페인은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원주민을 정복하고, 은과 금을 수탈하며, 해양 제국으로 변모해 갔다.
여기서 바다는 더 이상 단순한 통로가 아니었다. 바다는 점령과 약탈, 교역과 전염병, 노예와 자본이 교차하는 거대한 무대가 되었다.
바스쿠 다 가마: 인도항로의 개척과 해상제국의 탄생
1498년,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바는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 캘리컷에 도달했다. 이는 유럽인이 육지 경로 없이 동양과 직접 연결된 첫 사례였다.
이 항해를 기점으로 포르투갈은 인도양 해역에 해상 거점을 구축하고, 무력을 동반한 무역을 통해 해상제국을 형성해 나간다.
주경철은 다 가마의 항해에서 ‘유럽적 세계질서의 씨앗’을 본다.
이는 단순한 교역의 확대가 아니라, 무력, 독점, 지배 체계를 수반한 해상 패권 모델이었다. 포르투갈은 교역로 자체를 통제하고, 항구마다 요새를 세우며, 바다에서 ‘관세와 영토’를 설정했다.
즉, ‘바다의 영토화’가 이때부터 본격화된 것이다.
다 가마는 바다를 통해 새로운 권력의 작동 방식을 창조했다. 그것은 대륙의 지배와는 다른, 유동적이면서도 압도적인 권력이었다.
마젤란: 세계 일주의 시작, 지구 인식의 전환
1519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스페인 국왕의 후원을 받아 세계 일주 항해를 시작한다. 그는 남미 남단의 해협을 지나 태평양을 횡단했으며, 끝내 필리핀에서 전사하지만, 그의 함대 일부는 끝까지 항해를 마쳐 인류 최초의 지구 일주를 완수한다.
마젤란의 항해는 지구가 둥글다는 이론의 실증이자, 지구의 경계를 체감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유럽이 바다를 단지 나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완전히 감싸고 지배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분기점이었다.
즉, 세계는 더 이상 신화적 공간이 아니라, 정복 가능한 지리적 대상이 된 것이다.
주경철은 이를 통해, “바다를 통제하는 자가 세계를 통제한다”는 인식이 이 시기에 본격화된다고 본다.
대항해 시대는 단순한 항해의 연속이 아니라, 바다를 전략화한 유럽의 세계 장악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해양 제국의 탄생과 새로운 문명의 질서
이 시기 유럽 국가들은 항해의 주체를 개인이 아니라 국가로 전환시킨다. 항해는 곧 식민화의 전조이며, 해군은 무역과 정복의 양날이 된다. 바다는 군사적 통로, 상품의 경로, 그리고 종교 전파의 길로 재편되었다.
주경철은 대항해 시대를 단지 ‘탐험과 발견’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는 이 시기를 폭력과 자본, 제국의 원형이 형성된 결정적 시대로 본다.
유럽은 바다를 ‘지리적 자유’가 아닌 ‘지배의 시스템’으로 탈바꿈시켰고, 그 결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항구들은 유럽의 권력에 편입되어 갔다.
이로써 바다는 다시는 이전의 바다가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소통의 매개나 다문화 교류의 장이 아닌, 군사적 충돌과 독점의 공간이 된다.
마무리하며 ― 바다를 둘러싼 권력의 첫 번째 혁명
『바다인류』 제5장은 유럽의 대항해 시대를 통해 바다가 어떻게 패권의 도구로 변모했는지를 조망한다.
콜럼버스는 신세계를 발견했고, 다 가마는 동양의 길을 열었으며, 마젤란은 지구를 하나의 단위로 환원시켰다.
이 모두는 바다가 인류사에서 최초로 단일화되고, 계산 가능하며, 분할 가능한 공간이 되었음을 뜻한다.
즉, 바다는 더 이상 자연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기술적 공간이 된다.
이제, 바다를 차지한 자가 세계를 차지한다는 믿음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국제 해양법, 해군력, 글로벌 무역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바다는, 인류 최초의 지구적 권력 장이 된 것이다.
제5장. 근대 해양 제국과 자본주의의 탄생
“바다는 어떻게 세계 경제를 만들었는가?”
주경철은 이 장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근대 자본주의의 토대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묻는다. 그의 대답은 명확하다.
그 시작은 육지가 아니라 바다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초기 개척 항해에서 시작해, 네덜란드와 영국이 주도한 해상 무역과 금융 시스템으로 이행된 근대 세계 체제의 씨앗은, 바로 바다 위에서 뿌려졌고 성장했다.
해양 제국의 경쟁: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대항해 시대 이후, 바다 위의 세계는 단순한 교역로를 넘어선 권력의 장으로 진화한다. 초기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앞섰다.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세계를 동서로 나누어 점령할 만큼 두 국가는 바다를 자국의 영토처럼 인식했다. 스페인은 아메리카에서 금과 은을 수탈하고, 포르투갈은 인도양에서 향신료 무역을 독점했다.
하지만 17세기에 접어들며, 새로운 강자가 등장한다. 네덜란드와 영국이다.
네덜란드는 무력과 상업을 결합한 ‘해상 상인 국가’로 부상했고, 동인도회사(VOC)를 중심으로 국가-자본-무역의 3요소를 결합한 초국적 상업 시스템을 구축했다.
영국 역시 영국 동인도회사(EIC)를 통해 아시아 무역의 주도권을 확보하며, 해양의 제국으로 자리 잡아간다.
주경철은 이 흐름을 단순한 국가 간 패권 전쟁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이 경쟁을 통해 근대적 ‘해상 자본주의 질서’가 구축되는 과정으로 본다. 즉, 바다 위에서 이윤의 논리, 독점의 구조, 금융의 기술이 집적되며, 자본주의의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과 무역의 바다 ― 동인도회사와 금융의 시작
동인도회사는 세계 최초의 근대식 주식회사였다.
VOC는 수많은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배를 띄웠고, 항해 후 이윤을 배분했다. 리스크의 분산, 이윤의 극대화, 상설 조직, 회계 시스템 등 오늘날 기업 경영의 기초가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주경철은 이 회사를 단지 무역조직이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의 기관차”로 해석한다.
해상 교역은 단순히 상품의 이동이 아니라, 거대한 금융 시스템의 탄생 조건이었다.
배가 출항하기 전부터 보험, 선물 계약, 환어음, 해상 대출이 발생했고, 리스크 관리와 기대 이윤의 예측이 경제의 논리를 구성했다.
바다는 곧 금융공학의 실험실이 되었고, 항구도시들은 국제 금융의 허브로 부상했다. 암스테르담, 런던, 리스본, 제노바 등은 단순한 항구가 아니라 자본의 도시가 된다.
노예무역: 바다에서 이루어진 인간의 상품화
이 경제 질서의 가장 어두운 면이자 핵심 중 하나는 바로 노예무역이다.
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를 잇는 ‘삼각무역’은 이윤 창출의 정점이었다.
유럽에서 총과 술, 금속을 아프리카로 보내면, 아프리카에서는 노예가 실려 아메리카로 이송된다. 아메리카에서는 그 노동력을 통해 사탕수수, 면화, 커피 등의 상품이 생산되어 다시 유럽으로 되돌아온다.
이 삼각무역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바다 위의 감옥’, 즉 노예선이다.
주경철은 이 배들을 “움직이는 지옥”이라 표현하며, 자본주의의 성장이 인간성의 말살 위에 세워졌음을 고발한다.
수십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바다에서 죽었고, 살아남은 자들도 뿌리 뽑힌 채 타지의 노동력으로 착취당했다.
이 체계는 상품의 이동과 자본의 축적, 인간의 비인간화를 결합한 가장 극단적인 경제시스템이었다.
해적과 보험 ― 무정부의 바다, 질서의 기술
자유롭게 보이는 바다는 사실 무정부 상태의 공간이었다.
무역선이 늘어나고, 식민 거점이 늘어날수록, 이들을 노리는 해적들도 바다에 출몰했다. 이들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때로는 국가의 지원을 받는 사략선이었고, 국가와 민간 사이의 회색지대에 존재했다.
주경철은 해적의 존재를 통해 바다의 모순적 이중성을 드러낸다.
한편으로는 법과 질서가 미치지 않는 자유의 공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유가 폭력으로 전환되는 무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해상 보험이었다.
영국의 로이즈(Lloyd’s)를 중심으로 한 보험 시스템은, 배의 손실 위험을 분산시키는 기제를 마련했고, 이는 리스크를 거래하는 시장의 출현을 의미했다.
이로써 바다는 단순한 무역 공간이 아니라, 위험을 측정하고 통제하는 금융의 공간으로 재정의된다.
경제 질서와 폭력의 공진화
『바다인류』는 근대 자본주의가 단지 ‘경제의 진화’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폭력과 무력, 인종적 불평등의 질서와 함께 형성되었음을 강조한다.
해상 제국은 총과 배, 군인과 상인, 상선과 해군을 동시적으로 운용했고, 경제적 동기와 군사적 수단이 뒤엉킨 채 작동했다.
이는 곧 근대 자본주의의 구조적 폭력을 의미한다.
바다는 연결과 이동의 통로이면서도, 착취와 파괴, 지배와 분할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상거래’라는 이름 아래 은폐된 인류의 비극을 목격하게 된다.
마무리하며 ― 자본주의의 맨얼굴은 바다 위에 있었다
제6장은 명료하게 드러낸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세계는 본래부터 국가와 무역, 무력과 자본이 결합된 구조였으며, 그 첫 실험장은 바로 바다였다.
바다에서 세계는 하나의 경제 단위로 통합되었고,
바다에서 인간은 상품이 되었으며,
바다에서 위험은 수익으로 전환되었고,
바다에서 자본은 자신만의 질서 ― 냉정하고 정교하며, 동시에 잔혹한 질서 ― 를 만들었다.
『바다인류』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의 실체를 이해하고 싶다면, 먼저 배를 타고 17세기의 바다로 나가 보라.
그곳에 오늘날 우리의 세계가 시작된 첫 흔적이 남아 있다.
제6장. 근현대의 바다: 국가, 법, 생존의 문제
해양법과 영해 개념의 탄생, 해양 자원의 쟁탈, 어업 전쟁, 해양 오염 등 새로운 갈등
해양법과 영해 개념의 탄생
19세기 중반,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바다는 더 이상 단순한 교역의 통로로 존재하지 않았다. 해상 교역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선진국들이 대규모 해양 자원을 확보하려는 욕망이 커짐에 따라, 국가 간 해양 영역의 경계에 대한 논의는 점차 법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는 근대 국가가 확립되면서 각국이 자국의 해양영토를 주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해라는 개념은 이 시기에 탄생하며, 바다의 소유권과 사용권을 둘러싼 갈등의 시작을 알렸다.
영해의 개념은 국제법에서 바다의 영토적 구획을 확립하기 위한 중요한 도전이었다.
이전까지 해양은 모두의 영역으로 여겨졌으나, 근대 국가들이 영해를 자국의 법적 통제 하에 두려는 의도가 강해지면서 바다는 점차 국가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
해양법(UNCLOS, 국제해양법)의 발전은 이러한 국가의 주권과 해양 공간의 법적 해석을 구체화한 중요한 법적 장치로 작용했다.
해양 자원의 쟁탈, 어업 전쟁
영해의 개념이 확립되면서, 바다는 더 이상 무제한적인 자유의 바다로 존재하지 않았다.
자원의 대량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던 20세기 초, 어족자원에 대한 경쟁은 국가 간 갈등을 야기했다.
특히 대서양, 태평양, 남극 주변의 해양 자원은 국가의 경제적 생존과 직결되었고, 이는 어업 전쟁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고래와 어류는 산업화 시대에 중요한 원료 자원으로 간주되었으며, 각국은 이를 통해 경제적 자립을 꾀했다.
그러나 어족자원의 남획은 바다의 자원 고갈을 초래했으며, 이에 따라 자원의 지속 가능한 사용을 위한 국제적 논의가 필요해졌다.
1960~70년대, 어족자원의 국제적 규제가 중요해지면서 해양법에서 어업의 규제와 자원의 공유에 대한 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자원 경쟁은 여전히 국가 간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그 결과, 국가들은 해양 자원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해양 자원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각국 간 어업 협정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하고자 했다.
해양 오염과 환경 갈등
해양 자원의 쟁탈이 격화되는 동시에, 산업화와 도시화의 확산으로 인해 해양 오염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다.
석유 시추, 화학 물질 배출, 플라스틱 쓰레기 등으로 인해 바다는 점점 더 오염되었고, 이는 해양 생태계와 인류의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바다 오염을 막기 위한 국제적인 환경 법률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주경철은 해양 오염의 문제를 단순히 환경적 이슈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국가 간 협력과 갈등을 어떻게 유발하는지,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역학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집중한다.
해양 오염 문제는 특히 해상 교역과 국제 관광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국제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는 해양 환경 보호를 위한 국제 규약과 해양 환경 협정으로 발전하며, 이를 통해 각국은 국제적인 규제 체제를 구축하고자 한다.
‘바다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정치적 질문
“바다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은 근현대 해양사에서 매우 중요한 정치적 물음이 되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각국은 자국의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설정하면서 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양은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드는 영역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국제 정치의 핵심이 되었다.
특히, 자원 채굴과 영해 경계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지속적인 문제로 남아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 분쟁은 끝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남중국해에서 발생하는 영유권 분쟁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 간의 심각한 정치적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이 문제는 국제 해양법과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지만, 국가들의 자원 개발 의욕과 경제적 이해관계는 여전히 법적 해결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이 장을 마무리하며 ㅡ 바다는 누구의 것인가?”: 소유, 통제, 그리고 공존의 문제
이 장에서 근현대 해양법의 발전과 바다의 자원 관리 문제, 그리고 해양 오염 등의 갈등을 중심으로 바다와 국가 간의 관계를 탐구했다.
주경철은 바다에 대한 법적 규제와 국가 간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자원 개발과 환경 보호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 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함을 경고한다.
또한, 바다의 소유권 문제는 국제 정치와 경제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해결되어야 함을 시사하며, “바다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제7장. 바다와 인간의 미래: 연속과 전환의 경계에서
기후 위기와 해양 생태계의 붕괴, 해수면 상승, 바다 쓰레기, 해양 난민 문제, ‘해양적 상상력’과 지속 가능한 인류 문명의 방향
기후 위기와 해양 생태계의 붕괴
21세기 들어 기후 변화는 인류에게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그중에서도 바다는 기후 변화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기후 변화는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며, 이는 해양 온도의 상승, 산호초의 백화 현상, 어종의 이동 등 바다의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주경철은 바다의 변화를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와 밀접하게 연관시키며, 바다의 생태계 붕괴가 지구 생명체의 공멸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해양 생태계는 지구의 기후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다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며, 이는 지구 생태계의 기초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해양 온난화는 수중 생물의 서식지를 위협하며, 특히 산호초, 어류, 해양 포유류 등 다양한 종들의 생명선을 위협하고 있다.
해수면 상승, 바다 쓰레기, 해양 난민 문제
〈해수면 상승〉
기후 변화의 직접적인 결과 중 하나는 해수면 상승이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은 매년 상승하고 있으며, 이는 저지대 국가와 섬나라들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해수면 상승은 저지대 해안을 잠기게 만들고, 많은 해안 도시와 농경지를 침수시키며, 인간 거주지와 생태계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태평양의 섬나라들과 방글라데시, 몰디브 같은 나라들은 국토의 대부분이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해 있다.
주경철은 이러한 해수면 상승의 문제를 다루면서, 인류의 정착지와 자원 배분에 대한 전반적인 재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바다 쓰레기〉
또한, 바다 쓰레기 문제는 환경 파괴와 인류의 무책임한 소비로 인한 심각한 위협이다.
전 세계에서 매년 수백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유입되며, 이는 해양 생물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한다. 특히, 플라스틱 오염은 물고기, 조개, 새, 심지어 인간에게도 간접적인 피해를 준다.
바다의 쓰레기 섬, 특히 태평양의 거대 쓰레기 지대는 환경 보호의 중요한 경고가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한 국가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 지구적 문제이다.
주경철은 바다의 쓰레기 문제가 단순한 환경적 이슈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 경제적 문제로까지 확산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함을 지적한다.
〈해양 난민 문제〉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자연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해양 난민이 되어 타국으로 이주하고 있다. 특히, 섬나라와 저지대 국가들의 주민들은 자기 땅을 잃어버리며, 생존을 위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야 한다.
해양 난민 문제는 단순히 자연재해나 해수면 상승의 결과가 아니다. 이는 정치적, 경제적 문제로서, 수많은 국가 간 분쟁과 난민 수용 문제를 일으킨다.
주경철은 해양 난민 문제를 전 지구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인류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다가 자연적 경계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경제적 경계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해양 난민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해양적 상상력’과 지속 가능한 인류 문명의 방향
〈해양적 상상력〉
바다는 단순히 자연의 일부에 그치지 않는다. 주경철은 ‘해양적 상상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바다가 인류 문화와 사고의 틀에 미친 영향을 설명한다.
해양적 상상력은 바다를 넘는 상상력이며, 인간의 지리적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미지의 바다는 인류에게 미래를 탐색하는 공간이자, 상상력의 실험대로 작용했다. 바다는 경제적 자원뿐만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 자원으로서 인류 문명의 발전을 촉진하는 원동력이었다.
주경철은 이러한 해양적 상상력이, 현대 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문명을 구축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한다. 바다는 과거의 탐험과 미래의 가능성을 연결하는 중요한 상징적 공간으로, 전환의 시대에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지속 가능한 인류 문명의 방향〉
지속 가능한 문명을 위한 첫걸음은 바다와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주경철은 해양의 자원을 소비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필요성을 강조하며, 자연과의 공생을 위한 인류 문명의 전환을 촉구한다.
지속 가능한 경제 모델과 환경 보호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전환임을 주경철은 일깨운다. 바다는 기후 위기, 환경 파괴, 자원 고갈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지속 가능한 해양 자원 관리와 국제적 협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적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 ㅡ 바다는 경계가 아니라 연결이다
『바다인류』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 요약, 역사 속 바다의 역할을 현대 세계와 연결하는 사유, 독자로서 다시 바다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바다인류』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 요약
주경철의 『바다인류』는 바다를 단순히 자연의 요소나 지리적 경계로 보는 기존의 시각을 넘어, 인류 문명의 진화와 인간사의 흐름 속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존재로 재조명한다. 책은 바다를 통해 인류의 역사와 문명의 교차점을 탐구하며, 바다의 중심성을 강조한다. 그 중심 메시지는 단 하나, 바다는 경계가 아니라 연결이다.
주경철은 바다가 단지 국경을 가르는 존재가 아니라, 문명과 문화의 연결 고리로 기능했다고 주장한다. 고대 문명에서부터 대항해 시대, 근현대의 해양법에 이르기까지, 바다는 단순히 지나가는 길이 아닌, 문화적, 상업적, 정치적 교류의 중요한 무대였다. 탐험과 교역, 전쟁과 정복 등 모든 인류의 주요 역사적 사건은 바다를 중심으로 펼쳐졌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 경제와 국제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바다는 연결의 상징이며, 이 책은 바다의 의미를 단순히 지리적, 자연적 영역으로 한정 짓지 않고, 인류 역사의 중요한 축으로 펼쳐놓았다.
역사 속 바다의 역할을 현대 세계와 연결하는 사유
주경철은 역사 속 바다의 변화와 그에 따른 인류 문명의 변화를 심도 있게 다루며, 과거의 바다가 현대 세계에 미친 영향을 동시대적 시각으로 풀어낸다. 바다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물리적 공간이지만, 그 안에 인류의 노력과 갈등, 희망과 좌절, 발전과 퇴보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대 그리스의 항해술에서부터 대항해 시대의 탐험에 이르기까지, 바다는 지식의 확장과 상업적 번영을 가능하게 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국제 무역, 에너지 자원, 해양 생태계 등 여러 중요한 문제를 통해 현대 세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주경철은 바다가 경제적, 정치적 맥락에서 어떻게 현대 사회와 맞닿아 있는지를 설명하며,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연결 고리로서 바다의 중요성을 명확히 한다.
바다는 단순히 자원을 넘어, 문명의 발전, 정치적 동맹, 문화적 소통의 중요한 도전과 기회를 제공한 존재였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환경 문제나 국제 갈등, 해양 자원 경쟁 등 여러 현대적 과제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바다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것은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열쇠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주경철은 해양 자원, 환경 문제, 국제법 등을 통해 바다가 지금, 여기에서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한다.
독자로서 다시 바다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바다인류』를 읽은 독자는 바다에 대한 시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바다는 단순한 물리적 경계가 아닌, 문화적, 경제적 교류의 중심으로서 우리의 일상과 사회적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여전히 지구적 연결망의 핵심에 놓여 있다.
우리는 바다를 자원의 보고나 통행로로만 인식하기 쉽지만, 그 이면에는 인류의 역사적 경험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교훈이 숨어 있다. 주경철은 우리가 바다를 단순히 환경적이고 지리적 존재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과 지구적 환경을 이어주는 중요한 상징적 존재로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바다를 ‘연결’의 의미로 재구성할 수 있다. 지구상의 바다는 하나로 이어져 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교차시키며 새로운 미래를 위한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 바다는 이제 그저 넘기고 지나가는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상호작용과 문화적 교류를 위한 중요한 매개체로서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바다는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인류와 지구가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장소로 다시 인식되어야 한다.
결론
『바다인류』는 바다를 경계가 아닌 연결의 상징으로 재조명하면서,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어떻게 해양과 밀접하게 연관됐는지 밝혀냈다.
주경철은 바다가 단지 자원을 넘어, 세계 각지의 문명과 사회를 엮는 중심축임을 강조하며, 그 의미를 과거, 현재, 미래로 확장시킨다. 책은 독자에게 바다를 연결의 상징으로 새롭게 바라볼 것을 제안하며,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양적 사고의 중요성을 알린다.
우리는 이제 바다를 단순히 자원의 공급지나 지리적 장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문화적, 환경적 상상력의 원천으로 인식해야 한다. 바다는 인류 문명과 지구의 미래를 이어주는 중심으로서, 그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