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의 시대 –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는 시대의 진실

대중, 미디어, 정치 그리고 진실의 몰락

by 안녕 콩코드



진실이 흔들리는 시대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적 행위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조지 오웰의 이 경고는 이제 더 이상 문학적 상상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포스트 트루스'라 불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진실은 언제나 무겁고 복잡하지만, 감정은 빠르고 단순하다. 정치는 이 단순함에 기대어 진실을 해체하고, 허위 정보는 감정적 공감이라는 외피를 입고 대중 속을 부유한다. 여론은 더 이상 사실에 의해 형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누가 더 크게 말하느냐, 누가 더 효과적으로 분노를 자극하느냐에 따라 움직인다.


이 글은 리 맥킨타이어의 《포스트트루스》와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란》이라는 두 권의 책을 바탕으로, 허위와 선동의 심리, 그리고 그것이 현대 사회를 어떻게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고찰한다.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 속에서 쓰였지만, 두 저자는 공통적으로 감정이 이성을 압도할 때 진실이 어떻게 무력화되는지를 날카롭게 통찰한다.


《포스트트루스》 핵심 정리 및 분석


리 맥킨타이어의 《포스트트루스》는 ‘포스트 트루스(post-truth)’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 사회가 어떻게 진실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되었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저자는 포스트 트루스를 단순히 거짓이 범람하는 시대가 아니라, 사실보다 감정이 우선시되는 시대—즉, 감정적 수용 가능성이 진실의 자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위기로 정의한다. 그 결과, 진실은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나고, “내가 믿고 싶은 것”이 곧 “내가 믿는 것”으로 변질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정보 왜곡을 넘어서 정치적 선동, 가짜 뉴스, 그리고 과학에 대한 혐오로까지 이어진다. 기후변화나 백신처럼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조차, 정치적 입장에 따라 ‘신념의 문제’로 전락하며 객관적 합의는 점차 붕괴된다. 특히 SNS와 알고리즘 기반의 미디어 환경은 사용자에게 선호하는 정보만을 반복적으로 제공함으로써, 확증 편향과 집단 극화를 심화시킨다. 사람들은 자신을 능동적인 정보 소비자라 여기지만, 실제로는 선별된 감정적 자극 속에 갇혀 있는 수동적 수용자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맥킨타이어는 이러한 사회적 구조를 “정보의 과잉이 곧 진실의 해체를 불러오는 미디어 문명의 역설”로 설명한다. 정보는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만, 진실에 도달하는 일은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정보의 양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판단보다 피로를 먼저 느끼고, 결국 가장 간편한 선택, 곧 감정에 호소하는 주장에 이끌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진실은 객관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전락하며, 결국 '신뢰'라는 인간적인 요소에 의존하게 된다.


저자는 말한다. “진실은 논리적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의 문제다.” 이 말은 현대 사회의 가장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진실은 아무리 확고한 증거를 동반하더라도, 그것을 ‘누가’ 말했는가에 따라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진실을 말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진실을 믿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사회는 더 이상 합리적 논쟁의 장이 될 수 없다. 그 순간부터 대화는 단절되고, 감정과 확신만이 남는다.


《포스트트루스》는 단순히 진실이 왜곡되고 있다고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허위 정보가 작동하는 메커니즘과, 그 속에서 진실이 어떻게 침묵하게 되는지를 밝히는 사회심리학적 경고다. 우리가 허위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왜 우리는 진실보다 거짓에 더 쉽게 끌리는가?”


《대중의 반란》 핵심 정리 및 분석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란》은 20세기 초 유럽의 격동기 속에서 ‘대중’이라는 새로운 존재가 어떻게 정치와 문명을 위협하게 되었는지를 통찰한 고전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중’은 단순히 인구의 다수를 뜻하지 않는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대중이란 이성적 성찰보다 감정과 자기 확신에 따라 움직이며,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공격하며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구호로 치환하려 한다.


그런 대중을 사로잡는 존재가 바로 선동가다. 그는 이성적 논리보다는 감정의 언어로 대중을 자극하고, 그들 안에 잠재된 불만과 분노를 증폭시킨다. 중요한 점은, 선동가는 대중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동원’한다는 데 있다. 그 순간 공공의 이성과 토론은 자취를 감추고, 다수의 감정이 진실을 대체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오르테가는 이러한 대중의 등장과 확산을 문명의 위기로 본다. 대중 사회는 전문성과 지식을 경시하고, 지적 권위나 경험이 아닌 감정의 크기로 판단한다. 이는 단순한 사회적 혼란을 넘어, 근대 민주주의 자체를 잠식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오르테가는 말한다. “대중의 목소리가 진실이 되는 순간, 문명은 후퇴한다.” 이는 단순한 귀족적 엘리트주의의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과 권위가 분리되는 순간, 사회 전체가 사유와 토론의 능력을 잃고 ‘즉시성’과 ‘확신’이라는 감정의 열기에 굴복하게 됨을 경고하는 것이다.


오늘날, 오르테가의 통찰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SNS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누구나 ‘자기 확신’을 손쉽게 퍼뜨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깊이 있는 대화는 점점 사라진다. 정치 또한 그의 경고대로 포퓰리즘적 언어에 기울고 있다. 복잡한 정책이나 구조적 개혁은 외면되고, 단순하고 직접적인 감정의 메시지가 표를 얻는다. 대중은 지루한 설명보다 통쾌한 자극을 원하고, 정치는 그 욕구에 충실히 응답한다.


《대중의 반란》은 단순히 대중을 비판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문명이 유지되기 위해 대중이 감당해야 할 교양의 무게, 그리고 이성의 수련이 결여될 때 찾아오는 위기를 경고하는 철학적 성찰이다. 오르테가는 진심으로 문명의 미래를 염려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쩌면 그의 예언이 현실이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교 분석: 허위와 선동의 작동 방식


《포스트트루스》와 《대중의 반란》은 시대도 다르고 접근 방식도 다르지만, 허위와 선동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놀라울 만큼 유사한 진단을 내린다. 두 책은 결국 ‘진실의 해체’라는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만난다. 서로 다른 문을 지나, 같은 어둠을 응시하고 있는 셈이다.


리 맥킨타이어는 《포스트트루스》에서 정보 조작, 알고리즘, 심리적 편향이라는 도구를 통해 ‘허위’가 어떻게 기획되고 유통되는지를 분석한다. 그는 허위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감정을 기반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일종의 ‘산업’이라고 지적한다. 가짜 뉴스는 클릭을 유도하고, 클릭은 광고 수익을 낳으며, 그 수익이 다시 허위 생산을 정당화한다.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보고 싶어 하는 정보만을 반복적으로 노출시켜 확증 편향을 강화하고,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긴다. 그 결과 진실의 자리는 점점 감정적 공감의 언어로 대체되고, 사회는 “진실에 대한 피로감” 속으로 빠져든다.


반면, 오르테가의 《대중의 반란》은 허위가 어떻게 수용되고 강화되는지를 ‘대중’이라는 존재를 통해 조명한다. 그는 이 새로운 대중이 진실을 파괴하는 주체로 등장했다고 보았다. 이들은 전문성과 경험을 불신하고, 복잡한 설명보다는 단순하고 자극적인 언어를 선호한다. 선동가는 바로 이 감정에 호소해 이성을 마비시키고, 공적 토론 대신 즉각적 동조를 이끌어낸다. 오르테가는 이를 두고 “대중의 목소리가 진실이 되는 순간, 문명은 후퇴한다”고 경고한다. 이 말은 단순한 계몽주의의 회고가 아니라, 진실의 위기가 곧 문명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날카로운 통찰이다.


두 책은 모두 진실이 붕괴되는 조건을 ‘감정의 과잉’과 ‘이성의 해체’에서 찾는다. 맥킨타이어는 정보의 과잉이 오히려 판단력을 마비시킨다고 지적하고, 오르테가는 대중 사회가 요구하는 즉각성과 감정의 언어가 이성의 토대를 허문다고 경고한다. 현대 사회에서 선동은 더 이상 군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웅변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뉴스 피드 속 추천 알고리즘에서도, 단 한 줄의 감정적 트윗 속에서도 조용히 작동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두 저자 모두 허위와 선동의 배후에 ‘신뢰의 붕괴’가 자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맥킨타이어는 진실이 더 이상 증거로 설득되는 대상이 아니라,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신뢰 여부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오르테가는 대중이 기존의 권위를 부정하고, 스스로를 절대적 판단자로 여길 때 사회는 ‘자기 확신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고 경고한다. 결국 두 책은, 진실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진실을 지탱하던 신뢰의 구조가 무너졌다는 점에서 현실의 위기를 공유하고 있다.


해법에 있어서도 두 책은 각기 다른 맥락 속에서 서로를 보완한다. 《포스트트루스》는 팩트체크, 미디어 리터러시, 알고리즘 투명성 등 시스템적 개선을 중심으로 ‘정보적’ 접근을 제안한다. 반면 《대중의 반란》은 교양과 이성, 자기 절제 같은 인문학적 수양의 회복을 강조하며 태도의 변화를 촉구한다. 전자가 구조의 변화를 요구한다면, 후자는 개인과 사회의 태도 변화를 말한다. 한쪽은 ‘무엇을 믿는가’를 묻고, 다른 한쪽은 ‘믿는 주체는 누구인가’를 질문한다.


결국 진실을 지키려면 이 두 접근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기술적 개선만으로는 무너진 신뢰를 온전히 회복할 수 없고, 도덕적 당위만으로는 허위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조지 오웰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적 행위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지금 우리는 진실을 선택할 용기를 실천해야 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오늘날의 적용: 허위가 지배하는 시대의 정치


오늘날 정치 언어는 점점 분노와 공포에 기대고 있다. ‘감정 정치’는 냉철한 토론보다 자극적인 선동을 선호하며, 정치인은 사실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언어로 지지층을 결집한다. 이 과정에서 허위 정보는 단순히 ‘사실이 아닌 말’이 아니라, 감정을 결속시키는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작동한다. 진실이 무시되는 것을 넘어, 아예 ‘무기화’되고 있는 셈이다.


SNS는 이러한 감정 정치가 가장 잘 작동하는 무대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분노, 공포, 혐오와 같은 강한 감정에 반응해, 이를 증폭시키는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한다. 특히 딥페이크 기술, 조작된 영상, 가짜 뉴스는 선거나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악용되며, 대중의 판단을 흐린다. 허위 정보는 빠르고 감정적이며, 무엇보다 ‘사람들이 믿고 싶은 것’을 말해주기 때문에 그 파괴력은 더욱 크다.


이런 구조 속에서 정치적 포퓰리즘과 반지성주의는 서로 손을 잡는다. 전문가의 설명은 ‘기득권의 언어’로 치부되고, 과학이나 통계는 조작된 것으로 의심받는다.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이런 불신을 이용해 자신이 ‘진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며, 복잡한 정책 대신 감정적 공감을 앞세운다. 결국 정치의 무대는 ‘무엇이 옳은가’보다 ‘누구의 분노가 더 큰가’를 겨루는 장으로 변질되고 만다.


그렇다고 ‘대중의 힘’ 자체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결국 다수의 의지 위에 세워진 제도다. 그러나 그 힘이 감정과 확신만으로 움직일 때,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갉아먹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중의 힘이 이성 위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돕는 사회적 장치다. 교육, 미디어 리터러시, 비판적 사고 훈련, 그리고 정치적 책임성은 진실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


우리는 감정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 감정이 진실의 적이 되지 않도록, 이성을 지키는 기술과 태도를 더욱 절실히 갖춰야 한다.


허위의 시대에 진실을 말하는 용기


《포스트트루스》와 《대중의 반란》은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언어로 쓰였지만 공통적으로 진실과 이성의 위기를 경고한다. 하나는 정보 과잉과 감정 정치의 세계에서, 다른 하나는 대중의 자기 확신과 반지성주의 속에서 진실이 어떻게 침묵당하는지를 보여준다. 오늘의 우리는 이 두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허위와 선동이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진실은 더디고 조용하게 걸어온다. 그것은 함성을 동원하지 않고, 오히려 외면당한 자리를 고집스럽게 지킨다. 중요한 것은, 그 느린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다. 감정의 물결에 휘둘리지 않고, 진실을 선별해 내는 능력—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시민적 미덕이다. 진실을 말하는 일이 불편해진 지금, 진실을 견디는 힘이 우리에게 절실하다.




관련 개념 소개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2016년 옥스퍼드 영어사전 올해의 단어. 감정과 개인의 신념이 객관적 사실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 시대를 지칭. 이는 단순한 ‘거짓말의 증가’가 아니라, ‘진실의 무력화’라는 구조적 변화이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개인이 기존의 신념을 강화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경향. 허위 정보의 확산과 진영 논리를 강화하는 핵심 심리 메커니즘.


알고리즘 편식(Filter Bubble)

SNS나 검색 엔진 알고리즘이 사용자에게 선호하는 정보만을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시각을 차단하고 정보의 편향성을 증폭시키는 현상.


♤ 연관 인물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진실의 왜곡과 선동이 어떻게 전체주의 체제를 가능하게 했는지를 면밀히 추적한다. 그녀는 “거짓이 만연하면 진실이 사라지고, 진실이 사라지면 사유 자체가 멈춘다”고 경고했다. 진실의 부재는 단지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 능력 자체를 마비시키는 정치적 위기라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허구의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대규모 협력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허구가 ‘진실’로 오인되는 순간, 그것은 오히려 위험한 힘이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허구는 인간을 하나로 묶지만, 진실은 인간을 시험한다.”


♤ 연관 현대 사례


소셜미디어 군중심리

댓글과 리트윗, 좋아요의 숫자가 여론을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 이 환경에서는 허위 정보가 진실보다 빠르게 확산되며, 집단적 정서는 손쉽게 조작된다.


정치권 스캔들과 선동적 담론

종종 사실 그 자체보다 의혹을 부풀리는 데 집중한다. '정치적 프레이밍'과 감정에 호소하는 언어는 진실을 전달하기보다, 분노와 오해를 유통시키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다.


딥페이크(Deepfake)

인간의 감각을 교묘히 속이는 기술. 가짜 영상이 실제처럼 유통되는 오늘날, 우리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


♤ 참고 문장과 해설


조지 오웰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적 행위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 《1984》에서의 이 경고는, 허위가 체제의 도구가 될 때 진실은 가장 위험한 언어가 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진실은 언제나 사랑받지 않는다.”

→ 인간은 자기 확신에 도전하는 진실보다, 자신을 위로해 주는 허구를 더 쉽게 선택한다는 통찰.


마거릿 애트우드

“무관심이야말로 거짓말이 자라는 땅이다.”

→ 선동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진실에 대한 사회 전체의 무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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