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부터의 고백: 선의와 자기기만의 딜레마

by 안녕 콩코드

"가령 곤란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그에게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고, 그 역시 간절히 도움을 바란다. 그런데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바라는 사람과 도와주려는 사람을 이용하려는 사람을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곤란한 상황에 놓인 사람 본인도 자신이 순수하게 도움을 원하는지, 아니면 도와주려는 사람을 이용하려는지 구분해 내기가 어렵다. 일을 벌이고 실패하고 용서받고, 또다시 일을 벌이고 실패하고 용서받고를 반복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잘해 보려다 그런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구해 주려는 사람 상당수는 순진무구하거나 허영심과 나르시시즘(자기애)에 빠져 있거나 둘 중 하나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중편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이런 사람들 이야기가 자세히 그려져 있다. 이 소설은 "나는 병든 사람이다. ∙.....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매력이 없는 사람이다. 생각해 보니 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된다. 혼돈과 절망이 가득한 지하 세계에서 비참하게 살지만 한없이 오만한 마음을 가진 지하 생활자의 고백이다. 그는 자신을 신랄하게 분석하지만, 1000가지 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하고는 고작 100가지 죄에 대한 죗값을 제멋대로 치르고는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악의 죄를 범하려고 한다."

-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B. 피터슨, p120


도움의 간절함, 그 아슬아슬한 경계

​살면서 우리는 누구라 할 것 없이 '곤란한 상황'의 문턱 앞에 서게 됩니다. 뼛속까지 시린 절망의 순간, 한 줄기 도움의 손길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간절합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이의 눈빛은 순수하고 애처로워 보이지만, 문득 섬뜩한 의문이 머리를 스칩니다. '저 간절함은 순수한 것일까, 아니면 나를 이용하려는 교묘한 술수일까?'


​이 딜레마는 비단 돕는 사람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곤란에 처한 본인조차 그 경계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진심으로 다시 일어서고 싶은 마음과, 이번 한 번만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자기 연민과 이기심이 뒤섞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잘해 보려다 그랬다"는 변명 뒤에는, 어쩌면 '나는 노력했으니 이해받을 자격이 있다'는 은밀한 자기 합리화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요? 일을 벌이고 실패하고 용서받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변명 속에는 이 미묘한 자기기만이 배어 있습니다.


​구원자의 자격: 순진무구함인가 허영심인가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의 내면 역시 복잡합니다. 그들 상당수는 정말로 순수한 박애주의자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구원자' 역할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려는 허영심과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어려운 사람을 돕는 숭고한 사람이야"라는 속삭임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채우는 재료로 삼는 위험한 덫이 될 수 있습니다. 순진무구한 선의든, 자기애적 충족감이든 결국은 돕는 행위를 통해 '나'를 확인하려는 욕구로 수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동기의 순수성을 재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지하 생활자의 거울: 혼돈 속의 오만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중편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이 인간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해부하는 가장 신랄한 고백록입니다.


​"나는 병든 사람이다. ......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매력이 없는 사람이다. 생각해 보니 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 유명한 첫 구절처럼, 지하 생활자는 자신의 비참함, 악함, 매력 없음을 인정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혼돈과 절망 속에서 사는 그의 신랄한 자기 분석은 역설적으로 거대한 오만함의 방패입니다. 그는 자신을 끝없이 분석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정한 기준으로만 죄를 용서하고 구원받았다고 선언합니다.


​1000가지 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하고는 고작 100가지 죄에 대한 죗값만 제멋대로 치르고 '구원'받았다고 믿는 지하 생활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합니다. 스스로를 충분히 반성했고 용서받았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오만함. 그 오만함이 우리를 최악의 죄를 지을 준비가 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뼈아픈 공감: 우리 모두의 '지하'

​결국 이 글이 불러일으키는 '뼛속 깊은 공감'은, 우리 모두가 도움을 주고받는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기만에 빠질 수 있는 나약한 존재라는 냉철한 깨달음에서 나옵니다.


​도움을 바라는 자는 자신의 간절함 뒤에 숨은 이기심을 의심해야 하며, 도움을 주는 자는 자신의 선의 뒤에 숨은 허영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하 생활자처럼, 자신의 죄와 고통을 인정하는 듯하면서도 스스로를 구원할 자격을 부여하는 오만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딜레마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진정한 도움은 타인을 구원하는 행위 이전에, 나 자신의 '지하'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고통스러운 성찰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그 성찰만이 순수한 선의와 자기기만의 경계를 희미하게나마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빛이 될 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