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화. 당신의 뇌는 왜 '멸망'에 열광하는가?: 비관

주의라는 지독한 마약

by 안녕 콩코드
세상은 망해가고 있고, 정치는 썩었으며,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그 지독한 ‘불행 중독’을 메스로 도려내겠습니다. 이번에는 통계라는 차가운 무기로 뜨겁게 선동하는 역설적인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오프닝: "세상은 망해가고 있다? 당신의 뇌가 당신을 속이는 겁니다."

​자, 내기를 하나 하죠. 20년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전 세계 극빈층의 비율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1번, 두 배로 늘었다. 2번, 그대로다. 3번, 절반으로 줄었다. 대다수의 '똑똑한 척하는' 현대인들은 당당하게 1번이나 2번을 고릅니다. 그리고 정답이 3번이라는 사실을 듣는 순간, 마치 신성모독이라도 당한 듯 표정이 일그러지죠.


​우리는 세상을 비극적으로 볼 때 왠지 더 지적으로 보인다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뉴스에선 연일 기아와 전쟁, 전염병을 쏟아내고, 우리는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며 혀를 찹니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입니다. 인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하고, 풍요로우며, 건강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명백한 수치를 거부하고 멸망의 서사에 집착할까요? 오늘 우리는 당신의 뇌 속에 설계된 '공포 유도 장치'를 박살 낼 두 권의 책,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Factfulness)』와 긍정의 힘을 과학으로 증명한 맷 리들리의 『이성적 낙관주의자』를 소환합니다.


당신은 침팬지보다 멍청한가? : 『팩트풀니스』의 경고

​보건학의 거장 한스 로슬링은 전 세계 지성인들을 대상으로 기초적인 상식 문제를 냈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죠. 노벨상 수상자부터 대학 교수까지, 그들의 정답률은 침팬지가 무작위로 바나나를 고를 확률(33%)보다 낮았습니다. 인간이 침팬지보다 세상을 더 오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로슬링은 우리 뇌에 박힌 '10가지 본능'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중 압권은 '부정 본능'입니다. 우리 조상들에겐 풀숲의 바스락거림을 호랑이로 착각하는 공포 본능이 생존에 유리했습니다.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고 안심하던 낙관주의자들은 호랑이에게 잡아먹혔고, "세상은 위험해!"라고 벌벌 떨던 겁쟁이들만 살아남아 우리의 조상이 되었죠.


​문제는 현대의 미디어가 이 본능을 교묘하게 이용한다는 겁니다.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했다는 기사는 조회수가 나오지 않지만, 추락했다는 기사는 전 세계를 마비시킵니다. 우리는 예외적인 비극을 일반적인 진실로 오해하며, 세상이라는 거대한 캔버스에서 밝은 빛은 외면한 채 작은 얼룩 하나에만 돋보기를 들이대고 있는 셈입니다.



아이디어들의 섹스, 그리고 풍요의 탄생 : 『이성적 낙관주의자』

​맷 리들리는 한술 더 뜹니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아이디어들이 서로 만나 섹스를 하고 자식을 낳는 과정'으로 정의합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왕조차 누리지 못했던 사치를 지금의 노동자가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서로의 지식을 교환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했기 때문입니다.


​비관주의자들은 늘 자원이 고갈될 것이라며 "이제 끝장이다"라고 외쳐왔습니다. 1970년대엔 식량이 부족해 수억 명이 굶어 죽을 거라 했고, 80년대엔 석유가 바닥날 거라 겁을 줬죠. 하지만 인류는 늘 답을 찾았습니다. 지식은 쓰면 쓸수록 고갈되는 자원이 아니라, 나눌수록 증식하는 유일한 자원이니까요.


​리들리는 말합니다. "비관론은 안전하고 지적으로 보이지만, 낙관론은 대담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든다." 우리가 냉소에 빠져 "세상은 답이 없어"라고 말할 때, 누군가는 그 냉소주의자들이 쏟아내는 쓰레기를 에너지로 바꿀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비명을 지르는 자들이 아니라, 묵묵히 문제를 해결하는 낙관주의자들에 의해 굴러가고 있습니다.


심층 분석: 왜 우리는 '지적 비관주의'라는 마약에 중독됐나?

​비관주의는 달콤합니다. 거기에는 강력한 면죄부가 숨어 있기 때문이죠.

​책임 회피의 수단: "세상이 망해가고 있다"고 믿으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정당화됩니다. 어차피 망할 세상인데 노력해서 뭐 하겠냐는 허무주의는 게으름의 가장 세련된 변명입니다.

​도덕적 우월감: 타인의 고통과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하는 모습은 우리를 깨어있는 시민처럼 보이게 합니다. 긍정적인 수치를 말하는 사람은 현실을 모르는 천박한 존재로 몰아세우기 딱 좋죠. 하지만 사실을 외면한 분노는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아니라, 자아를 만족시키는 감정 쓰레기일 뿐입니다.


결론: "데이터는 당신에게 희망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03화의 도발적인 결론은 명확합니다. 당신이 세상에 대해 느끼는 그 막연한 우울함은 팩트가 아니라 '뇌의 오류'와 '미디어의 가스라이팅'이 합작한 환각입니다.


​『팩트풀니스』는 우리에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통계적 안경을 씌워줍니다. 그리고 『이성적 낙관주의자』는 인류가 가진 교환과 혁신의 힘이 결코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을 것임을 확신시켜 줍니다. 세상을 긍정하는 것은 대책 없는 희망고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데이터를 읽어낼 줄 아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도의 지적 특권입니다.


​이제 뉴스를 끄고 숫자를 보십시오. 비명 소리에 귀를 닫고 인류가 이뤄낸 조용한 진보의 발걸음에 집중하십시오. 세상은 당신의 우울함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나아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오늘, 낡은 공포 본능에 굴복해 침팬지보다 못한 오독을 반복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차가운 팩트를 딛고 일어서서 내일의 풍요를 설계하는 낙관주의자가 되시겠습니까? 선택은 당신의 뇌에 달려 있습니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