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정의라는 복수: 당신이 분노하는 진짜 이유는

'피'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by 안녕 콩코드
민주주의라는 대중적 환상을 해체했으니, 이제 인간이 자신을 가장 선량하고 도덕적인 존재로 포장할 때 사용하는 마지막 방패, '정의(Justice)'를 겨냥합니다.
​우리는 가해자가 처벌받을 때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믿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하지만 그 숭고한 감정의 밑바닥을 긁어보십시오. 거기에는 타인의 고통을 탐닉하고, 합법적으로 누군가를 짓밟고 싶어 하는 인간의 가장 잔인한 본능이 숨어 있습니다. 23화에서는 정의라는 이름의 가면을 벗기고, 그 뒤에 숨은 '복수심'과 '권력의 기술'을 폭로합니다.


​오프닝: "당신은 정의가 바로 서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그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습니까?"

​자,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뉴스를 접했을 때 당신이 느끼는 뜨거운 분노를 떠올려 보십시오. 당신은 "법치주의의 수호"와 "피해자의 눈물"을 언급하며 엄벌을 촉구할 겁니다. 사람들은 이를 정의감이라 부르며 칭송하죠. 하지만 진실은 훨씬 더 가혹합니다. 당신이 정의를 외치는 순간, 당신의 뇌는 합법적으로 타인을 난도질할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에 쾌감을 느낍니다.


​정의는 하늘에서 내려온 절대적 가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약자들이 강자에게 품은 원한이 도덕이라는 옷을 입고 나타난 결과물이자, 국가가 당신의 신체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고안한 세련된 기술입니다. 오늘 우리는 당신의 도덕적 결벽증을 박살 낼 두 권의 위험한 문제작, 프리드리히 니체의 『도덕의 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와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을 소환합니다.


​원한이 낳은 가짜 도덕 : 『도덕의 계보』

​프리드리히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인류가 가진 '좋음과 나쁨'의 기원을 추적합니다. 그는 본래 강하고 활기찬 것들이 '좋음'이었으나, 그들에게 짓밟힌 약자들이 품은 지독한 원한, 즉 '르상티망(Ressentiment)'이 이 가치를 뒤집었다고 분석합니다.


​약자들은 자신들이 가질 수 없는 강자의 힘을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무능함을 '선' 혹은 '겸손'으로 둔갑시켰습니다. 니체가 보기에 현대의 정의감은 바로 이 비겁한 복수심의 변종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강해질 용기가 없기에, 법과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강한 자들을 끌어내리고 그들이 고통받는 모습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당신이 외치는 정의는 숭고한 이상이 아니라, 나보다 잘난 자들을 합법적으로 증오하고 싶어 하는 노예의 원한 서린 목소리일지 모릅니다.



​신체를 길들이는 보이지 않는 손 : 『감시와 처벌』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처벌의 역사가 '잔혹한 고문'에서 '인도적인 감옥'으로 바뀐 이유를 파헤칩니다. 사람들은 인권이 신장되어 처벌이 부드러워졌다고 믿지만, 푸코는 이것이 훨씬 더 교활한 '권력의 진화'라고 말합니다.


​과거의 권력이 범죄자의 신체를 찢어 발겨 본보기를 보여줬다면, 현대의 권력은 감옥과 학교, 병원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길들입니다. 처벌의 목적은 이제 복수가 아니라, 인간을 권력이 사용하기 좋은 '순종적인 신체'로 개조하는 데 있습니다. 당신이 정의로운 처벌이라고 믿는 그 시스템은 사실 당신을 포함한 모든 시민을 '파놉티콘(Panopticon)'이라는 거대한 감시망 속에 가두고,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드는 가장 정교한 통제 장치입니다.


​심층 분석: "왜 정의는 언제나 '피'와 '눈물'을 요구하는가?"

​자, 여기서 우리는 왜 현대 사회가 이토록 '사법적 정의'와 '엄벌주의'에 열광하는지 그 배후를 읽어야 합니다.

​잔인함의 축제: 니체는 고대에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때 채권자가 그의 살점을 떼어낼 권리를 가졌던 풍습을 언급합니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현대의 대중이 범죄자의 신상을 털고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행위는, 피만 흘리지 않을 뿐 본질적으로는 과거의 잔혹한 축제와 다를 바 없습니다.

​영혼의 규율화: 푸코가 지적했듯, 현대의 정의는 인간을 '교화'한다는 명목하에 개인의 사생활과 내면까지 침투합니다. 우리는 이제 법이 없어도 스스로를 감시합니다. 정의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팅은 우리를 권력에 저항할 줄 모르는 온순한 가축으로 만들었습니다.

​복수의 외주화: 국가는 개인의 복수심을 금지하는 대신, 그 복수할 권리를 독점했습니다. 우리가 세금을 내고 국가의 명령에 따르는 대가로, 국가는 우리가 미워하는 자들에게 대신 고통을 가해줍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법정은 사실 고도로 문명화된 '복수의 대행소'입니다.


"당신의 분노 뒤에 숨은 잔인한 본능을 직시하십시오"

23화의 결론은 당신이 자부해온 정의로움을 모욕합니다. 정의는 고결한 가치가 아니라, 약자의 원한과 국가의 통제술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가장 성공적인 기만극입니다.


​『도덕의 계보』는 우리에게 자신의 원한을 정의로 착각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감시와 처벌』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신체를 규격화하려는 권력의 음모를 폭로합니다. 진정한 정의는 타인을 심판하고 처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복수심을 직시하고 그 본능의 노예가 되지 않는 '강인한 자아'를 세우는 데 있습니다.


​이제 당신이 내뱉는 정의로운 분노를 검문하십시오. 그것은 사랑의 발로입니까, 아니면 피를 보고 싶어 하는 르상티망의 분출입니까?


​"당신은 오늘, 정의라는 깃발을 흔들며 타인을 돌로 치는 '도덕적 군중'의 일원이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나를 둘러싼 처벌의 논리를 꿰뚫어 보고 권력이 설계한 감옥 밖으로 걸어 나가는 '주체적인 개인'이 되시겠습니까? 당신이 정의라는 환상에서 깨어나는 순간, 타인을 심판하려는 오만 대신 진정한 인간적 연민이 시작될 것입니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