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그리고 나라는 강태공의 20년 사투

by 안녕 콩코드

​내 앞에는 지금 얄팍한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잉크 냄새보다 내 손때 냄새가 더 진하게 배어있을 법한 이 책은,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랫동안 읽지 못한 '가장 짧은 책'이다. 20대 혈기 왕성하던 시절부터 불혹을 넘긴 지금까지, 나는 이 책과 대략 스무 번쯤 밀당을 했다. 사랑 고백보다 더 신중하게 첫 페이지를 넘겼고, 낚시꾼이 대어를 기다리듯 비장하게 문장들 사이에 낚싯대를 드리웠다. 하지만 결과는 늘 참패였다.


​이상한 일이다. 이 책이 재미가 없는 것도, 문체가 난해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 나는 이 소설의 줄거리를 완벽하게 안다. 노인이 바다로 나가고, 거대한 청새치를 잡고, 상어 떼를 만나고, 결국 뼈만 남은 고기를 끌고 돌아온다. 이 명징한 서사 앞에서 나는 왜 매번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노인 산티아고처럼 허탕만 치고 돌아왔던 걸까.


​재작년, 내 인생의 또 다른 거대한 장벽이었던 『위대한 개츠비』를 마침내 정복했을 때, 나는 내가 드디어 문학적 성인식을 치른 줄 알았다. 화려한 파티와 데이지의 목소리, 초록색 불빛을 지나 마지막 마침표를 찍던 순간의 희열이란! 그 기세라면 『노인과 바다』쯤은 고등어 한 마리 낚듯 가뿐히 낚아 올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책상 위에 올려진 노인은 여전히 나를 보며 인자하게, 혹은 비웃듯이 묻는다. "자, 이번엔 어디까지 읽나 보자."


​사실 이 책을 끝내지 못한 이유는 내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노인이 망망대해에서 사투를 벌이는 그 치열함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얇은 책장 사이로 새어 나오는 그 지독한 고독과, 뼈만 남을 것을 알면서도 사력을 다해 줄을 당기는 그 무모한 성실함이,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온 내 삶을 꾸짖는 것 같아 슬그머니 덮어버렸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번엔 내기를 해보기로 했다. 상대는 저 바다 건너의 헤밍웨이도 아니고, 소설 속 산티아고 노인도 아니다. 바로 '어제의 나'다. 20년 동안 이 책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내일 읽지 뭐"라고 중얼거렸던 그 비겁한 독서가와 진검승부를 벌여보려는 것이다.


​나는 읽어낼 수 있을까? 아니면 또다시 상어 떼(스마트폰 알림, 유튜브의 유혹, 갑작스러운 낮잠)에게 내 집중력을 다 뜯어 먹힌 채 빈손으로 돌아오게 될까?


​만약 내가 이 책을 끝내 읽어낸다면, 그것은 단순히 고전 한 권을 해치운 사건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내 안에 20년 동안 묵혀두었던 ‘미완의 숙제’ 하나를 마침내 졸업하는 의식이 될 것이다. 노인이 뼈만 남은 물고기를 끌고 돌아와 사자 꿈을 꾸며 잠들었듯, 나 또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세상에서 가장 단잠을 잘 수 있을 테니까.


​자, 낡은 낚싯줄을 정비하듯 책장을 넘긴다. 바다 냄새가 난다. 이번엔 고기를 잡는 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그저 노인 곁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소년 마놀린이 되어보고 싶을 뿐이다. 자, 산티아고 할아버지. 이제 배를 띄웁시다. 이번엔 나도 만만치 않은 놈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