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시절, 새벽의 토스트 노점

by 안녕 콩코드

도시의 가장자리에 핀 희망

​새벽 5시 30분. 이 거대한 도시가 채 눈을 뜨기도 전, 나는 이미 차가운 새벽 공기 속을 걷고 있었다. 겨울의 새벽은 마치 무채색의 수묵화 같았다. 가로등 불빛은 뿌연 안개 속에서 제 빛을 잃고 희미하게 번졌고,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건물들은 거대한 그림자처럼 묵묵히 서 있었다. 재수 학원으로 향하는 길은 매일 아침 반복되는 의식과 같았다. 고개는 저절로 숙여졌고, 눈은 땅바닥만 응시했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가방 속에는 한 페이지라도 더 외워야 할 두꺼운 참고서들이 가득했다. 어둠 속을 걷는 동안,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인적은 거의 없었다. 간혹 나와 같은 처지의 재수생 몇몇이 그림자처럼 조용히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나는 내 자신의 불안과 고독을 읽었다. 우리는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병사들처럼 말없이 행군했다.


​나는 재수생이었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미래가 결정된다는 압박감은 20대 초반의 나에게 너무나 가혹한 짐이었다. 하루 14시간 이상의 공부는 일상이었고, 잠시라도 펜을 놓으면 불안감이 심장을 갉아먹었다. 불확실한 미래, 뒤처지고 있다는 자괴감,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이 모든 감정들이 뒤엉켜 매일 밤 나의 꿈을 지배했고, 새벽에는 차가운 현실로 나를 내던졌다.


​학원 건물까지 채 닿지 않은 골목 어귀에 다다르면, 나는 언제나 멈칫하곤 했다. 희미한 새벽빛 속에서 홀로 빛나는 작은 불빛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낡은 노점의 백열전구가 뿜어내는 노란색 불빛이었다. 비좁은 노점 위에는 낡은 철판과 식빵, 계란, 양배추 등이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늘 허리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연탄불 위에서 토스트를 굽고 계셨다. 고소한 버터 냄새와 달콤한 설탕 냄새가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코끝을 자극했다.


​그 냄새는 단순히 식욕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메마른 새벽 속에서 유일하게 피어나는 '인간적인 온기'였다. 도시의 가장자리에 간신히 붙어 살아가고 있는 나 같은 재수생들에게, 그 노점의 불빛과 냄새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나는 오늘도 홀린 듯 그 노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2000원짜리 토스트 한 조각이 나에게 선사할 작은 희망을 기대하며.


지글거리는 철판 위의 위로

​노점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들리는 것은 '치익-' 하고 달궈진 철판 위에서 버터가 녹아내리는 경쾌한 소리였다. 할머니는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이미 내 기척을 아시는 듯, 투박한 손놀림으로 식빵 두 장을 철판 위에 올리셨다. 노란 버터가 녹으며 빵 속으로 스며들 때 풍기는 고소한 향은, 어젯밤의 지독한 불면증과 새벽의 한기를 단숨에 녹여버리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할머니의 손은 마치 숙련된 조각가처럼 거침이 없었다. 잘게 썬 양배추와 당근이 섞인 계란물을 철판 위에 붓고, 뒤집개로 툭툭 쳐서 네모난 모양을 잡으셨다. 지글거리며 익어가는 계란 부침의 소음은 이 고요한 새벽 학원가에서 들리는 유일한 활력의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어쩌면 나도 저 차가운 철판 같은 세상 위에서,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에 의해 다듬어지고 익어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위안 때문이었다.


​"오늘도 일찍 나왔네. 춥지? 설탕 많이 뿌려줄까?"


​할머니의 낮은 목소리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철판 너머로 들려왔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재수 생활 내내 내가 타인과 나누는 대화라고는 편의점 직원의 "봉투 필요하세요?"나 학원 데스크의 출석 확인이 전부였기에, 누군가 나의 기호를 묻고 상태를 살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다.


​노랗게 잘 익은 식빵 위에 계란 부침이 올라가고, 그 위로 설탕이 눈처럼 하얗게 뿌려졌다. 마지막으로 케첩이 붉은 선을 그리며 얹어지면, 반으로 접힌 토스트는 낡은 종이컵 속에 쏙 들어갔다. 할머니는 종이컵을 건네며 늘 낡은 휴지 한 장을 덧대어 주셨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뜨거운 온기는 금방이라도 얼어 터질 것 같던 나의 하루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종이컵에 담긴 토스트는 볼품없고 투박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2,000원이라는 가격표로는 도저히 환산할 수 없는 '인간의 온도'가 담겨 있었다. 나는 뜨거운 토스트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바삭하게 구워진 식빵의 식감 뒤로 아삭한 양배추와 달콤한 설탕, 짭짤한 케첩이 입안에서 어우러졌다. 그것은 자극적이고 화려한 맛은 아니었지만, 긴장으로 잔뜩 웅크리고 있던 내 위장을 부드럽게 깨워주는 다정한 맛이었다.


​어두운 골목길 한쪽에서 토스트를 씹으며 나는 생각했다. 지금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이 막막한 어둠도, 결국 저 뜨거운 철판 위의 버터처럼 녹아내릴 날이 올까.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한 설탕의 맛이, 내 쓴 미래를 조금이라도 희석해 주기를 바랐다.


설탕물처럼 흐르는 눈물과 다짐

​나는 종이컵에 담긴 토스트를 소중하게 감싸 쥐고 학원 건물 뒤편의 작은 벤치로 향했다. 아직 강의실 문이 열리기 전이라 복도는 어두웠고, 벤치 위에는 밤새 내린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엉덩이가 닿는 시트의 냉기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지만, 손바닥에 닿는 토스트의 온기만큼은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한 입 더 크게 베어 물자, 녹아내린 설탕과 케첩이 입술 옆으로 번졌다. 그 달콤함은 자극적일 만큼 강렬해서, 오히려 현실의 쓴맛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어제 모의고사 성적표에서 본 처참한 숫자들, 친구들의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활기찬 대학 생활의 사진들, 그리고 나만 이 고요한 새벽에 갇혀 있다는 지독한 소외감이 토스트의 온기와 충돌했다.


​순간,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빵 덩어리가 컥 하고 걸렸다. 억지로 삼키려 애를 썼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기어코 눈물 한 방울이 토스트 위로 툭 떨어졌다. 그것은 단순히 공부가 힘들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이렇게나 맛있는 2,000원짜리 토스트 하나에 감동하고 위로받아야 하는 나의 처지가 너무나 절박하고 비참해서 흐르는 눈물이었다.


​"아직 멀었나..."


​나는 젖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내 노력의 총량이 이 새벽의 추위를 이겨내기에 충분한지, 내가 쏟아붓는 이 시간들이 정말로 빛나는 미래로 치환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입안을 맴도는 설탕의 단맛은 묘하게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비참함은 곧 독기가 되었고, 서러움은 오기가 되었다.


​할머니가 뿌려준 하얀 설탕은 내 쓴 입 안을 잠시나마 달래주는 유일한 마취제였고, 뜨거운 계란 부침은 얼어붙은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전기 충격기였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남은 토스트를 꾸역꾸역 씹어 삼켰다. 빵의 거친 질감이 목을 긁으며 내려갈 때마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 좁은 종이컵 안의 위로가 내 인생의 전부가 되지 않게 하겠다고. 반드시 이 어둠을 뚫고 나가, 다음번에는 이 토스트를 '생존'이 아닌 '추억'으로 먹겠노라고.


​벤치 옆 쓰레기통에는 이미 누군가 먹고 버린 종이컵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컵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절박한 새벽이었고, 이름 모를 동료들의 눈물 젖은 다짐이었을 것이다. 나는 비어버린 내 종이컵을 그 위에 가만히 얹었다. 차가운 새벽바람이 다시 불어왔지만, 방금 삼킨 토스트의 열기가 뱃속에서부터 든든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차가운 새벽을 건너온 맛

​계절이 몇 번을 바뀌고, 지독했던 그해의 겨울도 결국 물러갔다. 합격 통지서를 손에 쥐던 날, 나는 기쁨보다 먼저 묘한 허탈함을 느꼈다. 내 인생을 집어삼킬 듯 거대해 보였던 그 고통의 터널도 결국 끝이 있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 번듯한 식당에서 비싼 요리를 마주하는 날들이 늘어갔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었다.


​어느 늦은 가을 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옛 학원가를 다시 찾았다. 화려한 간판들이 명멸하는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그 골목 어귀. 놀랍게도 그곳에는 여전히 노란 백열전구가 희미한 빛을 내뿜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노점의 천막은 조금 더 해져 있었고, 철판을 닦는 할머니의 손길은 전보다 조금 더 더뎌 보였지만, 공기 중에 부유하는 그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만큼은 예전 그대로였다.


​"토스트 하나 주세요. 설탕 많이 뿌려서요."


​내 목소리는 예전처럼 떨리지 않았고, 주머니 속에는 이제 토스트 수백 개를 사고도 남을 지폐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건네준 종이컵을 받아 든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토스트의 맛이 아니라, 그 절박했던 시절의 '나'였다는 것을. 단돈 2,000원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위로를 얻고, 종이컵 한 장의 온기에 기대어 내일의 태양을 기다리던 그 순수한 간절함 말이다.


​한 입 베어 문 토스트는 여전히 뜨거웠다. 이제는 눈물이 나지도, 목이 메지도 않았다. 대신 입안 가득 퍼지는 설탕의 단맛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듯했다.


​'너는 그 차가운 새벽을 무사히 건너왔구나.'


​재수 시절, 그 노점은 단순한 음식점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시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소모되던 청춘들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게 마련된 작은 대피소였다. 할머니의 투박한 손길은 길 잃은 수험생들에게 보내는 무언의 격려였고, 지글거리는 철판 소리는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는 응원가였다. 그 시절의 나는 비록 가진 것 하나 없는 초라한 재수생이었지만, 매일 아침 그 노점 앞에서 희망이라는 이름의 토스트를 구워내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새벽 공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삶이 나를 배신하고 현실의 쓴맛이 혀끝을 마비시킬 때면, 나는 언제든 내 마음속의 노점을 찾아간다. 낡은 철판 위에서 버터가 녹아내리던 소리와 할머니가 건네주던 따뜻한 종이컵을 떠올린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 그 2,000원짜리 토스트가 가르쳐준 것은, 인생의 가장 어두운 새벽에도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대단한 성공이 아니라 아주 작은 온기라는 사실이었다.


​골목을 빠져나오며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노란 불빛 아래에서 누군가가 토스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짧게 깎은 머리에 두꺼운 가방을 멘, 예전의 나를 닮은 청년이었다. 나는 그 청년이 삼키고 있을 그 맛이, 부디 그에게도 차가운 세상을 이겨낼 단단한 근육이 되어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내 코트 주머니 속에는 방금 산 토스트의 온기가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그것은 내가 건너온 수많은 새벽이 나에게 준, 가장 달콤한 훈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