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의 함정 : 세상을 두 부류로 나누는 이들에게

by 안녕 콩코드
사람은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세상을 두 종류의 인간으로 나누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분류라는 이름의 지적 오만

​인간의 뇌는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우리는 마주하는 수많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카테고리'를 만들고, 그 안에 대상을 집어넣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인간관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 내 편과 네 편,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심지어는 MBTI라는 잣대로 타인의 성격을 단 몇 글자로 규정해버리곤 합니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순간, 우리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을 해소하고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묘한 안도감을 얻습니다.


​미국의 작가이자 유머리스트인 로버트 벤클리(Robert Benchley)는 이러한 인간의 뿌리 깊은 이분법적 사고를 향해 유쾌하면서도 뼈아픈 역설을 던졌습니다.


​“사람은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세상을 두 종류의 인간으로 나누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문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함정입니다. '분류하는 행위' 자체를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그 행위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는 모순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편협한 시각을 조롱합니다. 벤클리의 유머 뒤에 숨겨진 깊은 통찰, 즉 '세상을 규정하려는 시도가 어떻게 진실을 가리는가'에 대해 사유해 보겠습니다.


분류의 함정: 단순함이 앗아가는 존재의 입체성

​우리가 타인을 '어떤 부류'로 정의하는 순간, 그 사람의 고유한 본질은 사라지고 우리가 만든 꼬리표만 남게 됩니다.


​이분법이 낳는 확증 편향

​세상을 두 부류로 나누면 사고는 명료해지지만, 그 대가는 혹독합니다. '내 편'으로 분류된 이들의 허물은 덮어주고, '적'으로 분류된 이들의 미덕은 외면하게 됩니다. 벤클리의 농담처럼 세상을 둘로 쪼개는 이들은 자신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그 프레임 밖에서 일어나는 풍성하고 복잡한 진실을 보지 못하는 지적 폐쇄성에 빠지게 됩니다.


복잡성에 대한 공포

​우리가 자꾸 선을 긋는 이유는 세상의 복잡성을 견딜 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은 수천 가지의 모순된 감정과 경험이 얽힌 소우주입니다. 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쁜 놈' 혹은 '좋은 놈'이라는 편리한 서랍 속에 상대방을 밀어 넣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화는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로막고, 관계를 단절시키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됩니다.


​경계를 허무는 지혜: 분류하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

​벤클리가 언급한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요? 그들은 세상을 흑백이 아닌 무지갯빛 스펙트럼으로 바라보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들입니다.


모호함을 견디는 힘 (Negative Capability)

​시인 존 키츠는 '불확실함과 의문 속에 머물 수 있는 능력'을 강조했습니다. 성숙한 인간은 누군가를 단정 짓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고, "그럴 수도 있다"는 모호함을 견뎌냅니다. "사람은 원래 이런 부류야"라고 말하지 않고, "그 사람은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구나"라고 관찰하는 태도입니다. 분류를 멈출 때, 비로소 한 인간의 진면목이 입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지우는 공감

​세상을 나누는 이들은 늘 '경계선'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분류하지 않는 이들은 '연결선'에 집중합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외로우며,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근본적인 공통분모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벤클리의 역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타인을 당신의 기준이라는 감옥에 가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환대하고 있습니까?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한 성찰

​선입견의 안경을 벗고 세상을 더 넓게 보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일반화의 오류' 경계하기: "요즘 애들은 다 그래", "그 지역 사람들은 이렇더라"와 같은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오려 할 때 멈추십시오. 모든 일반화는 폭력성을 띱니다. 한 명의 개인을 집단의 속성으로 덮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질문의 방향 바꾸기: "그는 어떤 부류인가?"라는 질문 대신 "그는 지금 어떤 마음인가?"라고 물으십시오. 존재를 정의(Define)하려 하지 말고, 상태를 공감(Empathize)하려 노력할 때 우리는 분류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자신의 편향 인정하기: 벤클리의 문장처럼, 우리 역시 "나는 분류하지 않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또 다른 분류를 시작하게 됩니다. 자신이 편향된 존재임을 겸허히 인정하고, 내가 그은 선이 틀릴 수 있음을 늘 자각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의 시작입니다.


​분류를 넘어선 환대의 세계로

​세상을 두 부류로 나누는 것은 쉽고 명쾌합니다. 하지만 그 명쾌함 뒤에는 수많은 오해와 증오, 그리고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로버트 벤클리의 농담은 우리에게 '분류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우아한 경고를 보냅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덧씌운 낡은 프레임을 거두어낼 때, 세상은 비로소 숨겨두었던 다채로운 표정을 보여줍니다. 정답이 정해진 두 개의 방 중 하나를 선택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 방들을 나누는 벽을 허물고 광활한 광장으로 나아가십시오. 그곳에서 당신은 '어떤 부류'가 아닌, 오직 하나뿐인 존엄한 '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타인에게 그어놓은 선은, 사실 당신의 시야를 가두는 창살입니다. 그 선을 지울 때 당신의 세계는 무한히 넓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