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여름, 세상에서 가장 오만한 초대장
1956년 여름, 미국 뉴햄프셔주의 평온한 다트머스 대학교 교정에 젊고 혈기 왕성한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존 매카시(John McCarthy)라는 서른 살의 젊은 조교수가 보낸 짧은 초대장이 들려 있었다. 그 초대장에는 현대 과학사에서 가장 대담하고도, 지금 보면 실소를 자아낼 만큼 낙관적인 문장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10명의 과학자가 2개월 동안 모여 연구하면, 학습의 모든 측면과 지능의 특징을 기계로 정밀하게 묘사할 수 있을 것이라 제안합니다."
이것은 훗날 인류의 운명을 바꾼 '다트머스 회의(Dartmouth Workshop)'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인류가 수만 년간 진화하며 얻어낸 '지능'이라는 보물을, 단 8주간의 여름 휴가 기간 동안 기계 속에 복제해 넣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얼마나 귀여운 오만인가. 하지만 그들의 오만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영리한 뇌를 가졌다고 자부하는 천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의 탄생
회의의 주역들은 오늘날 AI의 성자(聖者)로 불리는 인물들이었다. 훗날 프로그래밍 언어 LISP을 만든 존 매카시, 정보 이론의 아버지 클로드 섀넌, '생각하는 기계'를 논리적으로 설계한 마빈 민스키와 허버트 사이먼.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기계가 수행하는 지적 활동을 무엇이라 부를지 고민했다.
매카시는 '사이버네틱스'라는 기존의 용어 대신, 조금 더 도발적이고 선명한 이름을 원했다. 그렇게 탄생한 단어가 바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당시에는 이 이름 자체가 형용모순처럼 느껴졌다. '지능'은 신이 부여한 생명 고유의 영역인데, 그것이 어떻게 '인공적'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 이름은 즉시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단순히 계산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종(種)'의 기원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체스만 두면 지능은 끝난 것 아닌가?"
다트머스에 모인 천재들이 지능을 바라본 시각은 놀라울 정도로 명쾌했다. 그들에게 지능이란 '논리적인 문제 해결 능력'의 집합체였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 기계가 복잡한 수학 증명을 해내고, 인간과 체스를 두어 이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지능이 완성된 것이 아닌가?"
실제로 회의 기간 중 허버트 사이먼과 앨런 뉴얼은 '논리 이론가(Logic Theorist)'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수학의 복잡한 정리들을 스스로 증명해 냈는데, 어떤 증명은 당대 최고의 수학자들이 내놓은 것보다 훨씬 우아했다. 참석자들은 환호했다. 논리적인 추론만 기계어로 옮길 수 있다면, 인간의 모든 지적 활동을 정복하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 결정적인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너무나 쉬워서 숨 쉬듯 당연한 활동들—고양이를 개와 구별하는 것, 문맥에 담긴 농담을 이해하는 것, 길을 걷다 장애물을 피하는 것—이 기계에게는 수학 증명보다 수백만 배는 더 어려운 '난제'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이 훗날 AI 연구자들을 수십 년간 괴롭힌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다. 그들은 지능의 높은 산봉우리는 보았지만, 그 산을 받치고 있는 거대한 밑바닥인 '상식'과 '감각'의 심연은 보지 못했다.
8주가 80년이 되기까지
여름이 끝나갈 무렵, 기대했던 '완벽한 AI'는 탄생하지 않았다. 8주 만에 지능을 정복하겠다던 그들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막 첫걸음을 뗐을 뿐"이라며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엄청난 연구비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마빈 민스키는 1970년에 심지어 이렇게 장담했다. "3년에서 8년 안에 우리는 평균적인 인간의 지능을 가진 기계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근거 없는 낙관주의는 독이 되었다. 약속한 성과가 나오지 않자 대중은 실망했고, 투자자들은 지갑을 닫았다. 다트머스의 뜨거웠던 열기는 차갑게 식어버렸고, AI 역사의 첫 번째 겨울이 찾아왔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오만을 비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 만약 그들이 지능의 정복이 이토록 험난한 고행길임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과연 그 무모한 도전을 시작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다트머스의 천재들이 가졌던 '귀여운 오만'은 인류가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내딛게 만든 가장 강력한 연료였다. 그들은 지능의 지도를 잘못 그렸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는 분명하게 가리켰다.
오만의 자리에 들어선 겸손
2006년, 다트머스 회의 50주년을 맞아 생존해 있던 창립 멤버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여든이 넘은 노학자들은 50년 전의 자신들을 떠올리며 허허롭게 웃었다. 그들은 여전히 AI가 인간을 닮으려면 멀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들이 심은 씨앗은 이미 세상을 뒤덮는 거대한 나무로 자라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AI 기술은 다트머스의 낙관주의자들이 믿었던 '순수한 논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데이터의 파도와 거대한 연산 능력, 그리고 인간 뇌를 모방한 신경망의 결합으로 탄생했다. 우리는 이제 지능이 단 8주 만에 조립될 수 있는 부품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수십억 년의 진화가 빚어낸 복잡한 기적이며, 기계로 이를 재현하는 일은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미완의 숙제일지도 모른다.
브런치 독자 여러분, 무언가 거창한 일을 시작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저한 계산보다 어쩌면 약간의 오만일지도 모릅니다. "이 정도면 금방 하겠는데?"라는 그 무모한 용기가 없었다면, 인류는 여전히 대공포 사수처럼 눈앞의 정보만을 쫓으며 살고 있었을 테니까요.
다음 화에서는 이 낙관주의의 끝에서 찾아온 뜻밖의 손님을 만나보려 합니다. 기계가 인간을 완벽히 흉내 낼 수 있다는 믿음이 낳은 기묘한 결과물, 사상 최초의 챗봇이자 가짜 정신과 의사였던 '엘리자(ELIZA)'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왜 기계의 뻔한 거짓말에 위로를 받았을까요?
[작가 노트]
이번 5화에서는 AI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인 다트머스 회의를 '오만과 낙관'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냄. 천재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기술적 한계를 교차시켜, AI의 탄생을 한 편의 청춘 드라마처럼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