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알고리즘의 꿈, 구소련이 설계한 ‘전지전능한 국가

by 안녕 콩코드
브런치 연재의 일곱 번째 페이지를 넘깁니다. 이번 화는 철의 장막 너머, 서구의 개인적 지능과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렸던 '집단적 지능'의 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국가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관리하려 했던 구소련의 AI 프로젝트, 그 웅장하고도 서늘한 실패의 기록을 장대한 서사로 복원했습니다.

크렘린의 서버실, 잠들지 않는 계획 경제

​1960년대 초, 냉전의 기운이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모스크바의 밤은 차가운 기계음으로 가득 찼다.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개인의 자유와 비즈니스를 위한 컴퓨터를 꿈꾸고 있을 때, 소비에트 연방의 천재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인간의 판단 오류가 배제된, 완벽하고 과학적인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것."


​당시 구소련의 계획 경제는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수만 개의 공장에서 생산되는 수억 개의 부품, 그리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인민들의 수요를 수기로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서방 세계가 '시장 가격'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자원 배분을 맡겼다면, 소련은 그 역할을 '보이는 알고리즘'에 맡기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위험했던 AI 실험, OGAS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빅토르 글루시코프와 '국가 뇌'의 탄생

​이 무모한 프로젝트의 선두에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천재 수학자 빅토르 글루시코프(Viktor Glushkov)가 있었다. 그는 단순히 계산기를 만드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소련 전역을 거미줄처럼 잇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그 정점에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중앙 지능'을 두려 했다.


​글루시코프의 구상은 오늘날의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컴퓨팅'을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전국의 상점과 공장에서 실시간으로 재고 수량과 생산 지표가 중앙 컴퓨터로 전송되면, AI는 이를 분석해 내일 아침 어느 지역에 빵이 부족할지, 어느 공장에 철강이 더 필요할지를 예측한다. 인간 관료들의 부패나 나태함이 끼어들 틈이 없는, 숫자와 논리로만 작동하는 '무결점의 사회'.


​그것은 칼 마르크스가 꿈꿨던 이상향을 실리콘 칩으로 구현하려는 시도였다.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이론이 동구권에서 '붉은 사이버네틱스'로 재탄생하며, 국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인공지능이 되는 공상과학적 실험이 현실에서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왜 붉은 알고리즘은 멈춰 섰는가

​글루시코프의 꿈은 왜 실패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가로막은 것은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인간의 권력욕'이었다. 중앙 집중화된 네트워크가 완성되면, 각 부처의 장관들과 관료들이 쥐고 있던 정보의 독점권이 사라지게 된다. 알고리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상에서 관료는 그저 데이터의 입력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소련의 기득권층은 이 '투명한 기계'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예산을 삭감하고 부처 간의 협조를 거부하며 프로젝트를 고사시켰다. 또한, 당시의 컴퓨터 기술로는 소련 전체의 경제 변수를 계산하기에 역부족이었다는 물리적 한계도 있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패착은 따로 있었다. 인간의 지능과 욕망을 너무 단순하게 보았다는 점이다. 시장 경제의 AI는 개인의 선호를 추적하며 진화했지만, 소련의 AI는 개인을 '통계적 수치'로만 취급했다. 알고리즘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계산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무엇을 '열망'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붉은 알고리즘은 인민의 마음을 읽지 못한 채, 차가운 서버실 안에서 녹슬어갔다.



실리콘밸리가 계승한 '빅 브라더'의 유산

​구소련의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들이 꿈꿨던 '모든 것을 예측하고 통제하는 지능'의 씨앗은 뜻밖의 장소에서 싹을 틔웠다. 바로 현대의 빅테크 기업들이다.

​글루시코프가 국가의 자원을 배분하기 위해 데이터를 모으려 했다면, 오늘날의 구글과 메타는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데이터화한다. 냉전 시대의 '붉은 AI'가 꿈꿨던 전지전능함은 이제 기업의 알고리즘으로 부활하여 우리가 무엇을 사고, 누구를 지지하며, 어떤 기분을 느껴야 할지를 조용히 제안한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국가라는 이름의 '강요'였으나 지금은 편리함이라는 이름의 '유혹'이라는 점뿐이다. 구소련의 실패한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능이 중앙 집중화되고 권력과 결합할 때, 그 결과가 공동체의 효율성일지 아니면 개인의 종말일지를 말이다.


알고리즘은 누구를 위해 계산하는가

​빅토르 글루시코프는 말년에 "미래에는 종이 돈이 사라지고 모든 경제가 전자 신호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말은 21세기 디지털 자산과 전자 결제의 시대로 실현되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원했던 '완벽한 계획 경제'는 여전히 불가능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알고리즘의 예측 범위를 늘 한 뼘씩 벗어나기 때문이다.


​브런치 독자 여러분, AI의 역사는 서구의 성공담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않습니다. 철의 장막 뒤에서 '집단 지능'을 통해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던 이들의 처절한 실패는, 지능이라는 강력한 도구가 누구의 손에 들려야 하는지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AI는 우리를 돕는 비서입니까, 아니면 우리를 관리하는 감시자입니까? 1960년대 크렘린의 서버실에서 들려오던 웅웅거리는 소리는 지금 우리 스마트폰 속에서도 여전히 울리고 있습니다.



​[작가 노트]

이번 7화는 잘 알려지지 않은 구소련의 OGAS 프로젝트를 통해 AI와 권력, 그리고 계획 경제의 철학적 충돌을 다뤘습니다. 서구 중심의 서사에서 벗어나 AI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지적 확장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