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인사
계절이 건네는 뜻밖의 다정함
"올해 설은 참 포근하네요."
길을 지나다 마주친 이웃과 나누는 이 평범한 인사가 오늘따라 유독 마음을 간지럽힙니다. 원래 설 명절이라 하면, 코끝이 찡해지는 칼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가족의 품으로 숨어드는 풍경이 익숙하잖아요. 그런데 웬일일까요. 2026년의 이른 봄은 성격이 참 급하기도 한지, 벌써 우리 곁에 와서 살포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습니다. 겨울의 한복판인데도 뺨을 스치는 바람 속에 보드라운 온기가 섞여 있는 걸 보면, 자연도 우리에게 "올 한 해는 너무 긴장하지 말고 시작해 보렴" 하고 다독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참 오랫동안 '새해'라는 단어를 비장하게만 대해왔던 것 같아요. 마치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선 선수처럼, 숨을 들이마시고 발끝에 힘을 주며 총소리가 울리기만을 기다리는 그런 비장함 말이죠. "올해는 꼭 이것을 해내리라"는 결심들이 우리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곤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햇살이 다정한 명절 아침에는, 그런 거창한 다짐들을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더 빨리 달리기 위한 운동화가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내 숨소리를 가만히 들어줄 '마음의 정거장'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설 연휴는 우리에게 무조건 달려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 출발선이 아니라, 지난 일 년의 먼지를 털어내고 따뜻한 찻잔의 온기를 느끼며 "참 잘 왔다"고 스스로를 안아주는 그런 쉼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포근한 날씨가 우리에게 건네는 예고편처럼, 당신의 시작도 이토록 부드럽고 온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해 봅니다.
우리는 너무 앞서서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사실 우리는 참 바쁜 사람들입니다. 새해가 오기도 전부터 내년 다이어리를 고르고, 정체 모를 불안감에 등 떠밀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의 계획을 세우곤 하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조차 가끔은 숙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복을 받으려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내야 할 것 같고, 작년보다는 무조건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해처럼 포근한 설날 아침, 창가에 앉아 가만히 볕을 쬐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행복은 달려가서 움켜쥐는 게 아니라, 가만히 머물러 있을 때 내 발치에 내려앉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에요. 우리는 늘 출발선에 서서 총소리가 울리기만을 기다리는 육상 선수처럼 긴장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 트랙 밖으로 걸어 나와 길가에 핀 작은 풀꽃도 보고, 내 운동화 끈이 너무 꽉 조여져 있지는 않은지 살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번 명절, 고속도로 위에서 혹은 집안일을 하며 분주한 시간을 보내더라도 마음 한쪽에는 작은 '빈 의자' 하나를 놓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의자는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자리입니다. "올 한 해는 무엇을 이룰 것인가"라는 질문 대신, "나는 지금 충분히 숨 쉬고 있는가"를 먼저 물어봐 주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다정한 새해의 시작입니다.
'건강해져서 만나자'는 말의 깊은 울림
우리는 흔히 헤어질 때 "건강해라", "건강해서 다시 보자"는 말을 예사로 건넵니다. 너무 자주 써서 가끔은 그 무게를 잊기도 하는 이 말이, 올해는 유독 가슴 깊이 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건강이란 단순히 병이 없는 상태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 마음의 날씨를 살필 줄 아는 여유,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넉넉함,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세우지 않는 너그러움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겠지요.
겨울 내내 꽁꽁 얼어붙어 있던 땅이 녹기 시작하면, 땅 위에는 미세한 틈들이 생겨납니다. 겉보기엔 갈라진 틈이 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그 틈이야말로 봄의 생명력이 솟아오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완벽하게 메워진 단단한 일상보다는, 조금은 허술하고 조금은 느슨한 '틈'이 있을 때 그 사이로 새로운 기운이 스며듭니다.
"건강해져서 만나자"는 당신의 인사는, 그래서 저에게 이렇게 들립니다. "너무 애쓰느라 소진되지 말고, 가끔은 마음의 빗장을 풀고 푹 쉬어주렴. 그래서 다시 만날 때 너의 눈동자가 맑은 호수처럼 반짝였으면 좋겠어."
우리는 서로에게 완벽한 사람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보폭으로 걷다가, 가끔 지칠 때 서로의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적당히 단단하고 적당히 부드러운' 사람이면 족합니다. 마음의 근육을 키운다는 건, 무거운 짐을 드는 능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그 짐을 언제 내려놓아야 할지 아는 지혜를 배우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스며드는 빛처럼, 당신의 일상도 안녕하길
창가에 머물던 햇살이 조금씩 길게 누워가는 오후입니다. 이 포근한 설날의 공기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참 명확합니다. 억지로 밀어내지 않아도 추위는 물러가고, 애써 당기지 않아도 봄은 이미 우리 곁의 공기 속에 섞여 있다는 사실이죠.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무언가를 이루어내기 위해 스스로를 들들 볶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빛나고 귀한 사람들입니다.
이번 명절, 가족과 둘러앉아 떡국 한 그릇을 나누며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꼭 '미래의 성공'이나 '남들보다 앞서가는 비결'일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서로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어봐 주세요. "요즘 잠은 잘 자니?", "마음 편히 웃어본 게 언제였니?" 하고 말이죠. 거창한 덕담보다 열 배는 더 힘이 되는 건, 나의 사소한 안부를 궁금해해 주는 누군가의 다정한 눈빛입니다. 그 눈빛이야말로 우리가 한 해를 버텨낼 진짜 '마음의 밥'이 되어줄 테니까요.
글의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는 지금 잠시 '정거장'에 멈춰 서 있습니다. 열차는 곧 다시 출발하겠지요. 하지만 정거장에서 충분히 쉬며 창밖의 평화로운 풍경을 눈에 담은 사람은, 다시 시작될 여행길이 그리 고단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가끔은 속도를 늦추고, 가끔은 멈춰 서서 나 자신을 꼭 안아주세요. "작년 한 해도 참 애썼다, 올해는 조금 더 너를 아껴주렴" 하고 스스로에게 속삭여 주는 설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우리, 정말로 '건강해져서' 만납시다. 몸의 근육보다 마음의 탄력을 회복하고, 남의 시선보다 내 내면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이는 그런 단단한 사람이 되어서 말이죠.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충분히 안녕했다가 다시 마주할 때,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작년보다 훨씬 더 깊고 은은한 빛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포근한 이 명절의 기운이 당신의 남은 일 년 내내 문득문득 떠오르는 따뜻한 응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니, 복을 받으려 애쓰기보다 당신 자체가 이미 누군가에게 커다란 복임을 잊지 않는 한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