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너머로 날아든 날카로운 문장
어느 평온한 오후였습니다. 카페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펼쳤습니다. 활자 사이를 유영하며 작가의 문장에 몰입하던 그때, 적당한 소음 사이로 유독 선명하게 고막을 파고드는 대화가 있었습니다. 내 시선은 책장 위에 머물러 있었지만, 신경은 이미 옆자리 청춘들의 목소리에 가 닿았습니다.
"다들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하고, 기업 경영자가 되고 싶어 하잖아. 그런데 어떤 변호사가 될 건지 고민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그 이름 앞에 붙을 수식어 말이야."
그 순간, 내가 읽던 책의 문장들이 한순간에 흐릿해졌습니다. 청년들의 대화는 단순한 취업 고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삶의 궤적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이 되느냐'는 명사를 쫓느라,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느냐'라는 형용사를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 목소리는 나른했던 내 정신의 뒷덜미를 둔중하게 후려쳤습니다.
명사라는 이름의 견고한 껍데기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명사'를 수집하는 교육을 받습니다. 좋은 대학의 학생, 대기업의 사원, 한 가정의 가장, 그리고 누군가의 선배나 팀장. 이러한 명사들은 우리를 사회적으로 정의해주고, 타인에게 나를 설명할 때 가장 편리한 도구가 됩니다. 명사는 견고하고 명확합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는 잠을 줄이고, 경쟁하며, 치열하게 달립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명사 그 자체에는 영혼이 없습니다. '의사'라는 명사에는 환자를 향한 온기나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자동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이라는 명사에는 아이들을 향한 진심 어린 애정이 기본 옵션으로 들어있지 않습니다. 명사는 그저 사회적 기능과 위치를 나타내는 껍데기일 뿐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던 명사의 자리에 올랐을 때 문득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 명사를 지탱해 줄 나만의 '수식어'가 비어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수식어가 없는 명사는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처럼 속이 비어버린 상태와 같습니다. 우리는 명사가 주는 안락함에 취해, 그 명사를 빛나게 하거나 혹은 더럽히기도 하는 형용사의 존재를 너무 쉽게 간과해 왔습니다.
'정직'이라는, 가장 고통스럽고도 고결한 형용사
옆자리 청년들이 언급한 '정직한'이라는 수식어를 가슴에 품어 봅니다. '정직한 기업 경영자', '정직한 공무원', '정직한 부모'. 이 문구들은 언뜻 진부해 보이지만, 실제 삶의 현장에서는 가장 도달하기 힘든 고지입니다.
수식어를 갖는다는 것은 곧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냥 변호사는 법률 지식만 갖추면 되지만, '정직한 변호사'는 자신의 이익과 양심이 충돌하는 매 순간마다 고통스러운 선택을 감내해야 합니다. 수식어는 명사를 제약합니다. 함부로 살지 못하게 내 발목을 잡고, 편한 지름길을 두고도 굳이 험한 길을 걷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연중에 수식어를 외면해 왔을지도 모릅니다. 수식어 없는 명사는 자유롭고, 적당히 타협하기 좋으며, 비겁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비겁함이 쌓여 만들어진 명사는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수식어는 우리를 구속하는 사슬이 아니라, 우리가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북극성과 같습니다.
당신의 이름 앞에 붙을 단 한 마디의 유산
우리는 생의 마지막까지 수많은 명사를 획득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훗날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 당신의 모습은 결코 명사의 목록이 아닐 것입니다. 타인의 가슴에 깊이 박히는 당신의 잔상은 언제나 형용사로 기억됩니다.
"그는 높은 지위에 있었던 분이야." (명사 중심의 기억)
"그는 참으로 정직하고, 곁에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이었어." (수식어 중심의 기억)
후자의 기억이 훨씬 더 그 사람의 본질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명사가 삶의 외형을 만든다면, 수식어는 삶의 질감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명사 한 줄을 얻기 위해 영혼을 소모하기보다, 나를 설명해 줄 아름다운 형용사 하나를 가꾸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 남길 유일한 진짜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수식어는 결과가 아니라 태도다
우리는 흔히 생각합니다. 성공하고 나서 좋은 일을 하겠다고, 일단 자리를 잡고 나서 가치를 챙기겠다고. 하지만 수식어는 명사를 얻은 뒤에 받는 부록이 아닙니다. 수식어는 명사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 속에 녹아 있어야 합니다.
'정직한 경영자'가 되려는 내면의 지향점이 없는 사람은, 경영자가 된 후에도 결코 정직해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지위라는 명사의 그늘 아래서 자신의 무색무취함을 정당화하는 기술만 늘어날 뿐입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어쩌면 '수식어 없는 명사'들이 너무나 많은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신이 어떤 자리에 있든, 그 자리에서 어떤 수식어를 지키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비록 지금 내 명함이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그 앞에 붙은 '성실한', '사려 깊은', '정직한'이라는 수식어가 살아있다면 당신은 이미 완성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둔중한 깨달음: 나는 무엇으로 불리고 있는가
읽던 책을 덮고 카페를 나오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를 수식하고 있는 단어는 무엇인가?"
내가 가진 명함, 내가 타는 차, 내가 사는 동네라는 명사들 말고, 나의 행위와 가치관을 온전히 설명해 줄 단 한 마디의 형용사가 내게 남아 있는가.
옆자리 청년들의 대화는 나의 급소를 찔렀습니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방법(명사)만 배웠지, 어떤 모습으로 걸어가야 하는지(형용사)는 잊고 살았음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미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나눈 대화 한 토막이, 책을 읽던 한 사람의 인생관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명사의 수집을 잠시 멈추고, 자신만의 수식어를 발굴해야 합니다. 단순히 '무엇'이 되는 것에 매몰되지 마십시오. 그 명사 앞에 어떤 단어가 붙었을 때 당신이 가장 당신다울지, 혹은 가장 당당할지 고민하십시오. 정직한, 공정한, 다정한, 끊임없이 사유하는... 이 짧은 수식어 하나가 당신의 삶을 지루한 명사의 나열에서 위대한 서사시로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당신은 오늘, 당신의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였습니까? 그 수식어가 당신의 명사보다 무겁고 소중하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비로소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