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과 장염 '이슈', 웃픈 일상의 복선

by 안녕 콩코드


​세상은 때로 소설보다 더 정교한 복선과 상징을 우리 눈앞에 툭 던져놓곤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걷던 길 위에서 목도하는 풍경들이란 대개 무채색의 배경으로 스러지기 마련이지만, 어떤 날은 예기치 못한 문장 하나가 가던 길을 멈춰 세우고 기어이 쓴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것은 타인의 사생활이라는 은밀한 영역이 공적인 안내문의 형식을 빌려 길거리로 쏟아져 나올 때 발생하는 기묘한 파열음 때문이다.


​약 3주 전의 일이다. 왼쪽으로 길게 뻗은, 위아래로 시원하게 난 도로 옆 인도를 따라 걷던 중이었다. 무심코 시선이 머문 어느 미용실 입구, 그 유리문에 붙은 안내문 하나가 발길을 붙들었다. ‘4주 골절로 3주간 휴업.’ 순간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은 채 1초를 넘기지 못하고 묘한 멈칫거림으로 변했다. 타인의 고통을 목격한 직후에 터져 나온 웃음의 비겁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그 문장의 지나친 ‘구체성’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개인 사정으로 인해 당분간 휴업합니다’라는 완곡한 표현 뒤로 자신을 숨기기 마련이다. 그것이 우리가 배운 사회적 에티켓이자, 불특정 다수에게 내보이는 최소한의 방어기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미용실 주인장은 자신의 뼈가 부러진 주수와 그로 인해 문을 닫아야 하는 물리적 시간을 아주 정직하게, 혹은 투명하게 박아 넣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자세히 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은 이내 ‘그분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수긍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동네에서 이미 독특한 세계관의 소유자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었다. 가슴 앞부분이 깊게 파인 레이스 상의를 즐겨 입고,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챌 만큼 과감하고 튀는 화장술로 뭇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이. 누군가는 그것을 영업의 일환이라 평했고, 누군가는 그저 범상치 않은 취향이라며 입길에 올렸다. 그러니 그녀의 안내문에 담긴 날 것 그대로의 정보는, 아마도 그녀가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덧칠했을 화장만큼이나 자신을 표현하는 솔직한, 혹은 유일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3주가 흘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오늘은 그곳에서 북동쪽으로 면한 길을 걷다가 다시 한번 기시감에 휩싸였다. 또 다른 미용실, 그리고 또 다른 안내문. 이번에는 눈에 확 띄는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상포진과 장염 이슈로 2주간 쉽니다.’


​나는 다시 한번 빵 터지고 말았다. 대상포진이라는 병명이 주는 그 지독한 통증에 대한 안쓰러움보다, ‘이슈’라는 단어가 주는 생뚱맞은 세련미가 먼저 뇌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무엇이든 ‘이슈’가 된다지만, 본인이 아픈 것조차 트렌드처럼 소비되는 단어로 치환해버린 그 감각에 무릎을 쳤다. ‘장염’이라는, 왠지 남에게 드러내기엔 조금 멋쩍은 병명까지 굳이 명시한 그 우직함은 또 어떠한가. ‘이슈’를 ‘관계’로 바꾸고 ‘장염’을 지웠더라면 훨씬 매끄러운 안내문이 되었겠지만, 그랬다면 내가 느낀 이 묘한 인간미는 거세되었을 것이다.


​이 두 번째 주인장 역시 비범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결혼한 지 불과 며칠 만에 파혼이라는 풍파를 겪고도, 전 남편이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고작 3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당당히 자기 매장을 차린 이였다.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 원한이나 회피 대신 ‘근거리 경쟁’을 택한 그 서늘하고도 뜨거운 결기는, 평범한 이들의 상식으로는 가늠하기 힘든 영역이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혹은 몇 주라는 시간차를 두고 마주한 이 두 장의 안내문은 우리 삶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누군가는 뼈가 부러지고, 누군가는 신경이 타 들어가는 통증 속에서도 자신의 부재를 증명하기 위해 문장을 고른다. 그 문장이 세련되지 못하면 어떻고, 지나치게 솔직하면 또 어떤가. ‘개인 신상’이라는 건조한 단어 뒤로 숨어버리는 결벽증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아픔을 ‘골절’이라 부르고 ‘이슈’라 명명하며 세상과 소통하려 애쓰는 그 모습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발버둥이 아닐까.


​비록 적절하지 않은 단어 선택에 웃음이 새어 나오긴 했지만, 그 웃음의 끝에는 언제나 숙연한 응원이 매달려 있다. 뼈가 붙기를 기다리는 레이스 상의의 여인과, 대상포진의 화끈거림을 견디며 다시 가위를 잡을 날을 기다리는 파혼의 여인. 이 두 분의 쾌유를 비는 마음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진심이 담겨 있을 것이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하지만 때로는 가까이서 봐도 웃음이 나고, 멀리서 봐도 가슴 한쪽이 아릿한 ‘웃픈’ 순간들이 있다. 오늘 내가 마주한 두 장의 안내문이 그러했다. 세상을 향해 자신의 아픔을 이토록 투명하게 고백하는 이들이 있기에, 오늘도 이 거친 도로는 무채색의 아스팔트가 아닌 사람 냄새 나는 삶의 현장으로 기록된다. 부디 다음번 그 길을 지날 때는, 병명 대신 ‘정상 영업’이라는 짧고 명쾌한 문장이 나를 반겨주길 바란다. 웃음기 싹 뺀, 아주 평범하고 지루한 안부 인사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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