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얼굴에 이름을 붙이는 기록자, 김난도

by 안녕 콩코드


​세상은 이름 붙여지기 전까지 그저 모호한 소용돌이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현상이 뒤섞여 흘러가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 포착해 명쾌한 한 단어로 정의하는 일은 일종의 정밀한 나침반을 세공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2026년 오늘, 한국인의 일상과 소비 이면에 숨은 집단적 열망을 관찰하며 매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내는 인물이 있습니다. '트렌드 코리아'라는 렌즈로 대중의 심리를 해독하는 김난도 교수입니다.


​그를 가늠자로 삼는 건 단순히 내년에 유행할 상품 목록을 미리 훔쳐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김난도라는 이름은 2026년 한국 사회가 어떤 결핍을 앓고 있으며, 그 구멍을 채우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자아를 투영하는지 보여주는 ‘정서적 기상도’이기 때문입니다.


현상 너머의 맥락을 짚는 ‘트렌드 워치’


​김난도 교수의 작업은 유행하는 현상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파편화된 개개인의 취향을 묶어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줄기로 엮어냅니다. 2026년의 소비자는 영리합니다. 단순히 가성비를 따지는 데 머물지 않죠. 자신의 가치관을 증명하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고, 인공지능이 숨 쉬듯 당연해진 환경 속에서 오히려 더 따뜻한 인간의 체취(Human Touch)를 갈구합니다.


​그가 명명한 키워드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이것을 선택했는가." 유통 기한이 짧은 유행에 휘말리지 않고, 그 유행이 싹튼 토양을 분석하는 그의 시선은 대중이 스스로의 욕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돕는 거울이 됩니다. 섣부른 예측보다 중요한 건, 현상 이면에 흐르는 도도한 맥락을 짚어내는 일임을 그는 매해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트렌드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불편함, 혹은 아주 미세한 욕망의 파동이 겹치고 쌓여 만들어지는 거대한 해일입니다. 김난도는 그 파동이 시작되는 지점을 찾아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우리가 막연히 느끼던 불안의 실체를 규명합니다. 그가 매년 제시하는 동물 상징(Zodiac) 키워드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흩어진 사회적 징후들을 하나의 서사로 묶어내는 고도의 편집 공학입니다.


2026년, 평균이라는 안온함이 사라진 자리


​김난도라는 가늠자를 대면하면 우리 사회의 뼈대가 변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이른바 ‘보통’이라는 기준이 무너진 ‘평균 실종’의 시대입니다.


​초개인화된 라이프스타일: 이제 '남들만큼 사는 삶'은 희미해졌습니다. 김난도 교수가 포착하는 트렌드는 각자가 고유한 색깔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기업 또한 이제 불특정 다수가 아닌 '단 한 사람'의 깊은 취향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건 획일화된 집단주의의 종말이자, 다원화된 개인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선명한 지표입니다.


​불안을 잠재우는 소비의 미학: 2026년의 트렌드 기저에는 늘 '불안'이 깔려 있습니다. 고물가와 기술적 격변 속에서 사람들은 작은 사치를 통해 삶의 통제감을 확인하거나, 반대로 극도의 절약을 통해 생존을 도모합니다. 그가 매년 던지는 키워드들은 이 불안한 시대에 대중이 찾아낸 나름의 '정서적 방어기제'를 기록한 일기장과 같습니다.


​그는 자산의 격차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경험의 격차’라고 말합니다. 트렌드를 읽는다는 건 그 격차의 틈바구니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지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이제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속한 세계관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구매하는 셈입니다.


​결국 평균의 소멸은 누군가에게는 공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나다움'을 발굴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됩니다. 김난도는 그 양날의 검을 쥐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지금 당신의 선택이 어떤 좌표 위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환기해 줍니다. 획일적인 '정답'이 사라진 시대, 그는 오답이 아닌 각자의 '해설지'를 써보라고 권합니다.


1월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김난도 서울대 명예교수(오른쪽)와 이향은 LG전자 상무가 ‘CES로 본 2026년 트렌드’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매일경제.


"트렌드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대응하는 것이다"


​그는 늘 말합니다. 미래를 점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지금 일어나는 변화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고요. 2026년을 통과하는 우리에게 그가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변화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그 파도의 성질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죠.


​진정한 트렌드 세터는 유행을 맹목적으로 쫓는 사람이 아닙니다. 흐름 속에서 자기만의 중심을 잡는 사람입니다. 김난도 교수는 우리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표류하지 않도록 ‘언어의 등대’를 비춰줍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유행어 속에 우리 시대의 아픔과 희망이 공존하고 있음을 그는 나직이 일깨워줍니다. 파도는 매번 다르게 치지만 바다의 깊이를 아는 사람은 당황하지 않는 법입니다.


​때로 그의 키워드가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만큼 한 시대의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지표도 드뭅니다. 김난도는 그 차가운 지표 위에서 따뜻한 인문학적 해석을 덧입히는 작업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가 명명한 '아프니까 청춘'이었던 세대가 이제 '트렌드를 주도하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입니다.


소비의 책임: 소유를 넘어 존재의 증명으로


​그가 설계하는 트렌드의 종착지는 단순히 소비를 부추기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향해 걷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컨셔스(Conscious) 소비'나 타인과의 연대를 중시하는 새로운 공동체적 흐름은, 자본주의의 차가움 속에서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온기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건강한 소비 문화’가 뿌리 내릴 때, 트렌드는 탐욕의 흔적이 아니라 시대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훈장이 됩니다. 2026년의 라이프스타일은 이제 무언가를 가지는 '소유'를 넘어,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존재'의 의미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김난도 교수는 그 변화의 길목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할 인간적 가치들을 하나하나 명명하며 기록해 나갑니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끝내 인간의 얼굴을 잃지 않으려는 분투의 기록인 셈입니다.


​트렌드의 홍수 속에서도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결국 '나'라는 본질입니다. 유행하는 코트를 입었느냐보다 그 옷을 입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걷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온 것입니다. 김난도는 그 거대한 담론의 파수꾼으로서, 매년 우리에게 성찰의 단어들을 건네고 있습니다. 그가 명명한 '체리슈머'나 '나노사회' 같은 단어들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영리하고 조화롭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의 다른 이름들입니다.


이름 붙여진 시대, 우리가 걸어갈 길


​황현희(자산의 자립)가 개인의 요새를 짓는 법을 말했다면, 김난도는 그 요새 밖에서 불어오는 거대한 기류를 분석합니다. 이 두 가늠자를 통해 우리는 개인의 생존 전략과 사회적 흐름이 만나는 접점을 비로소 선명하게 읽어내게 됩니다.


​매해 쏟아지는 새로운 키워드들은 2026년의 혼돈을 잠시나마 정돈해 줍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하고 AI가 일자리를 위협해도, 우리가 무엇에 열광하고 무엇에 상처받는지 읽어내는 통찰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 통찰이야말로 우리가 다음 해를 맞이할 용기를 주는 든든한 밑거름이니까요.


​내년의 키워드를 기다리기 전, 올해 내가 선택했던 것들이 내 삶의 어떤 욕망을 대변했는지 먼저 복기해봅시다. [인물 가늠자] 시리즈가 던지는 다음 화두가 벌써 우리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트렌드를 써 내려가는 인생의 작가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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