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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Aug 06. 2024

의회는 부서 업무추진비 사용실태를 철저히 조사하라

관련 규정의 미비점은 신속히 보완해야


모 의회 얘기다. 부서별로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돈이 업무추진비라는 미명 아래 줄줄이 새 나가고 있다. 이를 감시할 의회는 사실상 손을 놓았다. 그 틈을 타 집행부의 도덕적 해이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업무추진비의 부당 사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러 해 전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허위 출장 및 여비 부당 수령’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는 양상이다. 이를 바로잡아야 할 주체들은 온정주의에 기대어 수수방관할 뿐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역시 지난날 행각과 빼닮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연치 않게 사용된 업무추진비 사용 실태를 의회 차원에서 인지한 정황이 있다. 모 의원이 회기 중 발언에서 “직원들 고생했다고 밥 사주는 것까지 터치하지는 않겠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우려스러운 건 그와 같은 인식이 의원 개인을 넘어 의회 전체의 인식일지 모른다는 점이다. 의회의 첫 번째 기능은 감시에 있다. 그러라고 시민들이 뽑았다. 관련 사실을 엄중히 조사하고 옥석을 가릴 입장에 선 의회가 규정을 교묘히 악용한 사용 실태를 엄중히 경고하기는커녕 부당 사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나아가 중세 시대에나 가당할 면죄부를 남발할 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말의 뉘앙스 상 자신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넘으면 조치할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린다. 이런 말은 부당 사용 실태를 그가 정확히 알고 있거나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짐작한 바가 있을 때 가능하다. 실태를 알고도 묵인 혹은 방조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실태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을 바꾼다면 무능하다고 자인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의회 본래의 기능이 정상 작동하는지 의심 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의회 차원에서 업무추진비 사용 실태를 조사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의회는 부서별로 매년 업무추진비 집행 명세를 받는다. 유감스럽게도 그 조사에선 1인당 지출 가능 금액에 초과가 없는지, 특정 식당을 집중적으로 이용했는지가 주된 관심사다. 매년 같은 수준에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간혹 지출에 실수가 있을지라도 그 정도는 부서에서 챙기기 어렵지 않다. 현행 업무추진비의 맹점은 업무추진비가 부서장의 개인 쌈짓돈(점심값)으로 전락한 데 있다. 이런 현실을 간과한 조사로는 현실을 바로잡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실효성 자체가 의문인 그깟 조사 방식으로 뭘 규명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오히려 의회의 조사 방향이 대단히 형식적이라는 점을 간파한 부서장들에게 날개만 달아준 꼴이다.



전에는 부서장이 특정인들을 대동하고 업무추진비로 점심을 먹는 빈도가 높지 않았다. 눈치가 보여서라도 부서 내 직원들과 돌아가며 업무추진비를 썼다. 물론 업무추진에 공로가 있는 직원들을 격려하는 용도로 업무추진비를 쓸 수 있다. 규정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업무추진비 전부를 밥값으로 쓴다는 데 있다. 더 가관인 건 거의 빠짐없이 부서장이 특정인들과 점심 먹는 데 그 돈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문에는 관례대로 직원 격려 차’라고 제목을 달고 참석자 항목(집행대상)에는 누구 외 몇 명이라고 쓰면 된다. 그 공문으로는 대체 누구와 점심을 먹었는지 알 수 없다. 그 점을 악용한 것이다. 특정인들의 점심값으로 업무추진비를 썼느냐는 지적을 받아도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다. 조사 과정에서 참석자를 구체적으로 적어서 내라고 해보자. 십중팔구는 오래돼서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올 공산이 크다. 기사에 난 대로 “그러면 업무 부담이 커진다”는 소리를 듣게 될지 모른다. 대체 참석자 명단 몇 줄 쓰는 게 그렇게 업무 부담을 가중시킬 정도로 힘에 부친 일인가? 참석자 명단을 일일이 기록하면 해당 공문을 본 직원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건 불문가지다. 자신에게 잘 보인 특정인들에게 생색내며 법인카드를 쓸 수 없기 때문은 아니고?





이상의 사정만으로도 현 업무추진비가 본래의 목적에서 얼마나 크게 벗어나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당장 지난 6개월 동안의 사용 내역에 참석자 명단을 전부 적어 내도록 해보라. 처음엔 위와 같이 볼멘소리를 내며 거부하려 들겠지만 강하게 압박하면 고개를 숙이는 게 저들 습성이다. 목줄 탄 부서장과 관련자들이 이번엔 직원들과 입을 맞추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직원들을 구워삶아야 할 부서가 꽤 될 텐데, 가지도 않은 식당에 갔다고 흔쾌히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둘 직원이 몇 명이나 될까? 그들 특정인을 제외한 7할 이상의 직원들이 과연 순순히 허위 기재 사실을 용납할 수 있을까? 부서장이 근평 권한을 가지고 있는 한 그럴 수 있겠다. 이땐 개별 접촉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는 언질만으로도 충분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에 관한 규칙이 있다. 행정안전부령으로 정한 <지방자치단체 업무추진비 집행에 관한 규칙>다. 해당 규칙의 별표 1은 업무추진비 집행대상과 직무활동 범위를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1. 이재민 및 불우소외계층에 대한 격려 및 지원, 2. 시책 또는 지역 홍보, 3. 학술·문화예술·체육활동 유공자 등에 대한 격려 및 지원, 4. 업무추진을 위한 각종 회의·간담회·행사, 5. 현업(현장) 부서 근무자에 대한 격려 및 지원, 6. 소속 상근직원에 대한 격려 및 지원, 7. 업무추진 유관기관 협조, 8. 직무수행과 관련된 통상적인 경비, 9. 그 밖에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대상·방법·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정한 조례 또는 법령에 미리 정하여진 경우 등 총 9가지 항목에 업무추진비를 쓰도록 다. 



위에서 살펴본 점심값 용도의 업무추진비 항목은 '6. 소속 상근직원에 대한 격려 및 지원'이다. 9개 항목 중 단 1개 항목에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업무추진비를 점심값에 전부 쓰고 있다면 믿으실까? 그러니 업무추진비가 부서장 쌈짓돈이라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공무원은 급여 형식으로 밥값을 받는다. 정액급식비라고 한다. 그 돈이 모자라 점심값을 업무추진비로 해결하는 작태가 더 이상 용인되어선 안 된다. 국민이 낸 세금을 사사로이 빨아먹는 식충벌레는 족족 잡아들이는 게 답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추진비를 기업의 핀공비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업무추진비 실태조사나 감사가 주로 지방자치단체장의 그것에서 그친 것이 사실이다. 그 사이 수십 개 부서의 업무추진비가 어처구니 없는 곳으로 줄줄 새나갔다. 각 부서의 업무추진비를 모두 합치면 얼마나 될까?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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