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창문을 열 때면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기분이 든다. 아직 몸은 완전히 깨어나지 않았는데 바람은 먼저 나를 깨운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확실하게 느껴지는 존재다. 창문을 열자마자 스며드는 공기는 단순한 산소가 아니라 어떤 기운처럼 다가와 오늘 하루를 시작하게 만든다. 어제와는 조금 다른 바람, 그리고 내일은 또 다른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놓이게 한다.
바람은 늘 다른 얼굴을 하고 온다. 어떤 날은 차갑고 날카롭게 몸을 스치며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또 어떤 날은 부드럽게 뺨을 어루만지며 위로처럼 다가온다. 계절에 따라 바람의 무게와 온도가 달라지듯이, 내 마음도 그 바람에 따라 움직인다. 겨울의 바람은 단단하게 마음을 다잡게 만들고, 봄의 바람은 묘한 설렘을 불러온다. 여름의 바람은 무겁게 흘러도 그 안에서 생기를 찾게 하고, 가을의 바람은 오래된 기억을 꺼내온다. 바람은 늘 나보다 먼저 계절을 알려준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마주할 때면 종종 과거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뛰놀던 때의 바람, 대학 시절, 도서관 창가에서 맞던 바람, 그리고 직장인이 된 후 퇴근길에 느낀 바람까지.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사라진 줄 알았지만, 사실은 내 기억 속 어딘가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내가 창문을 열 때마다 그 바람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바람은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내 삶의 배경 음악 같은 존재다.
어떤 날은 바람이 다소 거칠게 불어와 창문을 세차게 흔들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괜히 마음도 흔들린다. 내가 버티고 있던 무언가가 휘청거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동시에 그 거센 바람은 내 안에 쌓여 있던 먼지를 털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바람은 늘 흔들리게 하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비로소 정리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세찬 바람을 마주해도 결국은 창문을 닫지 않는다. 오히려 그 흔들림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람은 늘 잠시 머물다 간다. 손으로 잡을 수 없고, 붙잡으려 해도 이미 흘러가 버린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선물처럼 느껴진다. 오래 머물지 않기에 더 소중하고, 지나가 버리기에 더 선명하게 기억된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영원히 붙잡을 수 없는 순간들이 지나가며 결국은 내 삶을 만들어낸다. 바람처럼 스쳐 간 시간들이 모여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든다.
나는 바람을 맞을 때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곤 한다. 바람은 대답하지 않지만, 대신 그저 스쳐 지나가며 나를 흔든다. 그 흔들림이야말로 답일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단단해지려 하지 말고, 조금은 흔들리며 살아가도 괜찮다는 것. 바람은 늘 그렇게 내게 말 없는 가르침을 준다.
오늘 아침에도 창문을 열자 바람이 들어왔다. 어제와는 다른 온도, 다른 방향, 다른 속도의 바람. 나는 그 바람을 깊게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하루라는 것도 결국 바람과 같을지 모른다고. 어제의 하루는 이미 흘러갔고, 오늘 하루는 지금 이 순간에만 머문다. 붙잡으려 해도 사라지고, 억지로 막으려 해도 스며든다. 그러니 오늘을 살아간다는 건 바람을 맞이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내일도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을 것이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다정하게 찾아오는 바람 속에서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이다. 창문을 열자 들어온 바람은 그저 날씨의 일부가 아니라 내 하루의 첫 문장이다. 그리고 그 문장은 언제나 나를 앞으로 살아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