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김에 써보는 진상 손님들의 기록
스타벅스를 퇴사했다. 퇴사의 기쁨보다는 앞으로의 구직활동이 더욱 걱정이지만 스타벅스에 돌아가고 싶진 않다. 바리스타로 재밌게 일했고 동료들과도 즐겁게 지냈다. 그럼에도 퇴사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고객 응대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진상열전은 자기 치유를 위해 쓴다. 그동안의 경험을 쓰면서 자아성찰과 동시에 스트레스를 해소해 보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고객들이 평범하고 친절했고 진상열전의 등장인물들은 극소수의 사례일 뿐이다. 이런 글 하나로 국민의식이니, 요즘 세대 운운하면서 일반화하지 말자.
만약 당신이 스타벅스에 입사할 예정이라면, 일하게 될 매장이 얼마나 힘든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가 몇 가지 있다.
1. DT 매장 : 드라이브 스루에는 드라이브 스루 전용 바와 매장 손님용 바가 나눠져 있어 움직임이 많다. 또 주문량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피크 타임이나 명절날에는 전쟁터와 다름없는 환경이다.
2. 매장 내 화장실 : 건물 화장실을 이용하는 경우는 건물 관리인이 청소를 전담하지만, 매장 내 화장실인 경우는 바리스타들이 화장실 청소도 겸한다. 화장실 청소는...... 더러운 꼴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3. 코어 매장 : 각 지역별로 가장 매출이 높고 거점이 되는 매장이 있는데 이런 매장을 코어 매장이라고 부른다. 매출이 높다는 건 손님이 많다는 것이고 바쁜 매장일수록 자잘한 업무가 많아진다.
4. 3층 이상의 매장 : 바리스타들이 매장 청소도 하는데 매장이 3층 이상이면 매일 계단을 오르내리고 마감 때마다 바닥청소를 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많다.
5. 주차장 : 고객들의 주차 분쟁을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계절 가리지 않고 아침마다 주차장 청소를 해야 한다. 그리고 주차장이 있다면 바리스타들은 다음과 같은 손님들을 만날 수 있다.
1. 다른 차 앞에 이중 주차해 놓고 전화 안 받는 손님
이중주차하고 갔으면 전화했을 때 바로 받아라.
빨리 나가야 하는 손님은 직원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고 직원들은 차주인을 찾으러 매장을 돌면서 고객들에게 일일이 물어봐야 한다. 방송하면 간단하지 않냐고? 수다에 푹 빠진 고객들은 방송을 주의 깊게 듣지 않고, 공부하는 고객들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있다.
그나마 차주인이 매장에 있으면 다행이다. 차에 번호가 없는 경우도 많고 스타벅스를 이용하지도 않으면서 주차만 해놓고 사라지거나 주차 후 테이크아웃 음료를 사서 다른 곳으로 식사하러 가는 손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차주가 전화를 안 받으면 직원들도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빨리 가야 한다고 히스테리 부리는 고객과 전화를 안 받는 고객 사이에서 난처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2. 주차장 진입로에 주차하는 손님
어느 날은 주차장 진입로와 도로에 걸쳐서 주차를 해 놓은 손님이 있었다. 전화로 이곳은 차를 대면 안 되기 때문에 차를 빼야 한다고 안내했다. 그런데 고객은 이미 주차장에 자리가 없기 때문에 차를 댈 수밖에 없다고 뻔뻔하게 말했다. 다시 한번, 주차장 진입로에 차를 대면 다른 손님들이 못 나가기 때문에 다른 곳에 주차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그날 오후 해당 고객이 '고객의 소리'를 남겼는데, 주차장에 차를 빼달라는 직원이 '기분 나쁘게 말해서 불쾌하다'는 내용이었다. 엄연히 주차하면 안 되는 곳에 차를 대고, 다른 사람들이 불편을 겪는 것도 무시한 고객이 단지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직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직원의 안내를 무시하려고 한 자신의 태도는 반성하는 기색도 없이 직원을 탓하는 것이 부당하지 않나?
그러나 직원이 을인 입장이라 고객에게 '기분 상하게 해서 죄송하다'라고 사과해야 하는 것도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이럴 때는 커피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바리스타가 아니라, 떼쓰는 5살짜리를 돌보는 유치원 선생님이 된 것 같다.
3. 주차장에 담배꽁초 버리는 손님
화단에 버린 담배꽁초는 화재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 해본 적 없나?
굳이 배수로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이유는 뭔가?
배수로 뚜껑을 열어서 청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꽁초가 빗물에 깔끔하게 휩쓸려 갈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게 배수로에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쌓이면 장마철에 빗물이 역류해서 침수되는 지역이 있다는 건 알고 있는 건가?
제일 싫은 건 다 마신 음료컵에 담배꽁초와 가래침, 잡다한 쓰레기를 잔뜩 구겨 넣고 주차장 한편에 고이 모셔놓은 고객이다. 일회용 컵은 플라스틱이고 담배꽁초는 일반 쓰레기다. 그걸 직접 분리해서 버리기는 귀찮으니 누군가 치울 거라고 생각하고 주차장 한편에 곱게 모셔 놓은 이기심이 역겹다.
담배 한 갑 가격은 평균 4500원 정도라지? 그러나 흡연자들이 버려 놓은 꽁초를 치우는 사회적 비용을 계산하면 담배 한 갑의 평균 가격은 2만 원이어야 한다. 담배 연기로 주변에 간접흡연 피해를 주는 것도 모자라 길바닥에다 더럽게 가래침을 뱉어놓질 않나 아무 데다 담배꽁초를 버리질 않나. 그러면서 '흡연할 자유'를 운운하지 마라.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담배꽁초는 개똥처럼 비닐봉지에 싸서 집으로 가져가길 바란다.
글을 쓰다 혈압이 올라서 뒷목이 뻣뻣해진다. 스타벅스 진상열전은 주차장편, 기물파손편, 외부음식편, 코로나외전으로 나눠서 업로드할 계획이다. 글을 끝낼 때까지 뒤통수 잡고 쓰러지지 않으면 좋겠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면서 귀엽고 친절한 고객들도 많았으니 마지막에는 꼭 훈훈한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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