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1년 차, 12번의 지원사업 합격이 남긴 것

80번의 도전과 12번의 수행, 그 치열했던 기록

by 글쓰는 COO

"창업지원사업은 양날의 검이다."

"지원금을 받기 위한 창업은 결국 망하는 길이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흔히 들리는 이 말들은 어느정도 사실이다. 지원사업의 각종 이벤트와 행정에 끌려다니다 보면 정작 집중해야 할 고객과 제품은 뒷전이 되기 마련이니까. 주변에서도 우려 섞인 조언을 많이 건넸다.


하지만 내가 우리 회사에 합류해 지난 1년간 12개의 지원사업을 수행하며 내린 결론은 다르다. 창업지원사업은 그 자체로 독이 아니라, '명확한 방향성'이 없을 때, 독이 된다.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참여한다면, 그것은 스타트업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부스터가 된다.


작년 한 해, 우리 회사는 이 '양날의 검'을 제대로 휘두르기 위해 치열하게 달렸다. 80여 개의 사업에 지원해 청년창업사관학교 등 각종 정부지원사업과 각종 실증 사업(PoC)까지 총 12개의 사업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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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린더는 늘 서류 마감과 각종 교육 참석, 멘토링, 보고서 제출 등으로 빽빽했지만, 우리는 그와 동시에 지원사업에 '끌려다니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생각하고 배운 것들을 기록해봤다.



1. 지피지기(知彼知己) : 12번의 합격으로 확인한 '우리만의 PMF'


성공적인 지원사업 수행의 첫 번째 조건은 '나의 위치'와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아는 것이다. 1년 차의 우리는 요건이 되는 창업지원사업이라면 무조건 도전했다. 자금 확보와 인력 충원이 가장 큰 목적이기는 했지만, 그 과정은 철저히 우리 팀의 결핍을 채우고 현재 위치를 점검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MVP 단계에서 시장의 언어를 배우다: 당시 우리는 제품의 MVP(최소 기능 제품)만 겨우 나온 상태였다. 정말 시장이 원하는 제품인지 검증이 절실했던 시기였고, 지원사업은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하고 리스크 없는 테스트베드가 되어주었다.


고객 수요 확인과 제품 고도화: 실제 현장에 투입되어 고객 수요를 확인한 뒤에는 세부적인 기능과 디자인에 대한 개선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우리는 지원금을 최대한 제품 고도화와 UX/UI 개선에 투입하며 시장의 눈높이에 맞춰 나갔다.


통합 홈페이지 구축의 실마리: MVP로 만들었던 기존 서비스 페이지는 정체성이 모호해 우리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전달력이 부족했다. 그러다 지원사업 교육에 참여하며 비로소 통합 홈페이지 구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고,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극초기 스타트업을 위한 맞춤형 학습: 우리는 팀 빌딩과 기초 BM 수립이 시급한 극초기 단계였기에, 그에 맞는 실무 교육들을 찾아 다녔다. 즉, 지원사업을 통해 우리가 현재 어떤 위치에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며 필요한 자원을 적재적소에 지원받을 수 있었다.


압축 성장이라는 보상: 지원 과정 자체가 우리 사업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훈련이 됐다. 수많은 대표님, 기관 담당자들과 교류하며 얻은 인사이트는 팀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끄는 밑거름이 되었다.



2. 사람이라는 자산 : 정부지원사업에서 만난 해결사들


지원사업의 꽃은 흔히 '사업비'라고들 하지만, 지원사업에서 만난 사람들이 우리의 성장을 이끌었다. 1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오며 만난 전문가들은 우리의 보이지 않는 병목을 뚫어주는 해결사가 되어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크게 헤매지 않고 내실을 다질 수 있었다.


실질적인 비즈니스 기회의 연결: 어떤 지원사업은 단순히 교육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핵심 타겟이 될 주요 고객사를 직접 매칭해주기도 했다. 책상 위에서 가설로만 존재하던 타겟 고객을 눈앞에서 마주하고 목소리를 듣는 과정은 그 어떤 시장 조사보다 강력했다.


전문가와 함께한 UX/UI의 대대적 혁신: 통합 홈페이지 구축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전문가를 만난 것도 큰 수확이었다. 함께 진행한 피그마(Figma) 워크숍을 통해 서비스의 UI/UX를 근본적으로 개선했고, 이는 우리 제품의 첫인상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스타트업의 언어를 이해하는 파트너: 작년 한 해 가장 잘한 일로 꼽는 '회계법인 변경' 역시 지원사업 멘토링의 결실이었다. 스타트업 CFO 출신의 회계사님을 만난 덕분에, 우리의 눈높이에서 리스크 관리와 투자 준비를 논의할 수 있는 든든한 파트너를 얻게 되었다.


투자자와의 접점 확보: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사업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잠재적 투자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당장의 투자 유치 여부를 떠나, 투자자의 시선에서 우리 비즈니스를 점검받고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은 앞으로의 라운드를 준비하는 데 큰 자산이 되었다.



3. 행정의 시스템화 : '서류 지옥'에서 탈출하는 노하우


12개의 사업을 동시에 돌리려면 '체계'가 필수다. 나는 지원사업을 하나씩 수행해 나가며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결코 일을 복잡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을 효율적이고 빠르게 처리하고, 소모적인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기 위함이다. 나는 한 번 했던 일을 다시 반복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기에, 최대한 모든 과정을 매뉴얼화하고 자동화하려고 노력했다.


맥락의 기록과 데이터베이스화: 단순히 신청 서류를 준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업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실적들을 실시간으로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자주 쓰는 서류와 반복되는 문구들을 미리 정리해 두니, 지원사업별로 상이한 양식에도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업무가 머릿속이 아니라 시스템 안에 남게 되자 실무적인 피로도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출 내역과 증빙의 정석: 지원사업 관리의 핵심은 결국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모든 지출 내역은 발생 즉시 기록하고, 관련 증빙 자료를 최대한 꼼꼼하게 구비하는 원칙을 세웠다. 이 루틴 덕분에 사후 감사에서도 특별한 문의나 지적 사항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데드라인 2일 전의 법칙: 업무의 퀄리티를 위해 '마감 2일 전 완료 후 크로스체크'라는 루틴을 고수하려 노력했다. 물론 때로는 데드라인에 임박해 제출하는 긴박한 순간도 있었지만, 이 최소한의 안전장치 덕분에 12개의 사업을 큰 사고 없이 완수할 수 있었다.


운영의 효율화: 우리 제품의 핵심 로직과 PoC 성과들을 '모듈화'하여 정리해 두었다. 매번 공고가 뜰 때마다 새로 작성하는 비효율을 줄이고 80여 개의 지원 공고에 기민하게 대응한 결과, 행정 시간을 최소화하여 제품 고도화와 시장 테스트라는 본질적인 목표에 집중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확보했다.



4. 백전백승(百戰百勝) : 2026년, '선택과 집중'으로 진화 예정!


모든 경험이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믿음은 변함없다. 하지만 1년 차에 '기초 체력'을 충분히 길렀다면, 2년 차인 올해는 그 근육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타격의 정밀도'를 높여야 한다.


전략적 스케일업(Scale-up): 이제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시장성을 검증해야 했던 초기 단계는 지났다. 2026년부터는 요건이 된다고 무조건 뛰어들기보다, 우리 제품의 매출을 폭발적으로 증폭시킬 수 있는 사업을 최우선순위에 둔다. 지원사업의 '개수'보다 사업이 우리 비즈니스의 '우상향 곡선'에 얼마나 기여할지를 먼저 따지는 것이다.


정부 정책 기조와의 정렬: 2026년 정부 지원 정책의 흐름을 읽는 것은 필수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정부가 밀어주는 산업의 결이 맞는 지점을 공략해야 한다. 정책의 결을 읽고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대기업 협업, 해외 진출 거점 등)만 골라내는 '선별적 집중'은 리소스가 부족한 스타트업에게 생존 전략이자 성장 전략이다.


양날의 검을 휘두르는 법: 검에 베이는 것이 아니라, 그 검으로 시장의 실질적인 문제를 베어 넘기는 것. 그것이 2026년 나의 핵심 목표다. 단순히 지원금을 따내는 '합격'에 만족하지 않고, 지원사업의 네트워킹과 인프라를 활용해 시장 점유율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고자 한다.




세상에 도움 안 되는 경험은 없다. 작년의 그 치열했던 12번의 합격과 수행 과정은 너무나 힘들었지만 그만큼 배울 것이 많았다. 1년 차에는 조건이 맞는 사업을 최대한 지원하느라 몸은 고됐지만, 덕분에 우리의 제품을 비로소 '시장에 팔리는 제품'으로 만들 수 있었던 값진 기회였다.


시스템이 없는 조직이 가장 느리듯, 전략이 없는 지원사업 참여는 지치기 마련이다. 작년의 뜨거운 열정이 '성장을 위한 준비'였다면, 2년 차를 맞이하는 올해는 한층 더 영리해지려 한다. 이제는 '우리의 제품'을 고객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실질적인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전략적인 지원사업들을 골라 집중해볼 계획이다.


우리는 올해에도 다양한 정부지원사업에 도전할 것이다. 다만 작년과는 다를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더 명확히 알고 있기에, 올해의 도전은 단순히 자금을 확보하는 과정을 넘어 우리 팀의 진정한 스케일업을 증명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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