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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Aug 28. 2023

인생은 마살라

내 식대로 즐겁게 사는 방법

내게 걷기란, 인간이니 가능한 직립보행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걷는 행위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세상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는, 명상과 만남, 조우 그 자체다.  


지난주, 절에 다녀왔다. 불자는 아니지만 절에 가면 반드시 기도를 드리는 습관이 있다. 이 날은 특별히 기도할 일이 있었기에, 폭염에도 불구하고 일찍 출발했다. 원하는 바가 있으면 절로 행동하게 되어 있다. 기도는 타인을 위해서도 하지만,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종교가 없고 기도하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다. 어떻게 하는 지도 잘 모른다. 절하는 모습을 본 적은 있지만, 좀 어색하다. 하지만 급한 일이 있거나 필요할 때는 부처님을 찾곤 한다.  나무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정말 곁에 찾아오신다고 하지 않았던가. 필요할 때만 찾으니 무엄하도다라고 한다면, 어쩌라고 이렇게 답할 거 같다. 그렇게 나를 포함, 세 사람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도심 가운데 있는 절이라 오고 가는 일도 어렵지 않고, 때마침 연꽃 축제기간이라 즐겁게 다녀왔다. 기도 중 하나는 좀 막연하지만 " 세상을 마음껏 활보하게 해 주십사"하는 내용이 포함되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나는 아주 사소한 사고가 있었다. 버스가 난폭운전을 하는 바람에 내릴 때 그만 발목이 삐끗했고 그 순간 평소와는 아주 다른 통증이 화끈하게 느껴졌다. 

걱정은 했지만 곧 통증은 사라졌고 다시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저녁 무렵 샤워를 마치고 발을 내딛는 데, 갑자기 발목이 욱신거리고 아프기 시작. 결국 그 길로 발을 움직이지 못했다. 냉찜질로 버티다 다음날 아침 곧바로 택시를 타고 가까운 병원으로 직행. 염좌라고 한다. 그리고 발목보호장치를 받고 1주일 넘게 안정을 요하게 되었다. 나의 경우는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다고 하지만 , 이는 경과를 지켜봐야 하고 한 번 문제가 생기면 재발의 가능성도 높다는 말에 무척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다.  내 책임으로 다쳤다면 그냥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마구 달리는 버스로 인해 다쳤다는 생각을 하면 자꾸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렇다고 달라질 것도 없음에도. 


  별별 생각이 다 났다. 어제 분명 나는 기도를 드렸는데,  왜 다음날 이런 일이! 한편으로, 한 번에 세 가지 소원을 빌어서 욕심이었나? 아닌 데... 동화나 전설에서도 세 가지 소원이란 이야기가 많지 않은가.  세 가지 소원은 기본 아닌가? 아님 내 정성(공양미)이 부족했나? 누워 있으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사실 다친 발은 족저근막염으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은 곳이며, 과거에 아킬레스건도 다친 곳이라 매우 걱정됐다. 


그렇게 8일이 지난 오늘, 드디어 침대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 다른 생각이 든다. 기도 덕분에 이 정도로 다쳤겠지. 다행히 찢어지거나  금이 가거나 하지 않았지. 

처음엔 너무 화가 나고, 올여름의 모든 일이 엉망이란 생각까지 들어 힘들었다. 보조장치를 끼고 걸으니 너무 불편했다. 다리만 뻣뻣해지는 게 아니고 허리도 아팠다. 몸의 한 곳을 다치면 그곳만 아프고 끝나는 게 아니다. 움직이지 못하고 자세가 나빠지니 다른 곳도 안 좋아지고, 모든 게 연결되어 영향을 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다행히 이제 한여름 더위는 꺾이는 추세라 시간이 약이라고 믿는다.  여러 번 다치고 난 뒤 모든 게 조심스럽고 동작도 느려진다. 1분 거리라고 되어있는데, 나는 3분 걸렸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더욱 신경 쓰인다.  하지만 여기에만 너무 집중하니 마음까지 힘들어진다. 그래서 재미난 TV프로그램을 다시 보기 하며 시간을 보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프거나 힘들 땐 이게 세상의 끝인 것처럼 극단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곰곰이 떠올려보면, 이것은 아주 일부일 뿐이다. 내가 경험하고 겪은 수많은 즐거운 일들, 내가 가진 좋은 점들이 다 희석되곤 하는 데, 절대 아니다. 인생은 각양각색의 맛으로 이뤄져 있고, 쓴 맛 좀 봤다고 그것으로 단정 짓기엔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 음식도 한 가지 맛이 강할 땐 그걸로 전부를 판단하지만, 첫맛과 중간 그리고 끝맛이란 게 각각 다르듯,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전체적으로 쓰디쓴 인생일지라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단맛도 짠맛도 감칠맛도 분명 섞여 있을 것이다.  고로 각양각색의 맛을 아는 삶이야말로 자신을 더욱 성숙(숙성)하게 해 줄거라 믿는다. 

인생은? 마살라!



*마살라(masala) 인도 음식에 사용되는 혼합 향신료를 총칭하는 말

향신료의 맛이 다양하듯, 우리의 인생도 다양한 맛으로 이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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