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빙: 어떤 인생>을 본 후
누군가 생을 마감한 뒤, 우리는 종종 그 사람을 입에 올리곤 한다. 한 곳에 모인 자리에서, 대부분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때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며, 그제야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다시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당사자를 잘 아는 이들이라면, 그런 모습도 이해하고 수긍하곤 했다.
영화 <리빙: 어떤 인생> 속 주인공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한 사람의 죽음뒤에 그들이 남긴 유무형의 유산은, 여파가 크든 작든, 영향을 끼칠 때가 있다. 극 중 인물도 그랬다. 평범한 소시민- 지금은 이 표현이, 행복이란 단어와 결부 짓게 만든다.-의 삶이지만, 그가 걸어온 발걸음이 헛되거나 결코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즈오 이시구로 각본, 빌 나이 주연이라는 정보만 들었음에도, 의심의 여지없이 극장까지 가게 만들었던 이 영화를 주변에 알리고 싶었다.
런던 시청 공무원인 윌리엄스 씨(빌 나이)의 삶은 크게 다이내믹해 보이진 않았다. 주어진 서류를 검토하고 처리하는 반복되는 일상, 퇴근 후 유일한 낙이라면 영화를 보는 것이 전부로 보였다.
함께 지내는 아들 내외- 아버지로부터 재정적 도움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와도 훈훈하고 돈독해 보이지는 않았다.
어느 날 의사로부터, 주어진 시간이 불과 6개월 남짓이란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고, 혼자 불 꺼진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이러한 사실도 모르는 아들 며느리의 대화는, 윌리엄스 씨를 더 허무하게 만든다.
동료들에게조차 아무 말도 없이 자리를 비운 그는 은행에서 돈까지 인출해 휴양지로 떠난다.
하지만 평생 집과 일터를 오가며 살아온 게 전부, 어떻게 노는 지조차 모른 체, 우두커니 카페에 앉아 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자와 동행, 함께 클럽에도 가고 술에 취해도 보지만, 이는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옛 동료인 마거릿과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며, 일탈을 시도하지만, 남은 생을 장식할 만큼의 추억은 못 되는 것 같다. 그러던 중, 문득 처리하지 않은 서류가 떠오르고, 다시 사무실로 향하게 된다. 어린이 놀이터를 재건하는 일에 그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하는 윌리엄스 씨. 말 그대로 사활을 건 노력은 결국 현실로 이뤄진다.
윌리엄스 씨의 장례식이 끝난 뒤, 동료 중 한 명이 놀이터를 찾고, 그곳에서 순찰을 돌던 순경을 만났는데, 그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가 야심한 시각에 놀이터에서, 어린애처럼 천진하게 그네를 타며 노래 불렀던 모습을 언급하는 데, 당시 그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 방해할 수 없었다며... 그 순간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힌다.
만약 내 운명의 날이 다가온다는 걸 알게 되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바쁠지, 아니면 못다 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느라 분주할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가족과 마지막 만찬을 준비할지... 솔직히, 상상이 안된다.
아직도 시간이 무한정 남은 줄 착각하며 산다. 그야말로 자연스럽다.
영화 속 주인공은 인생의 후반부에 도달했지만, 그 또한 아직 무대를 떠날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누구나 비슷하지 않을까. 더욱이 생의 끝이 자연스러운 소멸이 아닌, 질병에 의한 시한부 선고라면, 어떤 누구도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큰 도전 없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오던 그가, 생의 마지막을 불태울 만큼 집요하게, 혹은 애착을 갖고 했던 일은, 실은 사람들이 등한시해 서류더미에 파묻혀 버린 일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윌리엄스 씨 덕분에 어떤 누군가의 삶이 보다 행복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때론 죽은 이를 두고 그들이 이룬 업적에만 너무 집중하는 것 같다. 업무와 성과면에서만 본다면, 대체로 한 사람이 살면서 크게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한평생을 살면서, 타인을 배려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것 혹은 자신의 삶에 충실했던 것 등... 그 자체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죽은 후의 삶을 평가하고자 함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인생은, 타인의 눈에는 매우 보잘것없어 보여도, 나름대로 가치 있고 멋진 인생임을 잘 보여 준 영화 같아, 길게 얘기해 본다.
원작은 Living, 우리말 제목은 어떤 인생이라고 덧붙였는데, 좀 더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인생, 어떤 누군가의 인생, 나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