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문장들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by 밍키

시골의 문정들___

”찢긴 들녘 위에도 햇살은 내린다 “


폭우로 찢기고 할퀴어진 쑥대밭이

된 들녘에도 햇볕이 가득하다.

아무도 봐주는 이 없는 외진 길섶에도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인양

찢긴 가지 가득 코스모스가 피어 한들거리고,

서까래를 건듯 찢긴 밭둑에는

물동이만 한 호박이 부끄러움도 잊은 채

배꼽을 드러내고 가을볕을 머금으며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해님을 사랑하는 해바라기는

해님이 그리워 가슴이 탄 듯 까맣게 영글어 간다.

해님이 반가워 하늘을 올려다보니

손으로 쥐어짜면 금세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높푸른 가을 하늘은 볼수록 아름답고,

얼마 전까지 중병을 앓던 듯 시름시름하던 오곡들도

해님이 의사인양 씻은 듯 병이 나아

방실방실 웃고 있다.

제비가 떠난 텅 빈 하늘에는

천둥벌거숭이 고추잠자리가

제 세상을 만난 듯 어지럽게 빙글빙글 맴돈다.

찢긴 들녘이지만, 어느 것 하나도 싫은 것이 없다.

한 무리 산들바람이 고개 숙인

벼이삭을 마구 디디고 올라서자

춤추듯 벼들은 넘실거리고,

언덕배기 고추밭에서는

늙은 농부가 고추 따다가 굽은 허리를 펴고

땀을 식히고,

건너편 산에서는 겨우살이 준비에

바쁜 산비둘기가 무리 지어 날고,

다람쥐는 알밤이 익었는지 확인차

밤나무 가지 사이를 재주넘듯 넘나 든다.


_______________


나의 이야기:


아버지의 들녘은,

비바람에 찢기고 쓰러졌어도

여전히 삶을 품고 있었다.

찢긴 가지에도 꽃은 피고,

병든 들판에도 웃음은 돌아온다.

아버지는 상처 입은 자연을 보며

그래도 살아간다는 조용한 생명의 고백을 들으셨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

힘겨운 날에도 다시 고개를 들고 싶어진다.

상처받아도 살아내는 아름다움.

그것이 아버지의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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