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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le Mar 09. 2019

집에 강아지를 들일 준비가 되셨습니까

카오스를 맞이할 준비가 되셨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


첫 사랑.

아름답다는 사람들도 있지.

그런데 대부분 상처고, 어리숙함이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첫 직장.

딱 입사 전날까지 좋다.


첫 브런치.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첫 강아지 입양.

그냥, 이전까지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 5개월째 같이 살고 있는데 아직도 몰라요..


반갑습니다, 루디


루디 처음 온 날, 기념사진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손바닥만 했던 새끼 강아지들이, 그 새 두 배는 커져서 볼록거리는 몸으로 사방팔방을 빨빨대고있다. 형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루디도 신나서 낑낑댄다. 아, 이 곳은 주인 아주머니 댁. 나와 남편은 루디를 데리러 왔다가 강아지들의 귀여움에 홀려 정신 못 차리는 중이다. 아주머니가 뿌듯해하시며 말씀하신다.


"천둥이 (루디 원래이름) 똑똑해요. 오줌도 배변패드에다가 딱딱 가려요."


순간 나와 남편의 눈길이 거실 한 켠에 놓인 흰색 패드를 향한다. 아.. 저거요? 보인다, 패드 위에 콩알만하지만 선명하게 새겨진 진노란 동그라미.


"아.. 그렇네요.."

"오.. 정말 저기다 했네요.."


아직 오줌싸고 똥 싸는거 가지고 칭찬하는게 어색한 초보견주들. 아니 솔직히, 학교에서 친구한테 오줌 잘쌌다고 칭찬해본 적? 회사사람한테 화장실 다녀오셨다고 축하드린적? 없잖아요. 나 역시 소싯적 잘 먹고 잘 싼것 만으로도 칭찬세례를 받으며 으쓱했던 시절이 있겠지만 (엄마 아빠 사랑해요) 기억이 나진 않아서 말입니다.. 뭐, 지금은 루디가 황금똥싸면 진짜 황금이라도 되는양 좋아하는 영락없는 견주이긴 합니다.


주인 집에서 차 한 잔을 대접받으며 잠시 담소를 나눈 후, 루디와 우리 집으로 출발한다. 운전하는 남편은 내내 조용하다. 나 역시 오로지 한가지 생각에 집중하느라 말할 겨를이 없다. 제발.. 차 안에 그 샛노란 콩알같았던 오줌만 싸지 마라..


패닉 24


루디를 처음 집에 데려온 후 24시간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면, 아마 '패닉 24' 같은 이름의 블랙 코미디가 되지 않을까.


세상을 아름다운 기회의 땅이라고 배우며 자란 밀레니얼 세대가 성인되고 현실적응 못 한다는 얘기, 다들 들어보셨죠? 제가 바로 그 세대의 표본입니다. 나는 뭘 할때마다 잘 될거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아.. 사람이 똑같은 실수를 계속 하는 것 만큼 바보 같은게 없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도 나는 굳은 믿음을 가졌다. 난 준비됐다고.  믿음이 얼마나 허황되었는지, 내가 얼마나 초짜이고 아무것도 모르는지, 루디 데려오고 몇 시간 만에 알았다. 그리고 나의 실수를 인정하는 순간, 전염병처럼 빠르게 온 몸에 퍼져나가는 패닉..


더 설명할 것도 없다. 루디와의 첫 24시간. 희망에서 패닉까지의 여정에 대하여 기록해볼까요.


루디 +1시간


집에 도착하고, 케이지에서 루디를 꺼내준다. 여기가 이제 너네 집이야. 신나서 온 집안을 뛰어다니는 루디. 어머 얘는 호기심이 참 많네~ 우리 집이랑 벌써 사랑에 빠졌나봐. 엄마 미소.


루디 +3시간


거실 한쪽의 울타리 앞에 앉아 걱정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나와 내남편. 뭔가 이상하다.


"도대체 뭐가 싫은거지?"

"혼자 있는게 싫은가봐.."

"아니 근데 저 안에 먹을거랑 놀거 다있는데?"


그러니까 '저 안' 이라고 하면, 내가 루디를 위한답시고 야심차게 만든 '강아지 놀이방' 이다. 우리가 앉아있는 울티리의 안쪽이 되시겠다. 야심녀 아니랄까봐, 나는 거실의 1/3 정도를 펜스로 쳐서 루디만의 공간으로 만들어놓았다. 새끼 강아지가 온 집안을 돌아다니면 위험할 수도 있고, 강아지 정서에도 본인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어서. 야 저기가 니방이야. 놀이방에서 먹고 놀고 쉬면 되잖아..


루디: "끄잉 끼잉 끼이이이잉~ 끼이이이잉~ 낑..."


무시해야되나? 일단 무시해보자. 처음부터 오냐오냐해서 버릇 나빠지면 어떡해.


살금살금 울타리에서 멀어지는 우리. 남편과 둘이서 도둑들 마냥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떼고 있는데, 갑자기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루디: "꺙!!! 꺙!!! 꺙꺙꺙!!!! 꺙!!!!!!!! "


얼음. 새끼 강아지도 저렇게 앙칼지게 의사표현이 가능하구나? 우리가 울타리에서 다섯 발자국 멀어지기도 전에, 루디의 애처로운 '낑~'은 세 배정도 시끄러운 '꺙!!!!!!!' 이 되었다.  


"루디 진짜 조금도 혼자 있기 싫은가봐.."

"혼자도 있어봐야지."

"첫날이니까 오늘만 봐줄까?"

"그랬다가 나중에 더 소리지른다."


분명 이 순간을 위해 책과 유튜브로 열심히 공부했는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바로 그 이론만 강한 헛똑똑이였군. 그나저나 우리 루디, 조용히 있게 해줄수 있는 코디 있나요? 얼마에요, 얼마면 되냐구요!


루디 +4시간


울타리 안에서 루디가 운다. 아직도..


지난 2시간동안 저 놈의 울타리 때문에 별 쑈를 다했다. 너무 꺙꺙거리면 주민들 민원 걱정에 잠깐 빼줬다가. 울타리 안에서 사료주고 어르고 달랬다가.. 좋아서 놀다가도, 우리가 울타리에서 멀어지면 다시 낑낑 꺙꺙이다.  


저녁 7시가 넘어가며 배고픈 인간들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루디.. 일단 밥먹을때만 울타리 안에 놓자."

"응 주인집에서도 울타리 안에 있던 애니까."

"꺼내주지 마, 울어도."

"응!!"


비장하다 비장해. 우리 부부가 이렇게 한 마음으로 뭔가를 해결해보려고 했던 적이 많진 않았던 것 같은데..


루디 +6시간


"루디야, 너 내가 누구라고 이렇게 따라다녀? 너네 엄마 생각 안나?"

"얘네는 엄마아빠 개념이 없나봐."

"근데 진짜 너무 따라다녀. 이러다 화장실도 혼자 못가겠다."


아직 졸졸모드인 루디. 오래새끼가 따로없다.


그나저나 만약에.. 루디가 평생.. 변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십 몇 년동안.. 나와 남편만 졸졸 따라다니고 옆에 없을 때 울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린다. 잘 되겠지.. 설마 잘 될꺼야..


루디 +8시간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 슬~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랬더니 방음이 그다지 좋지 않은 아파트에서 (강조) 물귀신 흐느끼는 소리가 난다.


"어우어우어우~~ 워우워우~~ 흐끅흐끅 꺽꺽꺽~ 워허우허우~"


설마. 우리집에 귀신있는거 아니지? 이거 강아지가 내는 소린거지? 강아지들은 '멍멍!' 하고 울지 않는다. 진짜 인간처럼 운다. 지저스..


루디 +10시간


야심한 새벽, 루디는 침대와 벽 사이 바닥에 잠들어있다. 루디 주변에 장난감이랑 이불이랑 먹을것까지 듬뿍 챙겨놓았다. 엄마들이 애기 잘 때가 제일 예쁘다고 하는데엔 다 이유가 있는 거구나. 오늘에서야 알아버렸다.


루디 +16시간


소스라치게 잠에서 깬다. 꿈은 뒤숭숭 했는데, 이상하리만치 한번도 깨지 않았다. 햇살에 눈을 찌푸리다 놀라서 침대 아래를 본다. 루디는 안전하다. 오히려 신났다. 꼬리를 야무지게 흔들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신기하게도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개들.


루디 +24시간


처음은 무조건 스트레스다. 인생은 시작부터 아름답거나 완벽할 수 없는 현실이다. 24시간 정도 지나니, 패닉이 놀라운게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는다. 좋아하는 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 뭐 하루 이틀 살 것도 아닌데, 조금씩 루디를 알아가며 천천히 가보기로 한다.


우리 개는 SKY 는 안가도 되니까, 착하게 컸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나와 남편을 루디가 좋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상상속의 루디가 아니라 진짜 루디를, 똥도 싸고 낑낑대고 깽깽대고 물귀신처럼 울기도 하는 루디를, 좋아했으면 좋겠습니다.


묵묵히 거실의 펜스를 철거하고 있는 나와 남편을 꼬리를 살랑이며 루디가 지켜본다.


아기 루디가 가능한 신기한 포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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