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약을 주문하느라 컴퓨터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던 중, 약국 출입문에 달아놓은 종이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네~ 어서 오세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부터 했다. 마감시간에 맞춰 주문을 해야 되므로 시선은 아직 모니터에서 떼지 못한 채로. 주문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시선을 돌리니 지팡이를 짚고 온 할아버지 한 분이 서계셨다.
"어르신 뭐 드릴까요?"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 파스나 진통제를 사러 오셨을 거라 지레 짐작하며 말을 건넸다.
"응 내 약은 아니고.. 우리 집사람 약 하나 사가려고. 내가 몸이 이래서 수발하느라 잠도 잘 못 자고 힘들어서 그런지.. 자꾸 다리에 쥐가 난다고 하네. 눈도 한 번씩 떨리고.. 뭘 먹으면 괜찮으려나.."
이야기를 듣고 자세히 보니 할아버지의 왼쪽 팔다리가 부자연스럽게 굳어있었다. 그래서 지팡이를 짚고 오셨던 것이다.
"아 그러시구나.. 쥐도 나고 눈도 떨리시면.. 마그네슘이 들어있는 혈액순환제가 도움이 될 거예요. 이게 두 달분인데 아침저녁으로 한알씩 드셔보시라고 하세요."
"먹으면 좀 좋아지겠지? 내가 풍이 와서 쓰러지는 바람에 몸이 이래. 내가 이러니 우리 집사람이 고생이지 뭐.."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카운터에 잠시 기대놓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며 말씀하셨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그 동작마저 힘겨워보였다. 계산을 하고 약을 종이 가방에 넣어서 드리려던 찰나, 기대놓았던 지팡이가 미끄러져 바닥에 쓰러졌다.
"아이쿠 이게 또..."
할아버지가 곤란해하며 지팡이를 잡으려 엉거주춤하셨다.
"어르신 제가 잡아드릴게요."
재빨리 밖으로 나가 바닥에 쓰러진 지팡이를 잡아서 손에 쥐어드렸다.
"고마워. 먹고 좋다 하면 내가 또 사러 올게."
"네~ 조심해서 가세요."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위해 문을 열어드리며 배웅했다.
지팡이에 의지하며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어림잡아 70, 어쩌면 80도 넘은 연세인 것 같았는데 아픈 몸으로 지팡이를 짚고 할머니 약을 사러 오신 할아버지. 아픈 자신을 수발하느라 힘든 아내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느껴졌다.
'결혼해 봐야 좋은 건 잠깐이야, 고생길이 펼쳐지는 거지,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게 훨씬 나아'
대부분의 결혼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솔직히 100% 결혼 예찬론자는 본 적이 없다. 결혼 생활에 비교적 만족하는 친구조차 미혼인 나에게 적극적으로 결혼을 권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좋은 점이 있으면 힘든 점도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결혼 생활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서로를 위해주고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런 배우자와 함께라면, 결혼 생활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두 분이 어떻게 만나 어떤 결혼 생활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생동안 딱 저 정도의 마음으로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사셨으면 좋겠다고.
할아버지가 사가신건 약이지만 할머니는 그 속에 담긴 남편의 마음을 알 것이다. 부디 남편의 마음이 담긴 약 덕분에 할머니도 나으시고 할아버지도 건강하시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