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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Sep 30. 2020

기독교와 무속신앙
그리고 코로나 19

결혼 준비 할 때 가장 먼저 결정하는 것은?

결혼 결심 후, 결혼 준비할 때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대망의 ‘Wedding day’, 결혼식 날짜다. 골인 지점이 정해져야 거기까지 달려갈 계획을 세울 수 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 웨딩홀이나 스드메 상담을 받으러 가도 신랑, 신부 이름과 함께 결혼식 날짜와 시간부터 묻는다. 


나는 매우 용의주도한 사람이라 결혼을 결심하고 연애 500일째인 2019년 10월 10일에 프러포즈를 했다. 정확히 365일 뒤에 결혼식을 올리자며, 결혼식 날에 마실 와인까지 준비해 시계와 함께 건넸더랬다. 2020년 10월 10일, 날씨 좋은 가을의 토요일. 20201010으로 외우기도 쉽고, 전날인 10월 9일이 공휴일이어서 바다 건너 올 하객들도 부담이 덜할 것 같고 제주도 풍습인 전날 잔치(신랑이나 신부의 본가 근처에서 진행하는 사전 피로연)를 위해 소중한 연차를 소진하지 않아도 되는 등 여러 가지로 매력적인 날짜였다. 


요즘 결혼식 날짜를 이렇게 당사자 두 사람에게 의미 있는 날로 정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식 결혼에서 양가 부모님, 다시 말해 혼주의 의견을 배제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다행히 프러포즈 후 첫인사를 드리며 내 맘대로 정한 10월 10일은 어떤지 의견을 물었을 때 양가 모두 동의해 주셔서 무사히 날짜를 확정 지을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순조롭게 끝났다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거다. 날짜를 정하고 이것저것 알아보던 평화로운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예비 시가에서 결혼식 날짜를 2020년이 아닌 2021년으로 미루면 안 되겠냐는 의견을 전해 온 것이었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예비 시어머니가 아주 용한 누군가에게 뭔가를 보고 오셨는데 우리가 2020년에 결혼하면 아주 안 좋다는 것이다. 아주. 


‘요즘 같은 시대에 사주궁합이라니!’, ‘이미 결정하고 동의하셨으면서 왜 그런 걸 보고 오신 거냐’고 울분을 토해봤지만 어머니와 일전을 치르고 온 그를 더 괴롭히기도 안쓰러웠다. 


결국 공은 우리 부모님께로 넘어갔다. 이해를 위해 잠시 TMI를 덧붙이면 우리 어머니는 신학대학을 나와 전도사 안수까지 받은 그야말로 신실한 기독교인이다. 종교인이 되려고 한 것은 아니고 개인적인 신앙의 열심 때문에 공부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되신 분이다. 



이런 우리 엄마가 ‘시어머니 되실 분이 뭔가를 보고 왔는데 2020년은 어쨌든 둘에게 좋지 않다고 해서’ 결혼을 미루자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엄마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조심스럽게 2021년은 어떨지 물어보자 엄마는 의외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소환하는 ‘주님’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좋은 일은 마가 끼기 전에 해치워야 하고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며 무속 신앙에 어울리는 미신으로 답하셨다. 덧붙여 ‘보통날은 여자 쪽에서 정하지 않느냐’며 해묵은 전통까지 끌어 오셨다. 이렇게 난처할 데가. 


과거에도 혼인의 첫 단계는 중매쟁이가 양쪽에 혼인의 의사를 물어 정혼한 후, 신랑의 사주를 적은 사주단자를 신부 댁에 보내 택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제 시작하는 부부가 탈 없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좋은 날을 가려 정하는 마음이야 무엇이 나쁘겠는가. 누군가는 그 날짜를 음양오행과 사주팔자를 따져 정하고 싶을 뿐이고 또 누군가는 하늘에 계신 그분의 뜻에 따르고 싶을 뿐이다.


물론, 나로 말하자면 혼주의 의견이 0순위 수준으로 중요한 한국식 결혼이 굉장히 불편하고 당사자인 두 사람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 모두가 편안한 마음으로 결혼식에 오기를 바라 프러포즈 날짜까지 맞춰가며 야심 차게 그려 보았던 큰 그림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야외 웨딩이나 웨딩홀은 나 좋을 대로 하도록 예비 시댁에서 배려해 주셨으니 결혼 시기는 양보해달라고 엄마를 설득했다. 딸을 사랑하고 딸의 행복을 바라는 엄마는 결국 승낙했고 결혼식은 2021년 5월 1일에 하기로 결정됐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맞아떨어진 것일까. 1년 가까이 예식을 미룬 덕분에 코로나 19로 급격히 혼란스러워진 시기에 본식을 치르는 것은 피하게 됐다. 어쩌면 21년 5월 1일에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그래도 당장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된다. 또 그때쯤 웨딩 업계도 코로나에 대한 경험치가 쌓이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도 있고. 


설득과 타협, 선택의 연속인 결혼. 내 나름 가꿔 왔던 결혼에 대한 로망과 기대들이 현실의 벽과 누군가의 반대에 부딪혀 무너지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결혼의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만족시키기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결혼의 당사자인 예비부부라지만, 내가 한 발 물러설 수 있는 일이라면 선뜻 양보하는 것도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과 사랑하는 그의 부모님을 행복하게 하는 일 아닐까 싶다. 


천지신명-또는 하늘에 계신 그분-이시여. 듣고 있나요? 코로나 19라는 강적과 싸우며 로망을 내려놓고 양가를 조율하느라 더욱 애쓰고 있는 신랑 신부들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옵소서. 코로나 19를 없애 주면 더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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