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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an 29. 2021

저녁 설거지는 제 담당이거든요

소중한 사람을 위해 오늘 작은 일이라도 실천해 보세요

집에 가면 도시락은 제가 씻어요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코로나 신규 확진자 현황이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난 여전히 아내가 싸주는 도시락을 먹고 있다. 아내가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준 지 벌써 두 달이 되었다. 도시락 비용으로 책정되었던 금액은 이천 원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도시락'이라는 글을 올리고 읽었던 많은 분들의 원성(?)이 깃든 감사한 댓글과 매일 아침 나를 위해 도시락을 싸는 아내의 정성을 감안해 도시락 가격을 대폭 인상했다. 자그마치 백 퍼센트.


  하루에 4천 원, 일주일이면 2만 원!!!


게다가 아내의 정성스러운 도시락을 맛있게 먹고 있어서 첫 달은 그 고마움을 담아 2 만원의 보너스를 추가로 지급했다. 무려 10 만원의 돈을 내 급여일에 맞춰 아내에게 내밀었다.


 "영희 씨, 여기 이번 달 도시락 값이에요"

 "벌써 한 달이 된 거예요?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싼 보람이 생기네요. 그런데 이렇게나 많이요?"

 "10 만원이에요. 도시락 값은 4 천 원으로 계산해서 한 달 비용 8 만원에 첫 달은 내 마음까지 2 만원 더 넣었어요"

 "이렇게나 많이 줄 필요 없는데. 용돈이 너무 줄어드는 거 아니에요?"


아내의 입에서는 과하다며 거절 의사를 표했지만 아내의 손은 말과는 다르게 어느새 돈을 받아 들었다. 이렇게 도시락 값을 받은 아내는 한 동안은 조금 더 의욕적으로 도시락 반찬을 고민하고, 준비했다. 아내의 이런 수고로 내 도시락은 조금 더 풍성해졌고, 가끔은 학창 시절 점심시간을 기다리던 십 대 때 마음이 들기도 했다. 종종 사무실에 앉아 점심시간에 도시락 먹을 즐거움을 꾹꾹 눌러가며 참는 날 의식할 때마다 조금은 멋쩍어져 혼자 웃고는 했다.


하지만 내가 조금 간과했던 사실이 있었다. 그건 바로 도시락을 싸줄 아내의 지구력이었다. 요즘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있어서, 아내가 도시락을 쌀 일이 없었다. 도시락을 쌀 일이 없다는 건 도시락 반찬의 다양성을 꾸준히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게 현실이다.


매번 주말 마트에서 장을 볼 때마다 아내는 고민이 깊어갔다. 나는 같은 반찬을 며칠 싸가도 크게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나와 생각이 달랐다. 한 번 도시락을 싸기 위한 반찬 가짓수는 적어도 3~4가지 이상이었고, 많을 때는 다섯 가지의 다양한 반찬을 싸줬다. 아내의 반찬 레퍼토리는 처음 한 달간은 문제없이 순환됐다. 하지만 두 달이 접어들 때쯤 아내는 추가적인 반찬 조리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아내를 위해 난 새로운 솔루션을 제안했다.


 "영희 씨, 매일 같은 반찬을 싸줘도 난 괜찮아요. 반찬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요"

 "어떻게 그래요. 매일은 힘들어도 2~3일에 한 번씩은 반찬을 새로 해야죠"

 "영희 씨, 그럼 내가 퇴근길에 반찬 가게에 들러서 도시락에 쌀 반찬 몇 가지 사갈게요"

 "정말요? 철수 씨~~,  고마워요. 혹시 그런다고 도시락 값 깎는 건 아니죠?"


아내는 새로운 솔루션에 만족해했고, 도시락에 싸는 반찬 한, 두 가지는 종종 반찬가게의 도움을 받고 있다. 물론 아내가 해주는 반찬이 훨씬 건강하고, 맛있지만 그래도 아내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난 이렇게라도 아내를 챙긴다.


https://brunch.co.kr/@cooljhjung/320



오늘도 난 아내가 싸 준 도시락을 맛있게, 잔반 없이 완벽하게 클리어했다. 식사를 마치고 먹었던 도시락을 정리하고 있는데 가끔 도시락을 싸 오는 회사 동료가 지나가며 한 마디 했다. 보아하니 그 동료도 오늘 도시락을 먹었고, 자신이 먹은 도시락을 설거지하기 위해 탕비실로 가는 듯 보였다.


 "김 부장님,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

 "네, 홍 부장도 오늘 도시락을 먹었나 봐요"

 "예~, 그런데 김 부장님은 드신 도시락 씻지 않고 그냥 가져가세요"

 "네, 전 버릴 잔반이나 국물이 없으면 그냥 가져가요"

 "역시 부장님은 도시락을 돈을 내고 드시니 집에서 대우가 다르시구나. 전 안 씻고 가져가면 아내한테 잔소리를 바가지로 듣거든요"

 "아닌데요, 전 집에 가면 도시락 제가 씻기 때문에 그냥 가져가요. 어차피 저녁 설거지 담당이 저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고마움의 표현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평소에 하는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전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등의 예쁜 말들을 마음에만 담아두지 말고 입 밖으로 표현만 하면 된다. 어느 광고 카피에 있는 말같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지극히 드문 경우다. 말하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혹시나 알아도 모른 채 하고 싶을 때가 더 많다. 자주 표현하고, 행동해야만 서로에 대한 배려도 깊어지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도 더 커질 것이다. 아주 사소한 가사 분담이라도 나누면 힘이 되고, 서로에게 의지가 된다. 이런 마음이 커지면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더 커지지 않을까. 


남편들이여, 오늘 저녁 아내를 위해 팔 걷어붙이고 설거지를 해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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