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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pr 07. 2021

회의 중에 팀원 메신저에서 내 험담을 엿봤다

회의실에서 다른 사람들은 웃었지만 난 웃지 못했다

오늘 아침 SNS를 둘러보다가 업무상 화상 회의에서 실수한 실수담을 올린 글과 채팅방 캡처 사진을 봤다.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화면 밝기를 조절해 달라고 발표자에게 전달하려던 메시지를 발기를 조절해 달라고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한참을 웃고 나서 내게도 이런 메신저 때문에 곤란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직접적으로 실수한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난 그 사건의 불편했었던 피해자였고, 실수를 한 가해자 또한 한 동안 날 편하게 대하지 못했던 일이다.


십여 년 전 과거 직장을 다닐 때 일이다. 다니던 직장이 보안 회사고, 맡고 있던 직책이 팀장이다 보니 업무 일과의 상당 부분 이슈 회의 참석이 많았다. 사건의 그날도 팀에서 진행 중인 사업 이슈로 인해서 관련 부서의 담당자들이 대부분 회의에 참석해 이슈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 주관부서인 우리 팀의 리더인 내가 먼저 회의 안건에 대해서 얘기했고, 팀원 중 프로젝트 리더를 맡고 있는 최 대리가 전반적인 사업 진행 상황 및 이슈에 대한 고객의 클레임을 발표했다. 최 대리는 사전에 미리 준비된 자료를 빔 프로젝트를 이용해 스크린에 띄워놓고 발표를 진행했다.


최대리의 발표는 10여분을 그렇게 계속되었고, 발표 중간에 특별한 질문이나 이견이 없어서 끊김 없이 진행되었다. 한참을 발표하던 최대리가 고객 클레임 관련 이슈 안건에 대한 설명을 할 때에는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더욱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발표 내용 중 가장 핵심 부분에 대한 고객 요구사항이고, 직접적으로 업무 여부나 방향 등을 결정할 부분이라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대리의 발표가 계속되던 중 갑자기 윈도 하단 프로그램 새창이 열리면서 깜빡되었고, 스크린 우측 하단에 메시지 창이 팝업 되면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PC에서 카톡 새 메시지가 뜰 때와 동일하게)


최 대리 발표에 회의실에 모인 모든 시선은 스크린에 몰려있었고, 본부장 포함 많은 사람들이 메시지 내용을 보며 일순간 모두 당황했다. 그중에서도 물론 발표를 하던 최 대리가 가장 놀라  당황했고 급하게 마우스를 컨트롤하려던 최대리는 손이 미끄러져 그만 마우스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팀장 도대체 왜 그러냐. 고객사 지원중인 직원들에 대해 배려가 전혀 없어'
'그걸 오늘 굳이 메일로 정리해서 받아야겠냐고'


마우스를 줍던 최 대리는 더욱 허둥지둥되며 마우스를 움직여 메신저 로그아웃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당황한 나머지 메신저 창을 제대로 활성화해버리고 말았다. 큰 스크린 전체가 메신저 창으로 온통 뒤덮였고, 답을 안 하고 있던 최대리가 괘씸했던지 메시지를 보내던 홍 대리는 자신의 메시지에 답하지 않는 최대리를 향해 결정타를 날렸다.


'야이 씨, 왜 답이 없어. 너 팀장 두둔하는 거야? 이 배신자야'


그 창을 최종적으로 보고 나서 회의실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도 들렸고, 영업 대표였던 박 차장은 조금은 분위기를 바꿀 겸 내게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다.


 "김 팀장님, 팀 애들 너무 잡는 거 아냐? 애들이 불쌍하네. 좀 살살해"


본부장, 영업 대표, 개발 팀장 등 회의실에 모인 10여 명에 가까운 사람은 이런 기막히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는 메신저의 내용을 봤고, 과장된 사실에 동화되어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쓸데없는 소문에 까지 날 휩쓸리게 했다. 난 잠시 쉬었다 회의 진행을 하자고 얘기하고서는 최 대리를 조용히 불러 얘기했다.


 "최 대리, 홍 대리에게 회의 중이라고 메신저 보내. 그리고 다음부터는 회의 들어올 때는 메신저 로그아웃하고"


최 대리는 지금 상황에 많이 당황하고, 불안해했지만 난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 테니 발표 잘하라고 말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업무상 팀원들 의견이 필요해서 전날 요청했던 메일 때문에 그렇게 불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사업 진행으로 파견 나가 있는 직원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내가 없는 자리의 이면을 본 듯해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잠깐이지만 끊었던 담배 생각이 나는 하루였다.


어떤 순간에서나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여러 번 생각하면 문제 되지 않을 상황이 경솔하고, 지나치게 빨랐던 실행력으로 간혹 큰 문제를 야기할 때가 많다. 오늘도 팀 채팅을 통해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톡 방에는 본부장을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이 채팅을 하고 있었고, 오늘 점심 회식을 위해 시간과 장소 관련 메시지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채팅 창에서 본부장 관련 불만 섞인 이야기를 한 팀원이 했고, 구체적이지는 않았지만 그 불만에 조금은 공감 섞인 메시지를 나도 보냈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조금은 '싸~한' 기분이 들어 뒤를 보니 톡 방에 들어와 있는 팀원 한 명과 본부장은 업무 관련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생각지도 못하게 그의 위치는 그 톡방에 들어와 있는 팀원의 PC 정면이었다. 아마도 톡 메시지가 PC 우측 하단에 들락날락하는 걸 본 듯싶었다. 아차 했지만 이미 후회는 늦었다. 나도 당해봐서 알면서 같은 실수를 내가 할 줄이야. 조심해서 나쁠 게 없는데. 역시 사람 없는 자리를 더 조심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오늘도 또 그렇게 후회가 앞서는 하루가 돼버렸다. 예전 피해자였던 내가 오늘은 어설픈 가해자가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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