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의 말로 말하는가
등장인물
소크라테스: 고대 아테네의 철학자, 문답법과 이성적 탐구의 대가
푸코: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해부한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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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한 허름한 시장 골목. 젊은 제자들과 문답을 나누던 소크라테스 앞에,
검은 코트를 입은 한 인물이 다가온다. 낯선 외모. 예리한 눈빛. 그는 묻지 않았다. 대신 속삭이듯 말했다.
푸코: 선생님, 실례합니다. 그런데 혹시... 지금 하신 말씀은 정말 선생님의 말씀이신가요?
소크라테스 (미소를 머금으며): 오, 자네는 누군가? 이름도 말하지 않고 갑자기 질문부터 던지는 걸 보니 제법 흥미로운 청년일세.
그래, 내가 말한 것이 내 말이 아니라면 누구의 말이라 보는가?
푸코 (공손히): 저는 푸코라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왔습니다. 제 질문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과연 자신만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쓰는 단어, 사고, 표현들은 사실 이미 사회가 정해놓은 틀 아닐까요?
소크라테스: 흐음, 자네 말은 곱씹어볼 만하군.
그렇다면 자네는 진실이나 정의 같은 개념도, 그런 틀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보는 게로군?
푸코: 예, 선생님. 진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권력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말은 말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광인이나 노예, 여성, 식민지 사람들은 말하고 싶어도
사회가 그들의 말 자체를 '말'로 받아들이지 않거든요.
소크라테스: 그래, 확실히 이 세상은 어떤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지.
하지만 나는 그저 계속 묻고 또 물었을 뿐이네. 내가 진실을 안다고 말한 적은 없었지.
'나는 모른다'라고 선언함으로써 대화를 열었네.
푸코: 선생님의 겸손함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묻는 그 방식조차도 당시의 이성, 논리, 남성 중심의 세계 안에서 허용된 형식이었습니다.
누가 말할 수 있고, 어떤 말이 말로 여겨지는가는 사회가 권력을 통해 결정하는 것 아닐까요?
소크라테스: 그 말도 일리가 있네. 내가 입을 연 자리가 허용된 무대였다고 한다면,
무대 바깥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주었는가, 그런 질문이겠지.
푸코: 예, 그것이 제가 연구하고자 했던 '담론'입니다. 담론은 단순한 말의 나열이 아니라,
사회가 허락한 언어의 구조입니다.
그 구조는 권력과 지식이 얽혀 있고, 어떤 말은 구조 속에 들어갈 수조차 없습니다.
소크라테스: 음… 자네 말은 철학이라는 배도 항구에 정박된 채로 특정한 바다만을 맴돈다고 보는 것이군.
그러면 자네는 철학을 떠나는가?
푸코: 아닙니다. 오히려 철학의 출발선을 다시 그려보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계보학'이라는 방식을 씁니다. 개념의 탄생과 흐름을 따라가며,
그 개념들이 어떤 권력 구조 속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추적하지요.
소크라테스: 자네 방식은 내가 따르던 방식과 다르지만, 내가 모른다 말하며 묻고 또 묻는 삶과
어딘가 닮아 있구려. 다른 배를 타고 다른 바다로 나아가되, 같은 별을 바라보는 셈일지도 모르지.
푸코 (존경을 담아): 저는 선생님처럼 정의나 진리를 믿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믿게 되었는지는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보다는 '말할 수 있음'을, 진실보다는 '진실이 되는 조건'을 묻습니다.
소크라테스 (고개를 끄덕이며): 훌륭하군. 자네는 해답을 주려 하지 않고, 눈을 뜨게 하려는군.
그 점에서 자네도 참된 철학자라 할 수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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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금 말하고 있는 그 언어는 정말 ‘당신의 것’인가?
어떤 말은 말로 인정되지 않는 사회 구조 속에서, 침묵은 종종 강요된 것이다.
말할 수 있는 자유는, ‘말해도 된다고 승인된 구조’ 속에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