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모든 형상은 허망하다

『금강경, 마음을 벼리고 세계를 비추다』

by 이안


"범소유상 개시허망."
“무릇 형상 있는 모든 것은 허망하니라.”


『금강경(金剛經)』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이 짧은 한 문장은 처음엔 다소 낯설고 철학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단지 경전의 격언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눈을 송두리째 바꾸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매일 ‘형상(相)’ 속에서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고,
지위와 학벌로 사람을 구분하고,
내가 가진 소유와 타인의 성취를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금강경』은 말합니다.
“그 모든 형상은 허망하다.”
즉,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 말로 표현되는 성과, 사회적 타이틀…
이 모든 것에 집착해서는
진짜 삶의 본질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형상(相)은 진실이 아니라, 그림자일 뿐이다


우리가 보는 세상의 대부분은
결국 인식된 ‘모양’ 일뿐입니다.
사람의 겉모습, 말투, 직업, 성격…
이것은 마치 수면 위에 떠오른 그림자와도 같습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相(상)”이란
단지 시각적인 형상만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형성되는 모든 고정된 틀과 관념을 포함합니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나는 이런 성격이니까 절대 못 바꿔.”
“인생은 돈이 전부야.”


이런 말들은 모두
‘상’에 사로잡힌 판단입니다.

금강경은 이 모든 ‘상’을 가리켜
“허망하다”라고 선언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무엇도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상황도, 감정도, 관계도
끊임없이 흐르고 변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이것은 이래야만 해’라고 고정시키고 싶어 합니다.

바로 그 집착에서
고통이 비롯됩니다.


허망하다는 건 부정이 아니라, 자유의 시작


‘허망하다’는 말에 괜히 마음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럼 다 의미 없다는 건가요?”
“사랑도, 노력도, 꿈도 다 헛된 건가요?”

하지만 금강경의 뜻은 그런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허망하다’는 말은
“고정된 실체로 보지 말라”는 뜻이지,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게 맞습니다.
“형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사랑도 흐르고,
관계도 자라거나 멀어지며,
나 자신도 날마다 바뀝니다.
그 흐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붙잡으려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자유’입니다.


일상 속에서 금강경을 실천한다는 것


『금강경』은 단지 암송하는 책이 아닙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속 상(相)을 깎아내는 수행의 도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상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판단하기 전에 한 템포 멈추기

“저 사람은 왜 저래?”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
‘지금 내가 본 건 전부일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


과거의 나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기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그 틀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새롭게 관찰해 보는 것.


상대의 말과 행동 너머를 느껴보기

눈에 보이는 말투, 태도, 실수에만 집중하지 말고,
그 뒤에 숨어 있을 마음의 흐름을 느껴보는 것.


소유나 업적에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기

“내가 이걸 이루었으니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런 고정된 자아관에서 벗어나,
모든 것도 인연 따라 흘러가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이런 작고 반복적인 실천이
바로 『금강경』의 가르침을 살아내는 방식입니다.


형상을 넘어서 마음을 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비교하고 분별하며 살아왔습니다.
이건 예쁘다, 저건 못생겼다.
이건 성공이다, 저건 실패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형상’의 틀 안에 가두고,
스스로도 그 틀에 자신을 밀어 넣어왔습니다.


그러나 『금강경』은 말합니다.
“그 모든 형상은 허망하다.”
그러니 형상 너머의 진실,
즉 공하고 자유로운 본래의 마음을 보라고.


그 마음은
소유보다 존재를 더 소중히 여기고,
성과보다 관계를 더 깊이 바라보며,
모양보다 진심을 먼저 읽어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보살(菩薩)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금강경의 또 다른 핵심,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
‘어디에도 머무르지 말고 그 마음을 일으켜라’는 가르침을
현대인의 삶 속 실천과 연결하여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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