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피해자의 편인가, 권력의 무기인가?

장애인권법센터 참고인 진술에 대한 비판적 논평

by 이안

검찰의 본질을 ‘수사통제’라며 미화하는가?


진술자는 검찰의 핵심 기능이 ‘수사통제’에 있으며, 경찰의 사건을 보완해 기소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지난 수십 년 동안 검찰은 민생사건에 무관심했으며, 오히려 권력형 비리 수사에서는 정권의 필요에 따라 선택적 수사, 표적 수사, 기획 수사를 해 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정권과 대립했다는 이미지를 기반으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자신이 이끌던 검찰을 통해 정적을 겨누는 칼날로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재명 대표 수사를 위해 120명이 넘는 검사와 수사관을 동원하는 것은 단지 수사 통제가 아닌 권력형 검찰 정치의 집약체입니다.


검찰이 ‘공익적 기능’ 운운하기 이전에, 그들이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했는지부터 물어야 합니다. 기소는커녕 수사조차 하지 않거나, 수사 방식을 왜곡해 온 수많은 사례들이 국민의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이 점에서 검찰을 제어하는 입법을 ‘퇴학’에 비유하며 정서적 설득을 시도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낭만화한 것입니다.


수사·기소 분리는 헌법정신의 구현이다


진술자는 “수사·기소 분리론은 검찰의 수사 개시권에만 해당된다”며, 보완수사까지 막는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검찰의 구조적 권한 남용을 간과한 것입니다. 수사 단계에서 이미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검사의 손에 사건이 들어가는 순간, 공정한 기소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수많은 역사적 사례가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수사권이 없는 기소권만 가진 기관이라야 비로소 수사로부터 독립된 법적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검사는 법률가’라는 형식 논리로 검찰이 기소권과 함께 보완수사까지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실질적으로 검찰에게 수사-기소의 연속성과 주도권을 부여하자는 뜻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는 검찰이 기소율 99%를 자랑하며, 사실상 ‘기소=유죄’로 이어지는 구조를 방치하게 만듭니다. 피해자와 피의자 모두에게 불공정한 결과를 낳는 구조입니다.


검찰의 자정 실패는 역사로 입증됐다


진술자는 검찰 내부의 문제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전체 조직을 해체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역사에서 검찰 스스로 변화하거나, 자정한 사례는 전무에 가깝습니다. 고위직 인사 라인을 통한 수뇌부 교체는 오히려 정권과 검찰의 유착을 더 강화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 검찰개혁 시도가 있었지만, 오히려 검찰은 이를 조직 보존의 논리로 전환하며 정치 개입을 본격화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찰개혁에 반발하며 정치로 직행했고, 이후 검찰은 대통령의 친위대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검사는 로스쿨을 나와 법무연수원을 거쳤으니 전문성이 높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과 괴리된 자격 엘리트주의입니다. 고시를 통과한 엘리트들이 서민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왜 검찰권이 가장 강할 때 서민 인권침해가 반복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복잡한 절차의 책임은 검찰이 만든 사법 불신 때문이다


진술자는 중수청과 국가수사심의위 신설이 서민에게 복잡함과 혼란을 가져온다고 주장하지만, 그 혼란의 원인은 오히려 검찰 중심의 수직적 사법체계 때문입니다.


국민은 지금도 수사단계에서 불신을 겪습니다. 불기소 이유는 설명되지 않고, 경찰의 불송치에 이의신청을 해도 “검찰이 기소할 의지가 없다”는 이유로 사건은 묻히고, 피해자는 좌절합니다.


복잡한 절차는 견제 장치이며, 검찰처럼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는 조직을 두는 것보다 낫습니다. 국회는 바로 이 지점에서 더 정교한 설계와 감시 기능을 만들어야 합니다. 검찰의 견제 없는 권한 집중보다 복잡하더라도 민주적 감시 구조가 훨씬 정의롭습니다.


결론: 검찰의 문제는 '기능'이 아니라 '권력화'다


검찰은 권력의 도구로 활용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정치적 무기로 삼았고, 정치검찰은 그 기대에 부응해 정적 수사, 조작 의혹, 편파 기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기능을 조정하면 된다’는 온건한 목소리는 현실을 오도합니다. 검찰이 국민을 위한다는 전제 자체가 무너진 현실에서, ‘보완적 역할’ 운운하는 언어는 오히려 권력의 감시를 방해하는 논리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검찰은 피해자의 편이 아니라, 힘 있는 자의 편에서 피해자를 외면해 온 존재였습니다. 진술자는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해지면 피해자들이 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고 우려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복잡한 절차의 책임이 제도 설계가 아닌, 검찰 개혁 자체에 있다는 식의 잘못된 인과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검찰이 일방적으로 통제해 왔던 수사 구조가 피해자에게 가장 불친절한 시스템이었습니다. 절차를 잘 설계하면, 복잡해도 정의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무아론]23. 모든 존재는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