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종소리가 울리고
수십 명의 아이들이 일제히 교실로 들어섭니다.
손에는 공책, 가슴엔 명찰, 입에서는 침묵.
이곳은 공장이 아닙니다. 하지만 리듬은 공장과 같았습니다.
출석, 차렷, 필기, 칠판, 복창, 암기.
19세기, 학교는 단순한 교육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인간을 제조하는 장치였습니다.
프랑스혁명 이후, 시민은 무지한 백성이 아니라
교육받은 국민이어야 한다는 이상이 등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프랑스, 독일, 영국을 중심으로
의무교육 제도가 확산되었고,
19세기말에는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이
초등 교육을 국가 차원에서 실시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발걸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통제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국가는 교육을 통해 시민을 길들이고,
시간표와 교과 과정을 통해 인간의 사고와 몸을 규격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실은 공장과 닮아 있었습니다.
종소리로 나뉘는 시간,
줄을 맞춰 앉는 책상,
지식이라는 이름의 재료를 입력하고 산출하는 시스템,
그리고 표준화된 평가 방식.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학교와 감옥, 병원, 군대, 공장이
서로 닮아가는 근대의 풍경을 포착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현대는 규율의 시대이며,
학교는 규율을 배우는 첫 실험장이다."
19세기의 교육은 암기와 복창, 반복 학습에 의존했습니다.
교과서는 진리의 책처럼 여겨졌고,
학생은 그것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만 사유할 수 있었습니다.
검은 칠판에 백묵으로 적힌 글자는
세계의 질서를 압축한 것이었고,
노트는 학생이 그 질서를
자기 내부로 복사하는 장치였습니다.
『국민윤리』, 『산술 독본』, 『국사 교과서』는
기억을 통해 국가를 내면화시키는 도구였고,
결석이나 불복종은 체벌로 교정되었습니다.
1875년, 프로이센의 한 초등학교.
선생은 오전 8시 정확히 종을 울립니다.
첫 수업은 성경 구절 읽기,
그다음은 산수와 독일어 철자.
학생들은 선생의 말에 맞춰 소리 내어 책을 읽고,
줄을 맞춰 오른손을 들고 대답합니다.
책상마다 붓펜이 놓여 있고,
노트는 일정한 글씨체로 채워져야 합니다.
한 아이가 질문 없이 고개를 듭니다.
선생은 말없이 다가가 손바닥을 내려칩니다.
교실은 다시 조용해지고,
시간은 흘러갑니다. 규칙대로.
교육은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까요, 복종하게 만들까요?
19세기의 학교는 새로운 인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인간은 사고하는 존재라기보다,
순응하는 존재에 가까웠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질문합니다.
오늘의 교실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표준화된 시험, 서열화된 성적표,
규율에 익숙한 몸.
교육은 오늘, 인간을 어떻게 빚고 있는가?
다음 편에서는 사진과 인쇄술, 영상 기술의 발명과 함께
어떻게 인간의 얼굴과 기억이 보존되고 통제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초상화에서 감시카메라까지,
이미지는 단지 재현이 아닌
새로운 권력이자 시선의 방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