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유의 자유, 혹은 무관심의 윤리"
폐허가 된 도시, 무너진 질서, 총성과 재가 뒤섞인 풍경. 20세기 중엽, 인간은 ‘의미’를 잃은 채 세계 속에 버려졌다. 그 속에서 한 사람은 침묵했고, 다른 한 사람은 불을 지폈다. 카뮈와 사르트르.
그들의 뒤편에 놓인 것은 하나의 소설 — 『이방인』이었다.
"태양 때문이었다."
이 말은 전쟁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존재의 가장 밑바닥에서 나오는 비명이기도 하다. 실존주의는 이 문장에서 철학을 읽었고, 문학은 한 인물을 통해 인간 조건을 그렸다. 『이방인』은 허무의 심연에서 인간을 다시 바라보게 한 소설이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다. 친구의 복수를 돕고, 해변에서 낯선 아랍인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 그는 그것이 잘못인지도, 의미 있는 일인지도 알지 못한 채 법정에 선다. 그의 모든 행동은 '감정 없음'이 아니라, '감각의 분리' 속에서 나온다. 뫼르소는 세상의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그는 타인의 가치와 사회의 정의, 종교의 구원에도 무심하다. 그는 다만 ‘살았다’.
그러나 바로 그 무심함이 사회를 가장 불편하게 만들고, 죽음을 부른다. 그는 '무죄한 죄인'이었고, '부자유 속의 자유인'이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선언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그 자유는 저주다."
그의 언어로 보면, 뫼르소는 모든 선택을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더 급진적으로 선택하고 있다. 그는 도덕도, 사랑도, 구원도 거절하며 존재의 바닥에 도달한다. 이것은 무의미의 승복이 아니라, 의미의 전복이다. 사르트르는 말한다. 뫼르소는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가장 정직한 인간이었다고. 그는 책임지지 않기 위해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책임질 수 없는 세계에 대해 침묵으로 저항한 자라고. 뫼르소는 실존의 끝에 서 있는 자이며, 그 누구보다 철학자에 가까운 인물이다.
뫼르소: 나는 세상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햇빛조차 나를 때렸다.
사르트르: 너는 자유였다. 선택하지 않음조차, 하나의 선택이었다.
카뮈: 그는 반항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세계를 견디려 했다.
뫼르소: 나는 진실을 말한 적이 없다. 다만 거짓말을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사르트르: 그 진실은 사회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아무런 드라마 없는 진실.
화자: 어쩌면 우리는 모두, 태양을 핑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가.
카뮈: 무의미한 세계 속에서도 인간은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 아니, 바로 그래서 인간이다.
뫼르소: 나는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유일한 평등이었다.
사르트르: 자유는 죽음을 안다는 데서 시작된다. 네가 죽음을 본 순간, 너는 모든 것을 초월했다.
카뮈는 『이방인』에 대해 말한다.
“뫼르소는 사형을 선고받은 남자다.
그는 태양 아래 세상과 맞서 싸우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 빛을 견뎌냈을 뿐이다.”
『이방인』은 카뮈 자신의 자전적 고백이자, 부조리한 세계를 통과하는 인간의 초상이다. 알제리에서 태어난 식민 프랑스인으로서, 그는 이중의 타자였다. 뫼르소는 감정이 결여된 인간이 아니라, 세계와 접속할 수 없는 감각의 존재로서 등장한다.
카뮈는 뫼르소를 통해 "의미 없는 세계에 던져진 인간이 어떻게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 실존주의자들은 뫼르소에게 열광했다.
그러나 카뮈는 사르트르와 달랐다. 그는 부조리 앞에서 무의미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거기서도 인간은 연대하고, 사랑하고,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방인』 이후 그는 『페스트』를 썼고, 『시지프 신화』를 통해 부조리의 철학을 명료하게 전개했다. 카뮈는 『이방인』을 통해 말한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으며, 그 자유는 차갑고 아름답다. 그는 인간 존재의 외로움을 사랑했고, 침묵 속의 윤리를 끝까지 믿었다.
『이방인』은 무의미한 세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진실하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묻는,
가장 조용하고도 급진적인 철학적 선언이다.
『동물농장』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 우화 중 하나다. 조지 오웰은 계몽주의와 전체주의, 언어와 권력의 관계를 돼지들의 농장 안에 압축해 넣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자유를 약속한 계몽이 어떻게 폭력과 억압의 체제로 전환되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다음 편에서는 아도르노와 함께 『동물농장』을 읽으며, ‘계몽의 역설’과 ‘전체주의적 인간’이라는 개념을 통해 20세기 전체주의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다음 편: 『동물농장』 × 아도르노 — 계몽의 역설과 전체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