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바다 1화

우리는 예술을 15초 보고, 사진 찍는 데 3분을 쓴다

by 이영남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시작된 이야기


파리 루브르. ‘모나리자’가 걸린 방은

거대한 전쟁터 같다.
사람들은 그림을 향해 팔을 뻗고,

그 손에는 하나같이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붓 터치를 감상하고 있을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5인치 화면 속의 모나리자를 보고 있다.

셔터를 누르고, 셀카를 찍고, 확인하고, 다시 찍는다.
정작 육안으로 그림을 보는 시간은 15초도 되지 않는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건 파리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복궁에서도, 북촌에서도, “핫하다”는 성수동

카페 앞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반복된다.

그림3 copy.jpg <인증샷의 순간>


음식이 나오면 수저보다 스마트폰이 먼저 올라가고,

절경 앞에서도 풍경보다 화면 속 내 얼굴이

잘 나오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다음 문장은 이 시대를 꽤 직설적으로 요약한다.
“오늘날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매일 스마트폰을 꺼낸다.

전화를 걸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이 문장이 불편한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보기’보다 ‘증명’에 더 익숙해졌다는 걸

정확히 찌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진’이 아니라 ‘이미지의 바다’를 만들고 있다

지금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이미지를 생산하는 시대다.

숫자로 보면 조금 과장처럼 들릴 정도다.

스마트폰 사용자는 수십억 명에 가깝고,
이미지는 연간 1조 단위로 찍힌다. 하루로 환산하면

46억 장, 초당 5만 장이 넘는다.

<디지털 이미지의 생산량>


더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2000년 이전 인류가 찍은 모든 사진보다 더 많은 양을,

단 이틀 만에 만들어낸다는 것.

그래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긴다.
이 많은 이미지 중에서, 과연 무엇이 얼마나 살아남을까.




기록에서 퍼포먼스로: 세 번째 물결이 바꾼 것

사진의 역사는 세 번의 큰 물결을 거쳤다.


첫 번째 물결은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
필름값 걱정 없이 찍게 됐지만, 그래도 사진은

‘특별한 순간’을 기록하는 도구였다.


두 번째 물결은 편집의 시대.
사진은 더 이상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더 예쁘고

완벽하게 가공되어야 할 대상이 됐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 물결 한가운데에 서 있다.
스마트폰 혁명이다.

하루 46억 장의 이미지가 쏟아지고,

그중 대부분이 스마트폰으로 찍힌다.
여기서 크게 바뀐 건 ‘화질’이 아니라 ‘목적’이다.


우리는 더 이상 기억하기 위해 찍지 않는다.
보여주기 위해 찍는다.

‘내가 여기에 있었다’를 증명하기 위해,
타인의 관심을 얻기 위해 셔터를 누른다.
이건 기록이 아니라, 퍼포먼스다.




모나리자를 보러 간 게 아니라, ‘모나리자를

보는 나’를 만들러 갔다

루브르의 관람객들은 모나리자를 보러 간 것이 아니라,
‘모나리자를 보고 있는 나’를 연출하러 간다.

경험은 뒷전이고, 경험했다는 증거만이 중요해졌다.


여기서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Aura)’가 떠오른다.
원본만이 가진 고유한 분위기와 감동.

하지만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보는 모나리자에는,

그 아우라가 희미해진다.
남는 것은 데이터와 픽셀, 그리고 “내가 거기 있었다”는 인증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새 이렇게 바뀌었다.
‘보는 사람’이기보다 ‘찍는 사람’이 되었고,
‘경험하는 사람’이기보다 ‘증명하는 사람’이 되었다.




의미의 위기: 넘쳐나는 사진, 줄어드는 기억

사진은 폭발적으로 생산되지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사진은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루 46억 장의 이미지 중 내 기억에 남는 사진은 몇 장인가.
어제 본 수백 장의 피드 중, 지금 떠오르는 게 하나라도 있는가.

이미지는 범람해서 바다를 이뤘는데,
그 바다 속에서 ‘월척’은 오히려 희박해졌다.


이 시리즈 〈이미지의 바다〉는 그 간극을 따라가려 한다.
우리가 만드는 수십억 장의 이미지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흐름을 추적하려 한다.




다음 이야기

다음 화에서는 셀카가 무엇을 바꿔 놓았는지, 그리고

그 대가가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참고자료

루브르 관람에서 “모나리자 평균 15초” 언급 포함(관람 시간이 짧다는 맥락): https://www.huffpost.com/entry/how-long-does-it-take-to-_b_779946 Source


“현재 사진의 대부분이 스마트폰으로 촬영된다”는 연구 인용 보도(스마트폰 비중 맥락): https://petapixel.com/2023/06/20/almost-all-photos-are-now-taken-on-smartphones-according-to-study/ Source


발터 벤야민,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 원문(PDF, 아우라/복제 논의): https://web.mit.edu/allanmc/www/benjamin.pdf Sour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