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은 침묵하는가?

'한 말씀만 하소서' 독후감

by 카피돌이


정리되지 않은 사무실 책상 위에서 찍은 사진

제목 : 한 말씀만 하소서 (박완서 소설전집 15)

지은이 : 박완서

출판사 : 세계사

발매일 : 2005. 11. 15




왜 신은 침묵하는가?


'그대 아직도 꿈꾸는가'와

'한 말씀만 하소서'가 실린 소설집.

내가 존경하는 작가 박완서 님의 글이지만,

'한 말씀만 하소서'는 읽는 내내 불편해서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 까닭은...

박완서 님은 슬하에 4녀 1남,
즉 막내로 외아들을 두셨다.
어떤 자식인들 귀하지 않겠냐마는
막내 외아들에 대한 사랑은 무척 극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섯 자식 중
셋을 서울대, 둘은 연대, 이대에 보냈으니
세상에 이렇게 복많은 사람도 있을까, 하는
부러움을 받기에 충분했다.


막내 외아들은 서울대 의대를 나온 후
마취과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중
1988년 스물 여섯의 나이로 돌연사를 한다...
불과 석 달 전에는 남편도 세상을 떠났는데...

그 애절하고 비통한 심정을
글로 옮긴 것이 '한 말씀만 하소서'이다.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일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식을 먼저 보내 에미의 절규를 읽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두려웠다...

언젠가...
우리 사무실을 청소해주시는 할머님이
며칠을 보이지 않다가 오랜만에 출근을 하셨다.
그런데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며칠 안 보이시던데, 어디 아프세요? 얼굴이 안 좋아 보이세요..."
하고 나는 안부를 물었었다.
그랬더니 할머님은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니
"막내아들이... 죽었어...
그래서 일 치르느라 한동안 못나왔어..."
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순간 멍해지며 아무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위로도 해줄 수가 없었고,
그럴 자신도 없었다.


'한 말씀만 하소서'는 원래 가톨릭 기도문 중 한 구절이다.
그리고 그 구절은 당연히 성서에서 인용되었다.
유대인이 아닌 로마의 백인대장이
중풍 걸린 자신의 종을 고쳐달라며,
예수에게 청한 말에서 연유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굳은 믿음을 상징하는 구절이다.


가톨릭 신자였던 박완서 님도
이 구절이 갖고 있는 의미를 모르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박완서 님은 이 구절을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아들을 뺏어간 신에게 침묵만 하지 말고,
어떤 말이든 좀 해보라고 절규를 한다.
도대체 왜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신이 있다면 살의를 느낀다고까지 고백한다.
종교적 회의를 느끼고 신의 존재를 의심한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예수도 죽기 전 날,
신이 자신을 저버렸다는 절망 속에서
자신에게 내린 잔을 거두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는 순간에는,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하지 않았는가.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도
신의 침묵이 두렵고 답답하고 원망스러웠던 거다.


읽기가 부담되고 불편했던 글은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가면서 빠져들게 만든다.
너무도 인간적인 고백과 절망감,
하늘이 열리는 기적같은 계시가 아닌,
변기 앞에 쪼그려 앉아 토하면서
아주 작은 실마리를 느끼게 된다.
박완서...
그분은 천상 작가일 수밖에 없는 분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누군가 말했다.


신은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고 침묵했던 것이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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