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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Mar 22. 2024

플로리다에서 뉴욕, 1000마일 운전이 준 자신감

 

“지난 1년 뉴욕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말하고 나니, 내게도 사건이 하나쯤은 있었다 싶다. 사건이라는 게 자신에서 비롯하지 않은,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일이라면.     


여행 가면 발품만큼 본다는 생각이라 열심히 다니는 스타일인데, 뉴욕에 여행 왔던 지난해 5월과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나는 단 한 번도 외출하지 않았다. 

“그렇게 유흥 없이 살아도 되나?”

같이 사는 여동생이 딱해했지만,

“지금은 유흥하고 싶지 않네.”

웃으며 대답했다.  

   

2000년 12월 나는 아들이 한국에서 오고, 초등학교 4학년인 꼬맹이가 겨울방학을 맞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큰 놈에게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작은놈에게는 디즈니 월드를, 그리고 나에게는 마음껏 차 몰아볼 수 있는 휴가를 준비해 둔 것이다.     


12월 25일 우리 세 식구는 10월에 예약해 둔 할인 항공권으로 플로리다의 올랜도에 갔다. 공항에서 예약해 둔 렌터카를 찾아 타고, 역시 웹에서 예약한 부엌과 거실 딸린 모텔을 찾아갔다. 그리고 5일을 플로리다에서 잘 보냈다.      


플로리다는 해변의 백사장이 진짜 하얀 모래라 인상적이었고, 디즈니 월드는 아들의 표현대로 놀이시설 자체보다 프로그램의 프로듀싱이 우리나라보다 탁월했다. 그리고 때가 때이기도 했지만, 물가가 호되게 비쌌다.


제부는 내가 뉴욕을 떠나기 전,

“플로리다는 뉴욕과 다르다. 만일 거기서 사람들이 널 불쾌하게 해도 마음에 두지 마라. 뉴욕은 미국이 아니다.”

그러더니, 웬걸, 거기도 미국이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관광객에 올랜도 전체가 미친 것 같았다.     

 

비치에서 토박이인듯한 종업원의 다소간 푸대접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즐거웠다. 미국 와서 처음으로 차 몰아볼 수 있어서. 동생네도 차는 있지만, 내 보험이 올라 있지 않아 그들의 차를 몰지 않았다. 운전 배우고 지난 9년 동안 나는 운전을 거의 놓지 않고 지냈었다. 게다가 차라면 내 둥지쯤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내 차를 서울 사는 동생에게 주고 오면서, 정든 님과 이별한 듯 무던히도 마음 아파했다.

      

12월 30일에는 뉴욕에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28일부터 날씨가 이상해지더니, 태풍의 영향으로 플로리다마저 기온이 곤두박질쳐 반소매 대신 뉴욕의 코트를 입고 다녀야 할 정도가 되었다.

“오, 믿을 수 없어. 플로리다가 이렇게 춥다니.”

코트를 껴입으며 인상을 찌푸리는 할머니들의 비명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고, 끈 나시 원피스를 입고, 열대 음료수를 맛보리라던 내 꿈은 어림도 없었다. 단 하루 수영복 입고 꼬맹이랑 바다에서 모래성을 쌓았구나.

     

30일 뉴욕에 폭설이 내려, 미국 동북부 지방 공항이 모두 폐쇄! 올랜도 공항에는 취소된 표를 다시 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옆줄에서 칭얼대는 어린 딸에게 검은 피부의 엄마는 냉정하게 말했었다. 

“배가 고프건 목이 마르건 네가 라인에 섰을 때는 넌 참고 기다려야 한다!”

아이들은 여전히 디즈니에서 놀고, 혼자 여행기를 수첩에 쓰면서 2시간 서서 기다리다 받은 표는 1월 3일 뉴욕행. 기가 막혔다.     

 

다 끝난 휴가에서 다시 5일을 지내기도 말 안 되었고, 1월 2일엔 큰 놈은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고, 작은놈은 개학이었다.

대체 어찌해야 좋을지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았다. 공항에서 커피와 베이글을 사서 크림치즈를 듬뿍 발라 허기진 배에 한 조각씩 뜯어 넣으며 침착하게 대책을 궁리했다. 당장 이곳엔 잘 방을 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결심했다.     


마침내 나는 30시간 걸려 1,000마일(1,700킬로)을 혼자 운전하여 플로리다에서 뉴욕까지 왔다. 미국 동부 해안을 일주한 것이다. 밥 먹고 자는 시간 제외하고는 운전만 했다. 아들이 곁에서 계속 라디오 음악방송을 틀어 주어서 심심하지 않았다. 


커다란 렌터카가 낯설었는데, 출발하자마자 차가 이상했다. 회사에 전화했더니 데이토나에서 바꾸어 타라는 연락이 왔다.      

‘이런 식으로 데이토나에 와보다니.’

그 유명한 자동차 경주장 곁을 지나며 혼자 쓴웃음 지었다. 

데이토나에 들러 일본차로 바꾸어 타니 비로소 운전이 편해졌다. 끼니때 되면 고속도로 주변에 있는 레스토랑에 내려가 밥 먹고 또 운전했다. 한 곳에서는 랍스터를 먹었는데, 너무 비싸서 아들만 사주고 나는 군침만 흘렸다. 별다른 사건 없이 평탄하게 왔는데, 뉴욕에 들어서니 역시 눈이 많이 쌓였고 길이 엉망이라 고생 좀 했다.   


“연휴에 뭐 했어요?”

“디즈니 월드 갔다가 날씨 때문에 플로리다에서 뉴욕까지 혼자 차 운전하고 왔어요.”

하면 뉴욕 사람들은 잠시 입 벌리며 감탄하다 실실 웃는다.     


이 장거리 운전은 나에게 큰 자신감을 남겼다. 그때는 내 인생 중에서 자신감이 가장 바닥을 칠 때였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였고, 나는 그 위기를 훌륭하게 넘겼다. 그래서 그 자신감으로 좀 더 알차져 가끔 그때가 생각난다.


Pixabay, Michelle Raponi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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