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크, 에쉐르, 마카리오스
구약에서는 '복을 주다', '축복하다'의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바라크'가 많이 등장한다.
바라크(히) - 복을 주다, 축복하다, 무릎을 꿇다, 높이다 / 강조-능동 / 히브리어 명사형으로는 "아쉬레(복수)", "에쉐르(단수)"
바라크는 '무릎을 꿇다'는 기본 의미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바라크에 대한 해석은 신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각자의 관점과 해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모양이다. 또한 복과 관련된 성경 구절을 선택적으로 보면 그 의미가 왜곡될 수 있다.
구약과 신약을 모두 관통하는 맥락을 고려하여 넓은 의미에서 보면, 바라크(복)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셨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렇기에 모든 피조물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복이 끊어졌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복을 주시기 위해, 즉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히브리어 '바라크', '에쉐르'가 신약성서에 와서는 헬라어 '마카리오스'로 번역되는데, 이는 '하늘의 복'을 의미한다. 즉 이 복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구약이 명백히 언급하는 '물질적 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질문하게 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과 땅을 약속하셨고, 신명기에서는 순종의 대가로 이 땅의 풍요와 건강을 약속하신다.
이러한 가시적인 복은 그 자체로 복의 '궁극적 목적'이었다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의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가시적 표징' 이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누리는 땅의 소산과 평안은,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른지를 보여주는 '신호'였다.
또한, 이 땅에서의 복은 장차 임할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안식과 풍요를 미리 맛보게 하는 '그림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가 증명하듯, 그들은 종종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보다 '복이라는 선물' 자체에 집착하는 오류를 범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 이 땅에서부터 구원받은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진정한 복이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이 '복'에 대해 얘기한다. 복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성경은 현실에서의 승진/합격/성공/건강/재정적 풍요로움이 궁극적인 '복'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복된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 그것은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되는 것(구원)이다.
- 그것은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며, 어떠한 상황(성공이든 실패든, 건강이든 질병이든)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