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하지마~~~~~~~
겨우내 내린 눈이 기숙사 뒤뜰에 아직도 하얗게 쌓여있고, 봄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4월의 캐나다 대학 캠퍼스는 학기를 마치기 위해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학생들로 분주하다.
그 일이 있던 날은
Ped Day (Pedagogical Day- 학생들은 학교를 쉬고, 교사들은 연수나 업무를 위한 활동에 참여하는 날) 여서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아 여유 있는 아침을 보냈다.
좁은 기숙사 거실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격자모양의 오래된 창문으로 봄햇살이 들어오고,
나는 주방에서 아침 설거지로 분주했다.
잠시 후 작은 아이의 큰 소리가 들린다.
“돈 카피 미 (Don’t copy me!)”
8살 큰 아이가 5살 먹은 작은 아이를 익살맞은 표정으로 놀리며 작은 아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따라서 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돈 카피 미 (Don’t copy me!)”라고 말한 것 초차도..
약이 오를 때로 오른 작은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나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다.
그렇게 아이들과 씨름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건너편 기숙사에 살고 있는 E에게서 걸려온 것인데 그녀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음을 쏟아냈다.
나는 자초지종을 듣고 아이들에게 외출 준비를 시키고 곧장 E가 있는 학교 캠퍼스로 차를 몰고 갔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학교 카페테리야에서 울고 있는 E에게 다가갔다.
학과 건물(College) 안에는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머리에는 새집이 지어져 있고, 옛날 아버지들이 단정한 헤어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바른 포마드처럼 며칠 동안 감지 않은 머리에는 기름이 번들거리고,
쿠쿱하고 꾀죄죄한 옷차림에 어젯밤에도 벼락치기로 밤을 새워 게슴츠레하게 졸린 눈을 하며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학생들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시험과 리포트 작성으로 학생들 모두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지고, 도서관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공기가 무겁고 차다.
일 년을 마무리하는 기간이라, 한 과목이라도 통과하지 않으면 한 학기가 늘어나게 되고 비싼 학비와 생활비까지 생각하는 유학생들에게는 학기말이 중요하고 신경이 곤두서는 이런 예민한 시기에 E의 남편인 P가 이번학기 학사경고 위기에 있고, 그 이유는 P가 학기말 고사로 낸 리포트 중에 저작권(copy right)에 걸리는 문장을 사용했다는 것과 지금은 담당 교수님의 호출로 학과 몇 교수님들과 사무실에서 이 문제로 미팅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리포트 작성 시에 다른 사람의 인용구를 사용할 때는 인용부호인 작은따옴표나, 따옴표를 사용해야 하는데, P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고, 인용부호를 쓰지 않은 이유는 똑같은 문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과 그리고 누구의 것을 인용해서 쓴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생각을 적었을 뿐이라는 게 P의 주장이었다.
그동안 알고 지낸 P나 E의 성품상 고의적으로 표절이나 저작권에 침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을 성품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P가 결백하다는 주장할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P의 경우는 표절(Plagiarism)및 저작권침해(Copyright infringement)와 모두 관련될 수 있는 민감한 문제였다.
표절(Plagiarism)과 저작권침해(copyright infringement)는 개념이 비슷하지만, 표절(Plagiarism)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표현이나 아이디어를 출처 없이 사용하는 것을 말하며, 직접 인용 시에는 반드시 인용부호를 사용해야 한다. 설령 P 가 사용한 문장이 자신의 생각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원래의 문장과 똑같거나 유사하다면 의도와 상관없이 그것이 표절(Plagiarism)이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저작권(copyright)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 문장을 그대로 복사했느냐가 핵심인 표현방식에 대한 권리를 말한다. 공적인용도(학교 리포트나, 발표등) 이용에 출처표시 없이 그대로 가져온 경우나 인용부호 없이 마치 자기 글처럼 썼다면, 저작권 침해(copyright infringement)의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생각하는 범위에서 같은 문장이 나올 수 있다는 유연성을 두고 한 두 문장 정도 인용이라면 대개 ‘공정이용’ 범위로 간주하기도 한다.
카페테리아에서 울고 있는 E를 달래며, 일의 전말을 듣고 있는 동안 멀리서 P가 고개를 떨구고 입구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
결국 교수님들과의 미팅에서 P의 경우는 그가 사용한 문장의 사용된 양과 맥락을 고려해서 저작권 침해(copyright infringement)는 아니었지만, 표절(Plagiarism)에 해당되어 그 과목은 낙제(Fail)로 처리가 되고, 다음 학기에 다시 듣기로 결정이 났다.
미국에서 비싼 학자금 대출을 받아 온 친구들이라 학비와 생활비가 빠듯한 그들에게 이번 일은 여러모로 힘든 시간이 되었다.
이 일은 우리가 유학생으로 캐나다에 공부하던 20여 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북미에서는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학문적 맥락에서 표절에 대한 명확한 규칙과 처벌이 생겼다. 특히 대학교육이 체계화되면서 논문을 포함한 문서들의 독창성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를 잡았고, 대학에서의 표절(Plagiarism)은 심각한 학문적 부정행위로 간주되었다.
다행히 P의 경우는 단순한 실수로 여겨 학사경고에서 그쳤지만, 처벌수위가 퇴학과 학위취소까지 갈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인지, 혹은 내 생각인지 혼돈될 경우라면 출처를 적는 원칙을 기억하여 예방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P의 경우와는 좀 다르지만, 한국에서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80년대만 해도
사실 저작권 침해(copyright infringement)라는 단어가 지금만큼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학생시절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공테이프에 녹음하는 것이 다반사였으며, 친구들이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나누는 것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시대에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엄연히 저작권 침해였다.
그때는 몰랐다.
소수의 창작자들이 저작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저작권 침해 인식 없이 행동했으며, 법적인 근거도 수립되지 않았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이야기를 해 주거나,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타인의 창작을 존중하고 건강한 창작문화를 지키기 위한 저작권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된 것은 캐나다에서 공부할 때였다.
신입생 때, 한국의 대학 리포트를 쓰는 방식과 북미에서 에세이를 쓰는 방식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돕고 체계적인 접근 방식으로 에세이를 작성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과목을 신청해서 들었다.
인문학 분야에서는 MLA (Modern Language Association) 스타일을 사용하며, 과학 및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주로 APA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형식을 사용한다고 배웠다.
교수님은 완성도 높은 에세이를 쓰기 위한 단계별 가이드를 제시하며, 특별히 에세이에서 표절을 피하고, 자신의 주장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로 뒷받침하기 위해 정확한 출처 인용(citation)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대학교에서 리포트는 앞서 말한 ‘공적인 인용’이기에 단순히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내용을 쓰는 것을 넘어서 타인의 지식과 창작물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며, 이를 지키는 것은 자신의 학문적 성실과 창의성을 보호하는 길이라는 점을 배웠으며, 저작권의 침해는 법적인 책임이 따를 수 있으며, 특히 교육현장에서는 학생들의 양심과 윤리에 근거한 글쓰기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보편적임을 강조했다.
나의 경우에는 저작권(copyright)과 표절(Plagiarism)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서 법적인 책임과 개인의 윤리적 도덕적 차원에서 타인의 지적 자산을 도적질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이 과목을 통해 얻게 되었다.
비록 20년 전 일었지만, P의 사건을 교훈 삼아 나는 지금도 글을 쓸 때 나의 글이 이미 다른 사람들이 쓴 것인지 표절 검사 도구(Plagiarism Inspection Tool)를 활용하거나, 내가 쓰려는 글의 주제에 관련된 많은 자료들을 사전에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나의 이런 경험에 비추어볼 때, 공정하고 창의적인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저작권에 대한 사전교육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며, 동시에 사회 전반에서도 저작권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하려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행히도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의 한국은 저작권 침해와 표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인 보편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법률에 관한 보호도 구축되어 있는 성숙한 상태이이다.
하지만 AI가 등장하면서 글과 그림 등의 창작물이 AI를 통해 생성되다 보니 저작권뿐 아니라 창작에 대한 보호를 위한 숙제를 풀어야 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결국 저작권 침해와 표절의 문제는 다른 사람의 창작과 지적인 재산을 존중할 때 자신의 창작도 보호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각 개인의 도덕성과 책임 그리고 사전 교육을 통한 의식의 변화에 더 기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이들조차도 자신의 행동이나 말을 따라 하는 것이 다툼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교훈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돈 카피 미(Don’t’ copy me!)”
대문사진 출처: Amazon Book 'Don't Copy Me' by Jonathan 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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