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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nerstool Jan 18. 2019

이수정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

[코너스툴 주인책장] 다섯번째

 

 



시알못이 요즘 시를 읽습니다


 

오래 시를 멀리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나를 위축시켰기 때문이려나. 태생이 청개구리인데, 엄마가 시 좀 읽으라고 보채서 그런가. 학교에서 자꾸 함축적 의미나 주제 같은 걸 외우라 하여 질려버렸나. 여튼 시집에는 잘 손이 가질 않았다.

 

시집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책방에서 만난 사람들 덕이었다. 무슨 말인지 잘 알지 못해도 시집 한 권에서 마음에 드는 한 편의 시를 만나면, 또는 한 줄을 만나면 그것으로 족한다는 말. 약속이 있으면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얇은 시집을 펴고 필사를 하는 것을 즐긴다는 말. 같은 제목을 놓고 다른 시를 쓰는 연습을 취미로 한다는 말. 그런 말들이 나를 이끌었다. 무엇보다도 한 책장을 같은 판형의 시집으로 채워놓을 때면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서 뭔가가 들썩였다. 이해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었으나, 잠자던 미감은 기다렸다는 듯 나를 건드렸다.

 

 



 

 


문학동네시인선은 무지개색 순으로 꽂아두는 즐거움이 있다. 최근엔 짙은 초록빛이 멋진 이수정 시인의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를 신나게 읽었다. 그 중에서 '가방'이라는 시는 여럿에게 낭송도 해주었는데. '가방 속 어둠만큼의 미련을/늘/짊어지고 다닌다(p.68)'는 구절은 헤드뱅잉까지 하면서 읽었다. 작고 무거운 가방은 이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크고 헐렁한 백팩만 주구장창 들고다니는데. 책이 두 권, 다이어리가 또 두 권, 필통과 노트, 아이패드와 온갖 하얀 전선을 왕창 넣고 나면 어깨는 금방 힘을 가득 준다. 그 중 외출하여 몇 개나 꺼내는지 모르겠지만, 시인이 말한 '미련' 때문에 그 짓을 하는 것은 확실하고, 앞으로도 당분간 가방은 늘 무거울 예정이다. 미련의 형벌로 아틀라스 못지 않게 고통스러워 하는 매일의 반복.

 

 


이렇게 주절주절 무어라고 적어보았지만, 여전히 시집은 읽는 것보다 책장에 자리한 고운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다. 그렇게 책장을 바라볼 때면 가방도 내려 놓을 수 있고,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된다. 알록달록한 색이나, 가지런한 직선을 바라보는 것으로 족하다. 다시 미감만이 동동 움직인다. 그 힘이 제 할 일을 다하고 고요해지면 이제는 다시 시를 읽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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