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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Feb 26. 2023

옅어져가는 일의 의미

나도 어느덧 직장인 7년차.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애매한 경력을 가지게 되었다.

애매한 경력의 직장인은 어설픈 고민의 공격에 취약하다. 


회사에 있으면 별의별 생각에 빠져든다.

수백개의 고민덩어리들이 내가 굳이 찾지 않았는데도 내 머릿속 문을 두드린다.


1-2년차 시절의 고민과 지금의 고민은 물론 차이가 있지만, 

그때도 지금도 항상 내게 남는 의문점은 있다.


그런 의문점들의 꼬리를 물고 쫓아갈때마다 늘 정답은 찾기 어려웠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딜레마다.






딜레마 :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곤란한 상황



한 분야에서 나름 열심히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내 목소리를 내는 일에도 거부감이 없어지고 있다.

점점 내 권리뿐만 아니라 내 밑의 후배들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일도 적지않게 생기고 있다.


부당한 일에 나서는 것,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 이것은 딜레마가 아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나아지고 고쳐져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 이야기 처럼 들리던 인력감축 이야기도 종종 들렸고, 

휴직으로 비워진 자리는 1년 2년이 지나도 채워지지 않았다.


점점 한계가 오는 것 같았고, 드디어 내가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퇴근길에 내 생각을 늘 정리했고, 정리가 다 된 날 나는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내게 돌아온 해결책은 '야근하라'였다.


나는 너무 벙져서 첫번째 목소리를 낸 날에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인력이 없어 힘들다거나 어려운 것은 그냥 '말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정말로 인력충원을 원한다면 '야근'이라도 해서 행동으로 보여주라고 한다.


어떻게보면 논리적으로 맞는말 같기도 했다.

사람이 2명이나 나갔는데도 시스템은  아무 이상없이 돌아갔고, 나도 많은 야근을 하지 않았다.

그 분의 말대로 나는 '맨날 6시에 칼같이 퇴근하는 애'였고, 

그런 내가 인력충원을 원한다고 한들 누가 믿어주겠는지...


그런데 틀렸다.


2명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내가 야근했던 지난 날들은 이미 다 사람들은 잊었던 것이고

나는 더이상 일의 '질'을 위해서가 아닌 일의 '양'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


수개월 동안 아무리 야근하고 힘들다해도 충원이 안되었기 때문에 

나는 야근보다 칼퇴를 선택했고 내 일의 의미도 무색하게 옅어져만 갔다.


두번째로 나는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목소리를 냈다.


전보다 더 논리적이고 설득력있게, 

무엇보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말했다.


하지만 그날도 어떤 약속도 받지 못했다.

되려 다른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하는데 '맨날 칼퇴하는 너'는 행운이라며 추켜세웠다.


칼퇴한다고 해서 일이 적은 것도 아니고, 야근한다고 해서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 대해 '평가'할 때 야근이라는 잣대로 평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


정말 야근이라도 해서 우리가 너무 어렵고 힘드니 사람을 더 달라고 해야하는건지

아니면 이대로 매일 칼퇴를 하면서 순간순간 일처리만 빠르게 하고 깊이는 들여다보지 않고 다닐 건지


아직도 나는 선택을 못했다. 


머리는 야근이라도 해라, 힘든걸 티를 내라 고 하지만

마음은 이미 실망한 회사 일은 신경 쓰지말고 회사 밖에 일에 집중하자고 한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내 일의 의미는 옅어져가고 있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려는 것이 기업의 목적에 부합하긴 하지만

그런방식으로 운영되는 기업에 내일은 없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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