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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Mar 24. 2020

고기야, 잠시만 안녕.

      민어 스테이크 오븐 구이

나는 육식 파다. 그것도 하루 세끼를 고기만 다 먹으래도 먹을 수 있고, 아침에도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육식 쟁이다.


그러나 체질대로라면 난 사실은 채식을, 채식 만을 해야 한다 (ㅠㅜ). 비건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로 배추, 상추, 치커리, 로메인 등 잎 푸른 채소를 먹어야 하는 체질인 것이다.


그 사실을 오래도록 모르고 지냈던 내가 그걸 알게 된 건 다름 아닌 알레르기 때문이었다. 얼굴과 목에 툭하면 모기가 문 것처럼 빨갛게 부풀어 오르고 가려웠다. 가려우니까 자연스레 손이 가고 나도 모르게 긁다 보면, 그 자리가 감염되어 피부 트러블처럼 변하여 얼굴과 목에 색소 침착되고, 갈수록 피부는 ㅠㅜ.
그래서 잘한다는 병원의 피부과에도 숱하게 다니고 약도 많이 바르고, 많이 먹었다. 그러나 약효는 그때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 스테로이드 제제였을 텐데(..)


그러나 참으로 답답한 인간인 나는, 그러한 알레르기 증상들이 음식 때문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환경 때문일 거라고만 그저 막연히 그렇게만 생각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신선한 공기는 그만두고라도, 햇빛도 한번 쪼이지 못하고 하루 종일 갇혀 있다시피 하는 이 백화점 안의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장에 걸려있는 새 옷들의 염료가 아마도 영향을 주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내 고충을 알게 된 지인이 소개해준 한의원에 가게 되었다. 침은커녕 주사도 엄청 무서워하는 나는, 얼굴에 있는 점도 빼러 가지 못 할 만큼 날카로운  것에 대한 아픔과 공포가 있다. 그래서 소개를 받고도 한 참을 망설이느라 미루고, 미루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드디어 방문.


그곳은  일반인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사상체질보다 더 세분화한 8 체질 의학을 기본으로 하여, 체질 감별 후에 체질에 따른 약과 침 처방으로 진료하는 한의원이었다.  그곳에서의 진료 결과에 의하면 나는 '금양 체질'이라고 했다. 간이 약하고 상대적으로 폐가 강한 그 체질의 특징은, 고기보다는 생선을 먹어야 하고  누구에게나 좋다는 마늘과 버섯도 맞지 않는 식재료라는 걸 알게 되었다. 더구나 채소는 잘 먹지 않는 나였는데 (지금도 고기를 먹을 때도 쌈을 안 싸 먹는다.) 푸른 잎채소를 아니, 채소만 먹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완전히 체질하고 정 반대의 식생활을 나는 너무나 오래도록 해 온 것이다. 어쩌다 비빔밥 한 그릇 먹게 되면, 의도치 않았지만 한 달치 채소를 한 번에 먹었다며 건강식을 한 듯 뿌듯해하던 나였는데, 그렇게 채소 먹을 일이 없던 나였는데...  오랜 기간 맞지 않는 음식만을 먹어온 부작용이 내겐 피부 알레르기였던 것이다.


먹어야 할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할 목록이 적힌 메모지와, 처방대로 지어준  탕약을 들고 돌아왔는데 탕약의 무게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웠다. 메모지를 보니 좋아하는 것은 거의 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고기, 커피를 비롯하여 빵순이인데 밀가루 음식도 그렇고 꿀 사과 배 등... 체질하고는 상관없다고 알았던 홍삼도 먹지 말아야 하고 , 포도도 검정 포도는 안된다고 했으니...

오히려 먹을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지만 내겐 다 허락되질 않는 것이다. 원래 고기 빼고는 식탐이 별로 없는 나였는데 먹지 말라고 하니 이상하게 아쉽다. 하지만 발갛게 달아 오른 내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ㅠㅜ)


우선 지침대로 따르기로 했다. 탕약을 먹는데 주의 사항이 많았다. 약 먹는 동안엔 무도 먹지 말라고 쓰여 있었다. 생전 처음 배추김치만으로 밥을 먹었다 ( 사실 어떤 게 맛있는 건지 잘 모를 만큼,  나는 평소에 김치를 안 먹는다. 심지어 라면 먹을 때도 김치 없이 먹으니까.)
밖에서 점심을 먹게 된 어느 날, 메뉴가 좋아하는 돈가스였다. (사실 싫어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ㅎ) 고기를 먹을 수 없는 나는 밥과 사이드로 나온 세 쪽의 오이랑 채 썬 양배추만 먹었다(ㅠㅜ)  그리고 세상에는 무가 들어가는 음식이 그렇게나 많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식이 요법 하시는 분들 정말 고생 많으시고, 정말 대단하시다.) 먹지 말라고 하는 음식이 그렇게나 곳곳에 포진하고 있을 줄이야...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몇 개월 간 고기를 끊고, 어쩌다 생선과(생선은 다행히 좋아한다. 그러나 냄새 때문에 집에서 조리해 먹기는 정말 어렵다.)  채소만 먹으며 탕약을 먹고 침을 맞았다. 거의 일 년의 시간이 흘렀다. 체질 식대로 먹고 침 맞기를 계속했더니 알레르기는 점차 사라지고, 내 피부는 차분해지며  원래의 색이 돌아오고 점차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드. 디. 어 선생님으로부터 앞으로 체질식을 잘 지키고 몸에 좋지 않은 건 스스로 엄격히 챙기면, 이제 그만 와도 된다고 하셨다. 아자 아자아 이제 침 안 맞아도 된다 ~~!!!

물론 난 체질식을 지킨다. 지킬 것이다. 아니  꼭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이 참 그렇다. 가려움이 없고, 겉 보기에도 말짱하니 간절했던 그 초심이 사라지는 것이다. 처음처럼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지키려고 애썼던 체질식 지키기와 채소 먹기가 점점 어. 려. 웠. 다.

   - 한 점만 먹는 건 괜찮겠지.?
  -  이번 한 번은 먹어도 괜찮겠지..?
  -  수육이니까 괜찮겠지..?

  -  단백질 섭취를 해야 한다잖아

시작이 어렵다고 고기 한 점을 먹기 시작하니 두 번째는 일도 아니었다. 다시 자연스레 고기를 먹고 밀가루 음식을 먹게 되고... 고기를 먹은 날엔 냄새 엄청 심한 가스 분출(ㅋ)에 얼굴이   군데 빨갛게 일어나고 가렵다가  하루 정도 지나면 괜찮아지곤 했다. 그래도 한의원 치료 덕분이었나 보다. 그렇게 지금까지 그럭저럭 몇 년을 버텼는데 그랬는데  요즘 다시, 자주 가렵다.(ㅠㅜ)

없는 모기가 어디서 와서 물고 가는지 가려워서 보면 또 예전처럼 빨갛게 부어있다. 헐.. 어쩔.
- 또 그 아픈 침을 맞기는 싫은데.
- 또 그 이상한 맛의 탕약을 먹기는 싫은데.
- 또 푸른 잎채소만 먹기는 싫은데.

아무래도 당분간은 고기를 좀 자제해야겠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고기, 고기였다. ( 다시 체질식을 해야겠다고 맘을 먹고 금양 체질식을 검색하니 크게 써. 있. 다. 육식을 계속하게 되면 무서운 큰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너무나 무서워서 병명은 생략합니다.ㄷ ㄷ)

그래서 오늘은 체질에 맞는 담백한 민어 구이다. 오래도록 한쪽에 방치시켜뒀던 생선구이 전용 오븐을 꺼내어 잘 닦는다. (앞으로는 애용해야 할 듯하다.) 수평 맞춰 제 자리에 잘 놓아준다.

설치 완료.



자 이제 시작해볼까..!!!


민어 스테이크.
- 두툼한 스테이크용 민어 살에 앞 뒤로 소금  후추  올리브 오일을 뿌려서 재워둔다.
- 베이킹파우더로 깨끗이 씻은 레몬을 슬라이스 하여 둔다.
- 송이버섯을 씻어 밑동을 떼고 그 안에 소금을 한 꼬집 쌀 짝 뿌려준다.

  (버섯을 먹으면 안 되는데 습관처럼 꺼내 들었다. 두 개는 괜찮겠지..? ㅠㅜ)
- 생선에 간이 배었으면
- 생선구이 전용 오븐을 5분 동안 예열해준다.
- 트레이에 밑 간한 민어를 올리고  슬라이스 한 레몬과 송이버섯도 곁들여 준다.
- 예열된 오븐에 넣어주고 타이머를 8분에 맞춰준다.
- 완성을 알리는 타이머 소리와 함께 끝.

간단하게 나를 위한 한 접시 완성~~!!!

당분간 체질식을 잘 지켜보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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