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꽃신이랑 같이...
방 불을 끄고, 촛불을 모두 밝히고
세 곳의 향로에 각각 향을 피운다.
제자가 목에 오방색으로 된 염주를 두르고
손목에도 역시 오방색의 단주를 차고
양손에 날렵하게 북채를 쥐고, 북을 치며
염불을 외운다.
북소리가 커졌다가... 잠시, 잦아들었다가... 한다.
염불소리도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가... 한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제자의 콧등과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히고
북을 치는 양팔이 춤추듯,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얼마가 지났을까...
갑자기 명도동자가
"삐~~~~ ~~ ~ 익 ~ 휘파람을 분다."
잠시 후 촛불이 모두 꺼지더니, 그 하얀 연기가
방안을 온통 휘감는다.
"어서 오세요."
선녀가 옷자락을 왼손으로 잡으며
오른손을 들어 맞이하며 인사한다.
따라서 모두가 인사한다.
" 저를 알아주시고 또 이렇게 저를 불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앳되고도 앳된 가냘프고도 어여쁜 소녀가
고개 숙여 인사한다."
100년 전의 그 소녀다.
그 소녀가 소원암에 왔다.
따뜻한 녹차를 한잔 마시고 잠시
한숨 돌리고 난 후, 소녀의 말은 이렇다.
사고로 죽은, 좋지 않은 죽음이라 선산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그 지역 공동묘지에 묻혔다.
처음엔 원도 많고, 한도 많았으나
그 누구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도 아니었고,
굳이 잘못을 따지자고 하면 본인의 실수였기에
누굴 탓할 수도 없었던 터였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서 시대가 변하였고
소위, 지역이 개발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상가가 들어서고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공동묘지는 누가 쉽게
건드리지 않아서 긴 세월 동안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 비껴갈 수 없었으니.
그 자리에 학교가 들어선다고 한다.
그리하여 묘지를 이장해 가라고 일정 기간 동안
유예를 주고, 공지도 내고 하였으나 무연고 묘지가
많았던 터라 대 다수의 잊힌 많은 묘는
이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소녀는 큰 오빠인 정처사가 혹시라도
나타나줄까... 기다렸지만 고향을 떠난 지 오래인
데다가,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동생을 그것도
공동묘지에 있는 동생을 생각했을 리 없었을 터.
꿈에도 나타나 보고, 언질도 줬지만 도대체가
알아듣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결국엔 오빠의 아들에게 즉 조카에게
언질을 주면 혹여 알아들을까 싶었지만
모두들 헛다리만 짚었고,
괜히 비싼 굿만 하라고 하였으며, 그럼에도
대개는 본인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말을 해도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오직 이곳의 신명님들만이
본인의 존재를 알아보고는 찾아줬고
이렇게 오늘, 불러줬다는 것이다.
하여, 원하는 바가 무엇이냐 물으니
이제 묘지가 없어지고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으니
자신은 시멘트 이래에 가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 영혼이라도 엄마 아버지 곁에
묻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물에
빠질 때 벗겨진 한 짝의 꽃 신과, 아버지가 생전에
본인을 위해 시주셨던 많은 장신구들도 함께.
해서 보니 소녀의 버선발엔, 꽃 신이 한쪽만 신겨져
있었다.
사흘 후, 약속대로 부부는 다시 '소원암'을 찾았고
스님은 이 부부를 맞았다.
전처럼 차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으니
스님 곁에 소녀와, 명도 동자가 함께 와 앉는다.
스님께서 소녀, 즉 여동생의 이야기를 하자
정처사가 까무러치듯 놀란다.
본인조차도 어렸을 때의 일이라 잊고 살았고
좋은 기억이 아니라 잊으려 했더니 진짜 잊게
되었다며, 스님께 말씀드린 적이 없는데 어찌
아시냐며 놀라니 스님 깨서 말씀하신다.
"소승이 진작에 '천안통'이 열려 귀신을 보고
말소리를 듣는지 오래입니다. 계룡산의 있는
제 기도처에서 오랜 수련을 한 덕택이지요."
이러저러한 상황 설명을 하고
소녀의 부탁을 전하니
정처 사는 동생의 묘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한다, 옆에 있던 명도동자가 찾아 줄 테니
걱정 말라고 하기에 전하니, 또 곤란한 표정이다.
왜 그러냐고 스님께서 물으니 이번에는
동생이 말하는 꽃 신이랑, 장신구를 알지도 못하는
데 본인이 어떻게 가지고 있겠냐고...
그러자 이번엔 소녀가 말한다.
"고향을 떠나올 때 가져온 세간 중에
자개를 입힌 작은 궤가 하나 있을 것이다"라고
스님께서 정처사에게 전하니
그렇다고, 아버지의 물품을 담았던 것인데
집안이 풍비박산 날 때 다른 큰 가구는 다 없어졌고
유일하게 남았길래 유품으로 간직하고자
가져와서 다락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 말에 이번에도 소녀가 말한다.
" 그 궤의 아래쪽을 더듬어 보면 덧 댄 판자가
있을 것이다. 그 판자를 뜯어 내면 그 아래칸에
내 꽃신과 장신구가 들어 있을 것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