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고인 물을 조용히 흔들었던, 때로 신경을 마비시키거나 불붙였던 그림들을 상상 속 화랑의 허랑한 빈 벽에 하나씩 걸었다. 한데 모아놓으면 그들은 어쩌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 말해줄지도 몰라."
-김혜리, 『그림과 그림자』
요즘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이 현재에 와 다른 의미로 닿는 장면이라든지 생각지 못한 연결의 순간들이라든지 그런 것들에 대해 돌아볼 기회가 제법 있었다. 회사 근처 자주 가던 카페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새로 들어설 카페 사장님을 집 근처에서 뵙게 되는 일이나 현재의 내게 정말 큰 영향을 주었으나 잊고 지냈던 학부 전공수업과 교수님을 떠올리게 되는 일 같은 것들. 매 순간 결연한 각오로 특별한 인장을 만들어야 그게 미래의 나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 단지 평범한 순간을 낭비하지 않고자 하는 태도의 반복이 우연하게 빚어내는 어쩌면 필연적인 것일지도 몰랐을 그런 만남들.
문득 그런 만남을 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사랑스러운 순간을 조금 더 잘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해 카메라를 샀다. 아무리 스마트폰 카메라 하드웨어와 이미지 프로세싱이 발전해도 물리적으로 센서의 크기가 작다는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번들 렌즈를 대충 만지작거리면서도 빛과 구도와 갖가지 설정들이 폭넓은 결과물을 포착할 수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쓰는 일과는 다른 결을 가진 찍는 일에도 조금씩 취미를 붙이다 보면 이 또한 의외의 연결과 조우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오늘은 브런치스토리의 콘텐츠 큐레이션 [틈]에서 내가 쓴 글 "아마 당신의 글도 제법 오독될 것이다"(2024.10.25.)를 목요일 대표 콘텐츠로 인용 및 재구성해주었다. 하루씩 길어 올린 글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시선과 관점을 담은 재배치로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지를 지켜볼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생각과 감정을 눈에 보이는 글의 형태로 서술하는 일이나 일상의 어떤 순간이나 풍경을 사진으로 포착하는 일이 어쩌면 비슷한 속성을 서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것들을 무심히 모아 놓다가 보면 기록의 형태를 더 다양하게 만들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소한 하루를 보내다 보니 올해의 11월도 10일을 채 남겨두지 않았고 달은 12월만 남겨두게 되었다. 그렇게 평범한 연결을 만드는 기분으로 모르는 것들을 조금 더 잘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해야지. (2024.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