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너머의 소란과 평화
공시담당자의 업무 일과는 공시가 넓은 의미에서 정기적인 것과 비정기적인 것으로 나뉘듯 평소에 하는 것과 갑자기 닥쳐오는 것으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이 글을 쓰는 시점은 다음 달 중순에 제출 마감인 분기보고서(3분기)를 준비하는 시기다. 분명 한 분기는 3개월인데 체감은 정기공시를 매달 하는 듯한 기분이다. 내 경우 마감 4주~5주 전부터 DART 편집기를 실행해 분기보고서 파일의 초안을 만든다. 직전 분기 자료에서 가져와 그대로 쓰거나 다듬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가 하면 인사, 재무, 연구개발 등 유관 부서에 자료를 요청해서 받아야 할 것들도 있다.
정기적으로 예상, 예측 가능한 업무만 있다면 세상에 힘들 일도 없을 것이다. 공시담당자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면 평화로운 어느 날 오후 갑자기 걸려오는 상사의 전화 같은 것. 예를 들면 이런 것. 김 과장, 우리가 이번 주에 어디랑 얼마짜리 계약을 맺으려고 하는데 공시 의무사항인가? 이 한 줄에서 나는 맥락을 유추해야 한다. 투자에 대한 것인지 기술 개발과 같은 투자 외의 것인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할 사항인지 등을 말이다. 위에서 원하는 답은 공시를 해야 하는지 여부이므로 공시 요건 중 우리 회사의 최근 사업연도(작년 말) 자산 규모 대비, 자본 대비 몇 퍼센트에 해당되는 액수인지도 알아야 한다. 사안에 따라서는 간단한 공시 1건이 아니라 일정 기간 여러 개에 걸쳐 수반되는 공시 사항들이 있을 수 있다.
분기-반기-온기 실적 공시, 기말 감사 및 정기주주총회 시즌 정도를 제외한다면 상당수의 공시 관련 업무들은 수시로 생겨나거나 생겨날 뻔한다. 그렇다면 그 돌발적인 것을 감당하거나 대응하거나 대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언제든 누군가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 대학 전공서적보다 두꺼운 금융감독원 '기업공시 실무안내'와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공시·상장관리해설서'를 늘 곁에 끼고 있어야 하며 국가법령정보센터 웹사이트에서 상법, 자본시장법, 증발공(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등 필요한 법규를 찾아 읽고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IR과 공시는 회사의 외부에 노출되는 메시지를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위기관리 차원의 직무에도 해당된다.
다시 말해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기보다 문제가 될 수 있거나 이미 벌어진 난관을 수습, 대응하는 일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출근했더니 우리 회사 주가가 갑자기 상한가에 도달했다면? 다들 이유를 알고 싶어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올 것이다. 앞선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단 한 가지의 정답인 이유는 없지만 나름대로 유추, 분석은 할 수 있어야 한다. 모 언론매체에서 우리 회사 또는 경영진에 대한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긴 악성 기사가 나와서 주가가 떨어지면 내용을 파악하고 대응 여부, 방향을 정해야 한다. 근거 있는 비판일 수도 있고, 물론 악의적인 의혹 제기에 불과한 것들도 많다.
출근 직후 노트북을 열면 접속하거나 실행하는 것들은 내 경우 대략 아래와 같다.
네이버 증권, 네이버 뉴스 '우리 회사명' 검색 결과, DART '우리 회사 공시' 검색 결과, 회사 홈페이지, 그룹웨어(ERP), KRX 상장공시제출시스템, 한국거래소 공시종합지원시스템(K-CLIC)
국가법령정보센터 - 상법(+시행령), 자본시장법(+시행령), 한국거래소 법무포털 - 코스닥시장 공시규정 및 시행세칙
금융감독원 기업공시 실무안내 및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공시·상장관리해설서 책자의 PDF 파일(단어 검색이 가능하다)
그 외 분기보고서와 같이 현재 작성 중인 공시 파일을 실행한 DART 편집기 + 직전에 제출한 반기보고서 공시 파일 및 DART에 제출 완료된 반기보고서 공시 링크
이렇게 건조하게 쓰니 회사에 별 일이 없으면 나도 별 일이 없는 거 아닌가, 싶을 수 있겠지만, 이 평화는 갑자기 깨어질 수 있다. 그러면 이제 그 평화가 깨지는 격동의 순간에 대해서도 써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