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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 오늘도 투자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모두 그저 잘 살고 싶어 열심일 따름이다

by 김동진

IR과 공시 최전선에서 실무자 시각으로 글을 쓰다 보니 회사에 막무가내일지라도 이런저런 요구를 하거나 소통해 오는 투자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담기지는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물론 투자가 아니라 투기의 영역이 되는 건 절대적으로 경계해야 한다고 믿고 있고, 자신이 직접 '투자판단'을 거쳐 '투자'한 기업의 경영 활동에 있어서는 투자자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일 또한 달가워하지 않는 쪽이다.


내가 월급 받는 평범한 직장인의 한 사람이듯, 일면식도 없을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은 대부분 욕심일지라도 조금 더 벌고 싶어서, 정기예금에 넣어두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을 사정이 있어서, 수많은 상장 종목 중 어떠한 계기로든 우리 회사를 혹은 주식시장의 특정한 종목을 고르거나 만나게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자본시장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소비지상주의가 일상에 만연하는 일을 여전히 경계하고 있다. 내가 유상증자에 청약했다고 해서 그 주식을 발행한 회사 경영에 왈가왈부하는 게 과연 어디까지 온당할 수 있을까? 자신의 주식 계좌에서 해당 종목이 손실을 보고 있다는, 즉 매수한 가격보다 시가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그 회사의 IR 담당자에게 폭언을 하고 "사장 나오라 그래!", "임시주주총회 열어서 경영진 해임시킬 거다!" 같은 갑질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걸 '주주행동주의'로 포장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한 직장에 오래 다니는 사람이 잘 살아남은 사람일 수도 있듯 투자를 잘하는 사람은 오랫동안 잘 버티는 사람이다. 잠시 계좌에 찍힌 숫자가 파란색일 수도 있고 코스피 지수 4,000을 가리키는 시대에 내가 투자한 종목이 초라해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그 주식 종목의 매수를 선택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다. 수량과 가격을 본인이 택했을 것이며 누군가 대신 매수해 줄 수도 없으며 오늘 매수했는데 내일 마이너스 5퍼센트를 가리킨다면 그 순간 95퍼센트의 나머지를 건진 채 다른 더 매력적인 종목으로 이사 갈 것을 택할 자유 또한 스스로에게 있다. 아무도 이 종목을 계속해서 들고 있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최근 몇 년 간 마이너스 50퍼센트에서 90퍼센트 사이 어딘가의 주가 하락을 기록한 종목이 있다 할지라도 차트를 자세히 보면 분명히 상승 구간이 있고 이익을 보거나 손실을 최소화할 기회가 반드시 있었다. 오늘이 멀었고 내일은 모르듯 내일 증권 시장에 어느 악재가 찾아올지 우리 회사에 무슨 안 좋은 일이 벌어질지 알 수는 없을 노릇이지.


주식 시장은 시끄럽다. 그 소음들 너머에서 실무자들은 그저 자기 역할을 한다. 대다수 기업의 경영자들은 우리 회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회사의 제품과 기술이 뛰어난 만큼 앞으로 더 좋은 성과를 도출할 거라는 낙관으로 매일을 견딘다. 전화를 걸어오는 투자자 중 백에 하나 정도는 IR, 공시담당자를 진심으로 격려해 주고 회사의 성장을 염원하며 '언젠가' 회사가 잘 될 거라는 낙관을 가지고 어디까지나 투자자로서 주식 투자자와 주식을 발행한 회사 사이의 알맞은 거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투자자와의 대화에서는 (공정공시 의무를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하나라도 더 회사에 대해 알려주고 싶게 된다. 그렇지만 전화를 걸자마자 대뜸 이 회사는 주가에 신경을 안 쓰냐고 주주들 무서운 줄 모르냐고 이 회사의 주인은 너네가 아니라 우리 주주들이라고 윽박지르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주식 계좌가 수익을 기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생긴다. 나도 사람이니까.


돈에 혈안이 된 사람들은 그 뒤의 사람을 자주 잊는다. 나이에 비해 직장 커리어가 조금 뒤처진 나도 간신히 주변을 따라가면서 업무 노하우를 체득하면서 나만의 재능과 미래를 탐색하는 중이다. 나 역시 언젠가는 업무 뒤에 사람이 있음을 잊게 되지는 않을까 두렵다. 생활에 찌들어, 생의 팍팍한 계산과 한계에 부딪혀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의 마음을 뒤로하고 타인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까 무서울 때도 있다. 내 세상 바깥에 대한 이해는 늘 노력을 요하는 일이고 내 안위와 안녕을 챙기는 일은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일종의 본능처럼 편리하니까.


공시담당자들 사이에서 제법 유명한 공시 중 하나로 모 회사 공시에 담당자가 드래그해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흰 글씨로 "나도 돈 많이 벌고 싶다", "공시 업무 지겨워"를 쓴 사례가 있다. 물론 얼마 뒤 그 공시는 정정되었지만 정정공시를 하더라도 정정 전 공시는 이전 문서 기록으로 남는다. 이중적이지만 솔직한 말로 나 역시 돈 많이 벌고 싶고 정해진 숫자와 언어를 다루는 공시는 단조롭거나 지겨운 면도 있다. 그렇다 해도 이 일이 세상 수많은 업이 그러하듯 고유한 가치가 있고 자본시장에 참여하는 누군가에게는 귀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꽤 쓸 만한 업무일지도 모른다고 아직은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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