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아티스트
쓰지 않는 전자기기는 예외 없이 버리거나 중고로 처분하는데 딱 하나 예외를 발견했다. 서랍 안쪽 구석에 줄 이어폰이 감긴 채 잠들어 있던 MP3 플레이어. 2000년대 후반 코원에서 출시한 16GB 저장용량의 제품. 충전을 하니 전원이 켜지는 데서 일단 놀라고 거기 담긴 노래들의 제목을 훑다 한동안 시간에 잠긴다. 2013년경까지 업데이트했던 이 기기 안의 노래 상당수는 거의 지금도 남아 있는 내 음악 취향의 원류에 가깝다. 윤하, Avril Lavigne, Green Day 같은 이름들이 한결같다. 10대 때부터 20대 후반까지 들었던 노래들. 목록을 따라가다 거기 한 사람이 빠져 있는 걸 깨닫는다. 살다 보면 취향의 확장성이 좁아져 유년부터 들어온 노래를 거의 평생 듣는다는데 내게는 서른 이후에 맞이한 노래의 비중이 제법 크다.
심규선. 내 서른 살 이후의 삶에는 온통 그의 음악이 곁에 있었다. 이제는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속 모든 귀퉁이들이 먹먹해진다. 꼭 실제로 가깝고 친밀해야만 인생의 각별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일찍이 그런 가수가 있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서른의 골목을 통과하면서부터 살아갈 날들의 많은 순간에 정말로 이 사람이 존재하겠구나 라는 직감이 왔다. 어쩌다 만난 노래들. 아주 우연히 흘러나오듯이, 인과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됐다. 밀도 높은 가사에 진심을 눌러 담아 곁에 오래 남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어서.
그해 봄과 가을은 살아온 것들의 많은 기반이 흔들린 시기였다. 퇴사 후 이직이 뜻대로 잘 되지 않아 업의 전문성과 방향에 대해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갈등과 반문의 하루를 억지로 열었다. 곁을 감당할 재간도 없어 오래 만난 인연에게도 작별을 고했다. 경제적으로도 난관에 부딪혔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추구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박봉과 야근, 대표의 막말 속에서도 평생 업이 될 거라 의심하지 않았고 소위 말하는 덕업일치의 순간들이 모든 걸 버틸 수 있게 했는데 이제는 스스로의 쓸모가 사라진 듯한 기분. 지금 생각하면 죽을 고비를 넘긴 것도 아니고 섣부른 퇴사 끝에 찾아온 경력 단절 위기 비슷한 것에 불과했다고 축약될 수 있지만 그때는 좋아하는 노래나 영화에 기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날들이었다. 내 세계가 온통 처량했다. 그때 비로소 심규선의 노래만이 곁에 남아 있는 기분이었다. 시가 그렇듯 음악이 사람을 지킬 수 있다는 걸 감각했다.
모든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하는 그의 말들은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정확히 왔다. ("우리 사랑했었던 날들 아직 모든 것들이 꿈만 같아"(「부디」)) 누군가를 한 번만 다시 볼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수십 번을 되뇌던 날들에도, ("자꾸만 마주치는 눈을 다른 말로 설명할 핑계를 더는 못 찾겠어요"(「지는 싸움」)) 계절이 조금 바뀌고 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누군가와 시나브로 가까워지던 날들에도, 해가 바뀌고 불안 따위는 애초 없었던 것처럼 보내던 날들에도 그랬다. 그 말들은 꼭 어둡고 슬픈 시기에만 찾아오지 않았다. ("막다른 길 끊어진 길도 밟아가다 보면 먼 훗날 뒤돌아 볼 때 그대의 소로가 될 테니"(「소로 小路」)) 그저 담담하게 닿는 위로도 있었고 평범한 일상에 다색의 축복을 내려 주는 선율도 있었다. 자주 듣다 보니 점점 더 많이 듣게 됐다. 불면의 밤에는 언제나 심규선이 있었다. 가사를 다 외우거나 하지 않아도 언제든 재생하는 모든 시간의 배경음악이 된 몇 곡은 첫 음만 들어도 여전히 마음이 뛴다. 예술에 그 자체로 무슨 대단한 힘이 있지 않겠지만 어쩐지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뚫고 귓가에 가까이 다가오는 목소리와 피아노, 첼로 등의 선율을 반복하다 보면 아무도 찾지 않는 새벽에도 외롭지 않았다. 오늘보다 내일 하루는 조금 덜 망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넘어져도 이 음악이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의 앞에 내가 설게 너는 너무나도 작고 약하지만 아름다운 안을 가진 걸 (...) 우리 만신창이처럼 비틀대도 서로 앞에 찾아왔네"(「안」)) 일어선 뒤에는 걸어갈 힘이 됐다.
그러다 4년 전에는 콘서트에 처음 갔다. 팬데믹 이후 제법 오랜만에 열리게 됐다던 단독 공연이었다. 다른 콘서트나 페스티벌에 몇 번 가보았지만 심규선의 공연에서는 이제껏 느껴본 적 없던, 공명하는 기분과 안전한 체온을 만났다. 실황을 넘어선 실감의 영역. 아티스트가 호흡을 고르고 다음 가사를 내뱉는 모든 분과 초를 공동의 경험으로 삼는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음악을 보고, 연주를 피부로 느끼고, 아티스트의 표정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일. 비교적 인디의 범주에 해당될 법한 싱어송라이터이기에 가능했겠지만 팬 커뮤니티의 사람들과도 매해 공연을 함께하면서 하나 둘 반가운 안면이 생겼다. 별로 친하지 않아도 오픈채팅방 닉네임으로 불러도 다음 계절이 되면 그간 잘 살아 있었다는 일종의 생존 확인을 하고 사소한 근황을 나누고 살다가 또 만나요, 하듯이 가볍게 헤어지는. 때로는 아티스트의 생일을 축하하는 이벤트를 함께하기도 했고, 공연 뒤 일상으로 돌아가고 나서는 채팅방에서 시답잖은 농담과 한담을 밤낮없이 주고받았다. 나는, 우리는 그렇게 하루를 살며 나이를 먹었다.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콘서트에 갔다. 음악을 CD로 듣진 않지만 새 앨범이 나오면 예약구매를 했고 2022 공연 실황 블루레이는 영화 블루레이를 구입하듯 아무 망설임 없이 샀다. 룸메이트(심규선의 팬을 지칭하는 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며 나눔하는 팬메이드 굿즈 같은 물건과 흔적들도 매해 쌓여갔다. 팬들만 시간을 쌓은 게 아니라 데뷔 16년째에 접어든 아티스트도 그 이상의 이야기를 쓰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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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있을게 지독한 악마들에게
너를 빼앗길 순 없을 만큼 절실하니까
잃어버린 표현과 억눌러왔던 한숨도
내가 이해할게 이제 와 항상 영원히"
-「Care」
소속사 '헤아릴 규'에서 직접 관리하는 네이버카페 '소곡집'에서는 매 계절마다 '규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카페 활동 독려 겸 팬들 간에 서로 경험과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시즌 미션을 정기적으로 운영한다. 물 2L 이상 마시기나 텀블러 사용하기, 도서관에서 책 빌리기처럼 쉬운 인증 미션도 있고 새 앨범이 나오면 그 감상평을 올리도록 하거나 콘서트를 앞두고는 현장 이벤트 참여 후기를 올리도록 하는 등의 미션도 있다. 일정 개수 이상의 미션을 충족하면 추첨해서 다음 연도 콘서트 MD나 사인 앨범 등을 주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동기가 부여됐다. 운 좋게 추첨에 뽑혀 기명 사인 앨범을 받기도 했지만 경품이나 특전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계절이 쌓이고 기록이 늘어나는 동안 팬들의 공간은 정말 이름처럼 소곡집(小曲集)이 되었다. 말하자면 팬들을 케어하는 공간. 각자의 짧은 음악을 늘어놓고 그것들이 연결되다 보면 저마다의 한 시절이 능히 견뎌졌다. 어떤 아티스트를 덕질하는 일에는 정말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청각을 넘어 오감을 함께한 지난 몇 년은 그것이 어떻게 삶의 방식에 영향을 주거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고스란히 체감한 시간이었다. 예를 들어 스스로를 너무 채찍질하지 않게 되고, 타자와 작은 생명에 대한 다정을 잃지 않고자 조금 더 노력하게 되고, 환경의 변화를 인식하고, 일상을 스쳐가는 조각들에 기록을 통해서 의미를 조금 더 발견하고 한 문장 더 길어 올리는 일. 원래부터 기록하는 사람이었지만 심규선의 음악 세계와 팬 커뮤니티의 존재,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을 함께 좋아하는 느슨한 동지들이 있어 자기만의 방을 지키고 가꾸면서 세상을 대하는 시야가 조금은 더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몇 개의 시절을 건너가게 해 주고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게 해 준 인생의 아티스트가 쓰고 부르는 이야기들에, 그의 곡조와 노랫말에 나는 이미 냉정하고 이성적인 평가나 분석 같은 것을 해낼 재간이 없다. 그래서 당신이라고 부른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삶 속에서 오직 확실한 건 당신의 노래가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이 오늘을 향하고 있었구나 하는 감각을. 다감한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는 일이 무엇으로도 대신될 수 없다는 믿음을. 평범한 미래의 자명할 것들에 기대는 마음을 당신이 있어 발견하거나 지켜낼 수 있었으니까. 그 노래를 듣는 시간은 당신을 사랑하는 일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고 믿게 해 주었고 공연장에서 당신을 만나는 시간은 나와 당신이 우리로서 함께 여기에 도달했음을 확인하고 선언해 주는 듯했다. 다만 그것들에 어떤 고통이나 불안을 없애주는 효험 같은 건 있지 않다. 단지 다음 날 일어날 힘을 주고, 섣부른 판단과 이기심 대신에 능히 누군가에게 닻별이 될 수 있는 사랑과 애호의 마음을 잃지 않게 지탱해 주는 정도. 하나 더, 여전히 찬란한 시간이 있다고 내가 믿지 못하는 순간에도 누가 대신 믿어주는 것. 그게 내게는 지난 몇 년을 함께한 심규선이었다. 노래를 쓰고 글을 적어 내려갔을 당신의 무수한 밤들을 간신히 가늠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모든 시간들은 부르고 연주하지 않는 순간에도 다 음악이었으리라. 앞으로도 의심 없이 그렇겠지.
지난 11월에는 Op.1으로 2017년 시작된 <환상소곡집> 시리즈 앨범의 마지막인 Op.3가 발매됐다. 그 달 말에 다녀왔던 콘서트에서는 다른 공연보다 유독 눈에서 뭔가가 양 볼을 타고 뚝뚝 내리는 순간들이 많았다. "룸메이트가 아닌, 룸메이트가 없는 세상에서는 이제 살아가는 법도 사랑하는 법도 다 잊어버린 것 같아요"라며, "여러분에게 저의 생존을 걸고 있습니다"라며 멘트 중 울먹거리는 당신의 진심이 저 멀리에서도 보였으니까. 새 정규 앨범이 나오자마자 특히 닳도록 반복해 들었던 곡*이 앵콜 전 세트리스트 마지막 곡이었고, 직전 곡이 끝난 뒤 이미 전주가 나오기 전의 간주 때부터 그 노래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실망의 순간에도 사랑이 공존할 수 있다고. 다시 발견하고 마치 불처럼 붙잡고 살아 있자고. 그렇게 힘주어 팬들에게 고봉밥처럼 꾸욱 눌러 담아 말해주는 사람이 부르는 내 인생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내내, 눈가를 닦는 일은 포기한 채 그저 손수건을 꼭 쥐고 있었다. "제가 하는 모든 말과 음악들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라는 사람의 말과 음악이 거기 현현히 있었고 무대가 끝난 뒤에도 집에 돌아와서도 잔영은 공기처럼 남아 있었다. 그 여남은 공기가 다음 날 출근길도 숨 쉬게 했다. 귀인을 곧 제 곁의 누군가를 귀인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내게 당신보다 더 귀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내가 당신을 귀하게 여기는 이상 당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나와 룸메이트들을 귀하게 아낀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살아갈 남은 일들이 그저 하나의 소로에 불과할지라도. 그 길에, 생애에 걸어갈 남은 날들을 헤쳐갈 이유를 일러줄 당신의 음악이 있다면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도 저의 전설*이 되겠습니다. 살아있겠습니다.
"나의 사랑스러운 벗에게. 우리를 떠올리면 내 마음이 덥다. 나의 지난날과 오늘 당신의 고독이 마치 거울처럼 닮아 있는 듯해 더욱 애달프고 섧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도 있다. 길을 잃었다 생각했을 때조차 사실은 길 위에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 사위가 전부 진창이라면 머무르고 싶은 곳에 이를 때까지 걸맞은 속도로 겸허히 가시라. 다리가 아파 멈춰 쉬는 것을 아까워 마시라. 부끄러워하지 마시라. 자신에게 말을 걸며 그저 묵묵히 가시라. 어느 순간 주변이 고요해지고 세상의 넋두리들도 사라지면, 비로소 자기 안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 소리가 끊이지 않는 긴 돌림노래처럼 귓가에 머무르며 계속 들려오게 하시라."
-심규선, 「소로」, 『밤의 끝을 알리는』에서 (큐리어스, 2022)
*"내 가망 없는 노력들과 깨진 꿈들의 파편들로 아름다워진 세계에서 난 나의 전설이 되려 해"(심규선, 「Legend」)에서
*「부디」는 차세정(에피톤 프로젝트) 작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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