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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Dec 09. 2019

연가보상비보다 중요한 게 있다면

소설가 김금희의 본심, <작가의 본심> 강연 후기




누군가를 알아갈 때 제일 재밌는 것은 나와 같거나 다른 점을 찾는 일이다. 왜 그런진 모르지만 나는 나와 너무 비슷하거나 너무 다른 사람에게는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나와 어느 정도는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건 별로 거창한 게 아니라서 아주 시시콜콜한데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면 나는 계단보다 에스컬레이터를 더 좋아한다거나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람에 대한 흥미가 생긴다. 집에만 있는 걸 못 견디는 사람들에게는 집에만 있는 내가 모르는 부분이 뭘까 관심이 생기고, 내선번호를 못 외우는 사람에게서 불현듯 내 기억력의 쓸모를 깨닫고 친구가 될 운명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이런 기준은 친구를 사귈 때뿐만 아니라 나 혼자 알고 지내는 소설가에게도 적용된다. 소설가와 독자가 직접 만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라서 나 같은 독자가 소설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대부분 그 작가의 소설이(문장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주에는 김금희 작가의 <작가의 본심 - 탈락된 페이지들>이라는 강연에 다녀왔다. 소설가를 소설을 통하지 않고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좋은데 소설엔 실리지 못한, 소설가만 아는 탈락된 페이지들을 엿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과연 소설가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기대하며 패기롭게 후반차를 상신했다. 패기로웠던 이유는 2년 만에 회사에서 연가보상비를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연차 한 톨 한 톨이 아쉬운 상황이지만 소설가를 직접 만나는 일은 회사에서 연가보상비를 줄 가능성보다 더 희박할 것 같았다.


셔틀버스까지 운행하는 융숭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융숭함...

기억에 남는 건 하나의 단편을 쓸 때 약 100개의 파일이 나오는데, 이건 어떻게 보면 100개의 실패라 할 수 있고 더 이상 실패할 수 없을 정도가 될 때 원고를 보낸다는 말이었다. 그 예로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필용이 차를 타고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에 간다고 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운전해서 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걸어서 가는 것으로 바꿨다고 했다. 실제로 드라이브 스루는 잠깐 지나치는 곳이라 장소성도 없어서 독자들이 감정선을 따라오기 힘들 것 같았다고! 메뉴도 처음엔 치킨버거였는데 치킨버거는 지금도 판매 중이어서 단종된 피시 버거로 바뀌었다고 한다.


난 이제 드라이브스루와 치킨버거의 비밀을 알아버렸다..!! 우린 이제 비밀을 공유한 사이가 되어버린거야...


내가 소설가에 대해 흔히 하는 착각은 소설가는 완벽할 거라는 생각이다. 소설가는 글 쓰는 게 직업이고 직업이 된 건 글을 잘 쓰기 때문이니까 단 한 번에 소설을 후루룩 완성할 것 같았다. 그러나 강연에서 만난 김금희 작가는 한 편의 단편을 위해 최소 100번을 실패하고, 잠이 많아서 집에서는 작업을 못하기 때문에 집 앞 카페로 자진해서 출근하며, 마감 때는 햄버거와 탕수육을 끊임없이 먹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문장을 쓰는 사람도 매번 실패하고 집에서는 잠만 자며 정크푸드도 즐겨 먹는다는 그 사소한 사실에 감동받아서 강연에 오려고 반차를 쓴 것을 후회하지 않게 됐다. ⠀




김금희 작가를 좋아한다면서 0.5개의 연가보상비를 계산해본 나는 어쩌면 쓰레기 독자다. 그런데 김금희 작가는 이런 갈팡질팡한 독자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소설을 쓸 때는 독자가 몰입해서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쓰는 건 어렵지만 읽는 것도 쓰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다. 독자의 소중한 시간을 위해 좀 더 궁금하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작가의 말은 작가의 책을 읽어 온 시간에 대한 또 다른 보상이 되었다. 1호선과 2호선과 또 신분당선을 타고 정자역으로 달려온 시간조차도 충분히 가치 있게 느껴졌다.


옛말에 형만한 아우 없댔는데 이건 강연만큼 알찬 큐앤에이였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금희 작가는 쓰고 싶다는 열망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열망은 인내심과는 다른 의미라고 했다. 글쓰기라는 건 안 쓴다고 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일인데, 그럼에도 의지를 가지고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작가가 될 만한 자질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답변이 질문자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말 같아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답변의 형식을 빌려 온 위로처럼 느껴졌다. 아마 오래전에 작가가 해왔던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구구절절 썼지만 하고 싶은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본심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강연이었다는 것. 마감 때마다 햄버거를 매일같이 먹는 게 작가의 본심 중 하나라면 햄버거라는 사소한 공통점에도 기쁜 게 독자의 본심이라는 것. 쓰고 싶다는 열망이 작가의 자질 중 하나라면 적어도 기죽을 필요는 없겠다는 것. 소설이란 ‘받지 않는 전화를 오래 거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던 하루였다는 것. 세상에는 몇 푼의 반차 보상비 - 0.5개의 연가보상비 - 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이렇게 예쁜 에코백도 주셨다... 요즘은 확실히 공짜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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