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튼 Jan 02. 2020

내 마음의 옥탑방

K와 나, ㄱ과 ㅇ




K의 표정은 항상 날 고민하게 했다. 나는 버릇처럼 옆자리에 앉은 K한테 "화났어?"하고 묻곤 했는데 그건 정말 그때마다 K가 화나 보였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K는, 오늘도 학교 앞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더 황당해하면서 전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 나는 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근데 표정이 왜 그래?" 그럼 K는 나만큼이나 궁금해하면서 되물었다. "내 표정이 어떤데?"

K의 표정은 수업을 시작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더울 때나 추울 때나, 심지어 졸릴 때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K는 내가 대학교에서 처음 사귄 친구였다. 무표정한 K와 소심한 내가 친구가 된 건 소설 때문이었다. 대학교가 고등학교와 다른 점은 더 이상 가나다순으로 조를 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현대문학 수업에서 K와 나는 같은 소설을 골라서 같은 조가 되었다. 이름이 ㅇ으로 시작하는 내가, ㅅ이나 ㅈ이 아닌 ㄱ으로 시작하는 사람과 같은 조가 되었다는 게 어색했다. 대학생은 모든 걸 혼자 결정해야 했고 그만한 책임이 따랐다. 가정통신문을 나눠주는 담임선생님은 더 이상 없었다.


시간표는 어떻게 짤 건지, 수업 중에 화장실을 갈지 말지, 2학년 때 무슨 과를 갈 것인지, 옷을 뭘 입고 점심은 뭘 먹을 건지 등 매일매일이 선택의 연속이었다. 내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하루가 대학생의 특권 같아서 신났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내 선택이 옳은 걸까. 이 날씨에 얇은 티만 입기는 좀 그런데 위에 뭘 더 걸쳐야 할까. 고민 없이 교복을 입던 시절이 그리우면서도 촌스럽게 느껴졌고, 돌아가고 싶지만 이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게 내심 다행이기도 했다.




K와 내가 고른 건 <내 마음의 옥탑방>이라는 소설이었다. 말이 소설이었지 책이라곤 하나도 안 읽던 나에겐 암호에 가까웠다. 그런 내가 과제를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K 덕분이었다. K는 신입생답지 않게 소설 분석도 잘하고, PPT도 잘 만들었고, 발표도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K는 전혀 떨지 않는 것 같은, 말하자면 교수님 같은 얼굴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무표정으로 질문도 잘 받아쳤다. 소설을 써서 대학에 들어왔다는 K가 꼭 선배 같았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K랑 냉면을 먹으러 갔다. 시험 얘기는 하지 말자고 했지만 생각처럼 잘 안 됐다.


싸이월드에서 건진 사진..10년 전엔 레드망고랑 넷북이란 게 있었다..


결국 나는 고기주는 냉면집에서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라는 소설 제목을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을까?>라고 잘못 쓴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 K가 고쳐주기 전까지 틀린지도 몰랐다. 작가를 모욕한 것 같아서 미안해하고 있는데 별안간 K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물음표는 왜 쓴 거냐고 놀려댔다. 포커페이스인 K를 웃겼다는 게 치명적인 감점 위기에서도 왠지 모를 자신감을 주었다. 무표정을 상쇄하는 K의 웃음이 뿌듯해서 나는 그 이후부터 걔를 웃기는데 골몰했다. K는 내 개그에 생각보다 잘 웃었다. K는 내가 이렇게 웃긴 앤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즈음 K와 나에겐 똑같은 목표가 생겼는데 그건 국문과 진학이었다.


K는 표정만 무표정했을 뿐 꽤 다정한 애였다. 고기주는 냉면집에서도 주문을 도맡았을 뿐 아니라 내 비빔냉면을 먼저 잘라주기까지 했다. 사실 난 S라는 친구와 먼저 그 냉면집에 간 적 있는데 그땐 냉면을 왜 그렇게 못 자르냐고 구박받았다. 그뿐이랴. 목소리가 작아서 냉면집 이모한테도 계속 외면당했다. 그 날은 주문도 잘 못하고 냉면도 못 자르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는데 K는 그런 의미에서 냉면집의 지음이었다. 우리는 냉면 케미가 좀 괜찮았다. 우리가 친해진 건 소설 때문이 아니라 냉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날 내가 바보 같았던 점은 커트 코베인 문제를 틀렸다는 것, 딱 하나뿐이었다.




학과를 가르는 것은 학점이었다. 커트 코베인 같은 어이없는 범실은 1학년 1학기 내내 계속되었고 나의 첫 학점은 3을 넘지 못했다. 반면 K는 만점인 4.3에 가까운 학점을 받았다. 고등학교 땐 나보다 평균 높은 애들을 질투했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K와 명백히 달라질 나의 앞날이 걱정됐다. K가 국문과에 당당하게 들어갈 때, 나는 원하던 과에 진학 못한 패잔병이 되어, 또다시 마음 안 맞는 친구한테 냉면집에서 구박받는 신세가 될 것 같았다. 2학년이 된 K가 다른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날 모른 척하는 악몽을 여러 번 꿨다. 절망적이었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꿈 덕분인지 2학기 학점은 3을 훌쩍 넘겨 나름 안정권이 되었다. 우리는 원하는 대로 국문인이 되었다. K는 늘 무표정했지만 표정과 다르게 행동하는 건 늘 비슷했다. 새 가디건을 몰래 입고 간 언니에 대한 분노로 울면서 학교에 간 날, K는 수업시간 내내 만화를 그렸다. 모험 끝에 개구리가 도둑맞은 가디건을 되찾는다는 내용이었다. 나와는 달리 학점 욕심도 많은 애가 수업을 뒷전으로 한 점과, 만화 속 개구리가 귀엽다는 점 두 가지 때문에 복수심에 불타던 마음이 금세 누그러졌다.


K는 그런 친구였다. 냉면을 못 자르거나, 학점이 형편없거나, 고작 가디건 하나로 울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주는 친구. 그런 K가 잘 모르는 건 학교 밖에 있었다. 예를 들면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 같은 것. 우리는 소설을 분석하듯 기꺼이 서로의 짝사랑 상대를 분석했다. 그러려면 카톡도 잘 알아야 했다. 내가 얘를 저장 안 했을 때 친구 추천에 뜨는지 안 뜨는지, 전화번호를 삭제해도 지워지지 않는 카톡 친구는 어떻게 삭제해야 하는지, 차단한 사람에겐 정말 메시지가 가지 않는지, 뭐 그런 시시한 것들이 20대 초반이었던 우리에겐 국문과를 가는 것만큼이나 중요했다. 이상하게 나는 소설 제목은 자주 틀려도 그런 건 절대 까먹지 않았다.


K에게 나는 웃음 특채였고 카톡 전문가였다. 그 당시 나는 축구공처럼 차이기만 한다고 해서 축구공 클럽 회원이었고 그건 카톡을 연구하기엔 최적의 조건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내기 위해 시뮬레이션도 서슴지 않았다. 원한다면 서로 잠깐 차단해줄 수도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많은 것을 알아냈다. 안다고 해서 사랑에 도움이 된 건 아니지만 알아내긴 알아냈다. 다행히 훗날 K는 장기 연애에 돌입하면서 차단 같은 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축구공인 나는 역시 K와 달랐는데, K는 옛정을 생각해서 언제든지 자기를 이용하라고 했다.




취하면 생각나는 사람한테 전화하는 버릇이 있다. 그날도 비슷한 날이었는데 신호가 딱 한 번 울린 후 돌연 소리샘으로 연결됐다. 취한 와중에도 차단이라면 신호가 아예 안 갈 텐데, 하는 애꿎은 의문을 가지고 K에게 카톡을 했다. K는 영문도 모른 채 내가 하라는 대로 방해금지 모드를 하기도 하고 나를 차단하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신호가 한 번은 가는 것으로 보아 차단이 아니라 방해금지 모드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단잠에 빠졌다. 다음날 K는 나한테 욕을 했다. 사실 K의 입은 좀 거친 편이었는데 나는 그게 우정에서 우러나온다고 생각해서 졸업할 때쯤엔 K가 욕을 안 하면 서운해했다. K는 이 새끼를 어떡하면 좋냐고 차단이냐 방해금지 모드냐가 무슨 상관이냐며 그런 사람한테 전화하지 말고 이제부터 그럴 때마다 자기한테 전화하라고 했다.


다짐을 믿지 않는다. 절대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면 실수하게 되는 것처럼 절대 전화하지 말아야지 하면 또 전화하게 된다. 회식 날. 소주로 연거푸 달리고 집에 가는 길에 이상한 용기가 샘솟았다. 아아 술은 왜 쓸데없는 용기를 심어주는가. 이번엔 신호조차 가지 않았다. 차단을 직감하며 쓰린 가슴으로 K에게 전화를 걸었다. 힘들 때면 언제든 전화하라던 K가 참 고마웠다. 전화를 받으면 야!!! 나 드디어 차단당했다!!! 하고 고래고래 소리 지를 셈이었다. 근데 이상했다. 분명 K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신호가 가지 않았다. 단 한 번의 뚜루루도 없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됐다. 울먹이며 K한테 너도 나 차단했냐고 카톡을 보내고 침대에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들었다.


하루에 두 번 차단 당한 날.. 외마디 비명


다음날 아침, K는 무슨 소리냐더니 여전히 차단된 내 연락처 캡처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같은 메시지를 여러 개 보내왔다. 몇 주 전 사랑의(?) 시뮬레이션을 하고 차단을 안 푼 거였다. 나는 도대체 차단해놓고 전화하라는 건 무슨 심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더 슬픈 건 그 카톡을 하는 와중에도 내 번호는 여전히 차단되어 있었단 사실... 술이 준 쓸데없는 용기 덕분에 나는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한테나 차단당했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K는 너무 빨리 들켰다면서 너스레를 떨었고 나는 그 날 이후부터 습관적으로 차단했냐고 묻게 되었다. 간밤의 더블 차단 소동으로 나는 아이폰 방해금지 모드는 신호가 한 번 가고 수신차단은 신호가 아예 안 간다는 것, 방해금지 모드는 부재중 전화가 남고 수신차단은 아무것도 안 남는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답장이 안 오면 초조해... 너 나 차단했니?


매사에 긍정적인 나는 배알도 없이 그래도 차단한거면 부재중 전화는 안 뜨니까 그게 참 다행이라고 말했다. K는 별 게 다 다행이라고 한 번만 더 그러면 손을 분질러버리겠다고 했다. K에게는 말 안 했지만 갑자기 다행인 게 또 하나 생각났다. 그건 바로 K랑 내가 친구라는 사실이었다. 친구라면 헤어질 일도 없고, 진짜로 차단할 일도 없으니까 말이다. 술을 마시고 저지른 일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대신 술 먹고 바보짓을 해도 그러려니 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로 했다. 내 친구 K는 그런 애니까.




작가의 이전글 친구란 말이 터무니없게 느껴질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