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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Dec 31. 2020

재능보다 꾸준함, 꾸준함보다 즐기는 마음

케이크를 굽고 글을 씁니다

 아이가 자랄수록 경계하는 것은 비교하는 마음이다. 누구누구는 그림을 잘 그리는데, 누구누구는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스스럼없이 추던데, 누구누구는 어디서든 거리낌 없이 잘 어울리던데. 비교는 수시로 마음을 파고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잘라내는 게 어렵지는 않다. 아이의 기질과 좋아하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는 낯을 가리지만 수줍음이 많고 신중해서 그런 거니까. 호기심이 많고 적극적인 성향도 없지 않아 편안한 환경에서는 활동적이 되고 다양한 놀이에 관심을 보이니까. 그러니까 비교하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이의 성향과 상태에 중점을 두면 비교의 마음은 금세 사라진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잘하느냐 못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즐겁게 하느냐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가게를 하면서 누군가와 비교하는 마음 때문에 힘들었다. 우리 가게와 다른 가게를 비교하고, 다른 클래스의 수업 내용과 비교하고, 잘 팔린다는 디저트와 비교했다. 다른 이의 것이 탁월해 보일수록 내 것은 보잘것 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더 노력해보자는 채찍질이 되기도 하지만 ‘난 아무래도 재능이 없나 보다’, 하며 절망했다. 노력해도 영영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가게에, 수업에, 어린아이 뒷바라지에, 일과 생활은 간신히 꾸려졌다. 일에 더 집중하고 싶었지만 여건은 안 되고 내 노력은 늘 부족하게 느껴졌다.


 SNS로 모든 게 판가름 나는 세상이다. SNS 팔로워 숫자와 게시글의 좋아요 개수가 그 가게의 인기도와 판매도를 보여준다. 물론 눈에 보이는 사진이 전부는 아니고 진실이 아닐 때도 있다.  사실과 다르게 ‘완판 되었다’고 글을 게시해 인기 매장인 척 위장하기도 하고 기계적 효과를 가한 사진을 게시해 눈속임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SNS의 영향이 크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매장과 클래스 홍보를 위해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했다.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기는 걸 좋아해 오래전부터 블로그를 운영해왔고 개인적으로 만들어 둔 인스타그램 계정도 있었다. 거기에 계정을 추가했다. 별도의 비용을 들여 광고를 한 것도 아니다. 대신 진심을 담아 부지런히 올렸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찾아보고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익숙한 플랫폼이라 어렵진 않았다. 나름 노하우도 있었다. 솔직하고 친근하게 마음을 보여주고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사이 알게 모르게 팔로워 수도 늘었다.


 그런데 인스타 세상에 발을 들이자 보려 하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잘 나가는 가게, 잘 팔리는 디저트, 인기 많은 파티시에. 어떤 가게는 줄을 서도 금세 다 팔려버려 디저트를 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어떤 클래스는 공지만 하면 순식간에 마감이 되어 대기를 하기도 한단다. 눈이 휘둥그레져 찾아보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보기에도 확연히 예뻤고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베이킹을 해보지 않은 사람도 한 번쯤 만들어 보고 싶을 정도로 깜찍하고 기발한 메뉴를 만드는 수업이 소개되었다. 한마디로 재능이 남달라 보였다.


 고급 디저트로 갈수록 장식과 디자인이 중요해졌다. 안에 담기는 기본이 갖추어졌다면 사람들을 사로잡을 시각적 요소가 더해져야 한다.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라 눈으로도 먹고 코로도 먹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요리하는 사람들은 예쁜 그릇을 고르고 담음 새에도 신경을 쓴다. 디자인에 대한 고민은 베이킹을 배울 때부터 계속했던 부분이다. 케이크 데코를 할 때면 전날부터 머리를 짜내고 디자인을 고안해보았지만 막상 만들고 나면 탐탁지 않을 때가 많았다.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싶어 좌절하기도 했다. 과연 재능은 키워질 수 있는 걸까.  


  SNS로 자기 삶을 보여주는 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유행이었다. ‘핫 하다’는 카페에 먼저 가보고, 남들은 먹어보지 못한 디저트를 먹고, 그렇게 찍은 ‘인증숏’을 올리는데 몰두했다. 사진이 중요했고 눈에 보이는 게 전부 같았다. 우리 가게와 수업을 홍보하기 위해 날마다 SNS를 열면, 날마다 잘 나가는 가게와 인기 높은 클래스, 잘 팔리는 디저트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남의 감각은 탁월해 보였고 그럴수록 내가 가진 재능이라는 게 의심스러웠다. 감각도 없고 재능도 없는 것 같았다. 비교를 하면 할수록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내가 들인 노력이 마땅찮게 느껴질 때면 돌아가게 되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시험 결과를 받아 집으로 돌아온 날이다. 한 개인가 두 개인가를 틀렸지만 반에서 1등을 했다. 잘했다는 칭찬을 기대했는데 돌아온 건 ‘1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백점을 맞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잠시나마 우쭐했던 마음이 금세 부끄러움과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다 맞지 않으면 잘한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오래도록 남았다. 그 뒤로 단 한 번도 내 성적에 만족해 본 적이 없다. 과도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준은 높았지만 능력 밖이었고 노력도 부족했다. 늘 조금 미흡했다. ‘역시 이 정도밖에 안 돼’하며 아쉬워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열패감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던 학창 시절은 우울했다.


 성인이 되고, 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나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나에겐 나만의 삶이 있고 모두가 자신만의 목표와 꿈을 가지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목표가 다르고 지향하는 삶의 형태가 달랐다. 방점을 찍는 가치에 차이가 있고 평가하는 기준도 다양했다. 그렇기에 타인과의 단순 비교는 무의미했다. 뭐든지 다 잘해야 한다거나 반드시 백점을 맞아야 한다는 ‘완벽함’의 강박에서도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살면서 중요한 것은 그것보다 더 많았으니까. 다 잘하려고 아등바등하는 것보다 정말 잘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는 게 나았다. 백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뭐가 중요한지를 아는 게 더 필요했다. 공부만 잘하는 머리 좋은 아이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배려하고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변화를 알아채는 섬세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고 싶었으니까. 무리한 계획을 세우는 대신 작고 사소한 계획을 세웠다. 남들의 기준을 쫓는 대신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안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 작은 것을 꾸준히 반복하면서 얻게 되는 기쁨도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 일상에 공을 들여 완벽의 추구에서 오는 열패감에서 벗어났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만의 방식으로 작은 가게를 운영하기로 하면서 남과 나를 견주며 자신을 괴롭히는 경쟁과 비교에서도 발을 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감정에 휩쓸려 괴로워하는 자신을 다시 발견했다. 자신의 재능 없음을 탓하고 타인의 재능을 질투했다. 그렇다고 타인의 재능이 내 것이 되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바라는 것은 나만의 특별함이었다. 그런데도 의미 없는 비교로 자신을 깎아내리며 절망했다. 절망은 포기의 다른 이름이다. 노력하려는 마음에게 포기하라고 스스로가 부추기는 나약한 마음이 절망이었다.


 나만의 특별함은 내 안에서 만들어진다. 남과 비교하고 타인을 모방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잘하지 못하는 걸 알지만 그런데도 내 방식대로 지속하는데 답이 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고 쌓이면서 나만의 특별함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모두가 감탄하고 날마다 완판 되는 디저트가  아니라도 괜찮다. 열 명 중 한 두 명이라도 기억하고 좋아해 주는 디저트를 만들고 싶었다. 모든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통하고 취향이 맞닿는 몇몇 사람들에게 디저트로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스스로를 가둘 뿐이다. 나는 나일뿐, 다른 누구도 될 수 없다. 타인이 되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와 똑같은 디저트를 만들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도 왜 타인의 것과 내 것을 비교하며 열패감에 사로잡히는 걸까. 자신을 지배했던 오랜 성향은 쉽게 떨쳐 내기 어려운 걸까. 보고 싶지 않아도 끊임없이 타인의 삶을 끌어와 보여주는 SNS가 그런 마음을 부추기는 걸까. 타인의 시선에서 분리되어 온전한 나로 존재하고 싶었다. 타인의 것에는 순수하게 감탄하고 긍정적인 배움만 찾아내는 올곧은 눈과 마음을 갖고 싶다.


 괴로워하는 나를 ‘내 아이’라고 생각하자 답은 쉬웠다. 아이가 친구를 보며 자기 그림은 하찮고 보잘것없다고 여긴다면 무슨 말을 해줄까. 너의 그림에는 너만의 개성과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아이가 그린 그림에서 색다른 부분이나 노력을 들인 흔적을 찾아 칭찬해줄 것이다. 재능이나 감각을 탓하며 노력하지 않을 핑계나 대는 것을 경계하면서 말이다. 매일 글을 쓰는 이슬아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 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직설]<재능과 반복>, 이슬아, 경향신문, 2020.06.16)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다. 노력보다 더 강한 것은 즐기는 마음이고.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자신의 재능 없음에 절망하는 것은 포기의 지름길이다. 마흔이 넘은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꾸준함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노력에 즐거움을 더하는 것만이 무언가를 성취로 이끌 동력이 될 것이다. 그때 집중해야 할 대상은 다른 이가 아니라 나 자신과 내가 만든 것일 테고. 노력의 크기 또한 그렇다. 지금의 내 삶과 에너지에 맞는 최선의 것이면 충분하다. 생산적인 비교는 타인과 견주는 게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에 대한 비교다. 내가 물어야 할 질문은,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 이다. 내 안에는 아직도 무수한 비교와 재능 없음에 주눅 드는 아이가 살고 있다. 그 아이에겐 어른인 내가 말을 거는 수밖에 없다. 너만의 반짝임을 찾으라고, 타인의 것에 주눅 들어 너의 빛을 잃지 말라고.








#재능이없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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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도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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